김형곤
연표
1960
서울무학초등학교와 장충중학교, 중경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7
1980
[TBC 개그콘테스트 은상]
TBC 동양방송 개그콘테스트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언론통폐합으로 TBC가 KBS에 합쳐지면서 KBS 소속이 되었다.
[시사 개그의 아이콘 등극]
KBS '유머 1번지'에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 시대를 꿰뚫는 시사 개그로 압도적인 인기를 얻었다.
'잘 돼야 될 텐데…', '잘 될 턱이 있나?' 같은 유행어를 만들며 당시 군사독재정권의 검열에도 굴하지 않고 날카로운 풍자를 선보였다.
그의 거침없는 시사풍자는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미움을 받아, 중간에 프로그램 방영이 중단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85
[최양락 집단 폭행 사건]
개인 운전기사가 최양락에게 고용되자 분노하여, 새벽 후배 희극 배우들과 최양락의 집에 쳐들어가 집단 구타했다.
최양락은 병원에 입원했고 김형곤을 폭행죄로 고소하여 당시 언론에 보도되는 등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1985년 8월 2일자 동아일보 12면에 게재되었다.
1987
1998
[정치권 입문 선언]
개그맨으로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정계 진출의 꿈을 키웠으며,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99
2000
[총선 출마와 고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민주연합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서울 성동구에 출마했으나, 임종석 후보에게 밀려 3위로 낙선하며 정치적 좌절을 겪었다.
이후 뮤지컬 참여 등 다양한 연기자 활동을 했으며, 성적 소수자들의 클럽을 운영하기도 했다.
2006
[갑작스러운 영면]
평소와 달리 사우나 직후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 운동을 한 뒤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심장마비로 4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후 시신은 연구용으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병원에 기증되는 등 마지막까지 남다른 행보를 보였다.
유해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설문동 소재의 청아공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