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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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 카테고리

김태호는 1962년 경남 거창 출생의 대한민국 정치인입니다. 서울대학교 졸업 후 정계에 입문하여 경상남도의원, 거창군수, 경상남도지사를 역임했습니다. 40대 최연소 거창군수와 국무총리 서리 지명 등 기록적인 이력을 가졌습니다. 국무총리 후보직 자진 사퇴 후 국회의원으로 재기하여 현재 4선 국회의원으로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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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62

[김태호 출생]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났다.

1962년 8월 21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에서 태어났다.

1985

[서울대 졸업 및 정계 입문]

서울대학교 농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농대 강사로 활동하다가 이강두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5년 서울대학교 농업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농대 강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거창군 출신 국회의원 이강두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1995

[신한국당 입당 및 여의도연구소 활동]

신한국당에 입당하여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으로 재직했다.

1995년에 신한국당에 입당하였고 여의도연구소에서 사회정책실장으로 재직하였다.

1998

[경상남도의원 당선]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하여 경상남도의원에 당선되었다.

1998년 6월 4일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도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후 2002년까지 도의원으로 활동했다.

2002

[거창군수 당선 (전국 최연소)]

거창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당시 41세로 전국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이 되었다.

2002년 6월 13일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거창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41세로 전국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2004

[거창군수직 사퇴]

경상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거창군수직을 사퇴했다.

2004년 경상남도지사 김혁규의 사퇴로 경남지사 보궐선거가 열리자, 그는 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2004년 5월 17일 거창군수직을 사퇴했다.

[경상남도지사 보궐선거 당선]

경상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4년 6월 5일, 그는 경상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며 경상남도지사로 취임했다.

2006

[경상남도지사 재선]

제4회 지방 선거에서 김두관 후보를 제치고 경상남도지사 재선에 성공했다.

2006년 5월 31일,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김두관 후보를 압도적인 차이로 제치고 경상남도지사 재선에 성공하였다.

2009

[박연차 게이트 연루 (무혐의)]

경상남도지사 재임 중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처리되었다.

2009년 경상남도지사 재임 중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는 위기를 겪었으나, 그의 박연차 게이트 연루는 무혐의로 처리되어 위기를 넘겼다.

2010

[경상남도지사직 퇴임]

3선 도전 가능성이 높았으나 돌연 불출마를 선언하고 경상남도지사직에서 퇴임했다.

무난한 도정 수행으로 3선 도전 가능성이 높았으나 2010년 초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고, 2010년 6월 30일에 도지사직에서 퇴임하였다.

[국무총리 서리 지명 (최연소 40대)]

정운찬 후임으로 국무총리 서리로 지명되었다. 당시 49세로 1971년 김종필 이래 40대의 젊은 나이에 국무총리로 지명되어 주목받았다.

2010년 8월 8일, 정운찬의 후임으로 국무총리 서리로 지명되었다. 당시 김태호는 49세로 1971년 김종필 이래 40대의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로 지명된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국무총리 후보직 자진 사퇴]

박연차 게이트 연루 논란, 직권남용 등 야당의 비판과 여론 악화로 인해 국무총리 후보직을 자진 사퇴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박연차 게이트 논란, 도지사 직권남용, 일부 세금신고 누락 등으로 야당에서 의문을 제기하며 여론이 악화되었고,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다른 진술을 하여 더욱 여론이 악화되자 2010년 8월 29일 오전 10시에 후보직을 자진 사퇴하였다.

[중국 유학 생활 시작]

국무총리 후보직 사퇴 후 중국 사회과학원의 유학 초청을 받아 중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국무총리 후보직을 사퇴한 김태호는 중국 사회과학원의 유학 초청을 받아 2010년 10월부터 중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해왔다.

2011

[김해시 을 국회의원 당선 (정치적 재기)]

중국 유학 중 4·27 재보궐선거 출마 권유를 받아 귀국, 김해시 을 선거구에서 51.02% 득표율로 당선되며 정치적으로 재기했다.

중국 유학 중 2011년 4·27 재보궐선거 출마 권유를 받아 5개월 만에 귀국하였고, 김해시 을 지역구에서 51.02%의 득표율로 당선되며 총리 후보 사퇴 후 몰락한 것으로 보였던 정치적 위기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2012

[제19대 국회의원 재선]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김경수 후보를 제치고 김해시 을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재선 의원이 되었다.

2012년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김경수 후보를 제치고 김해시 을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재선 의원이 되었다.

2014

[새누리당 최고위원 선출]

새누리당의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어 당내 주요 직책을 맡게 되었다.

2014년 7월 14일에 새누리당의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18

[경상남도지사 선거 낙선]

자유한국당 후보로 경상남도지사에 출마했으나 김경수 후보에게 패배하여 낙선했다.

2018년에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경상남도지사에 출마했으나, 김경수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낙선했다.

2020

[제21대 국회의원 당선 (3선)]

제21대 총선에서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며 3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당선 이후 국민의힘에 복당했다.

2020년 4월 15일, 제21대 총선에서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3선 고지에 올랐다. 당선 이후 국민의힘에 복당했다.

2022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취임]

제21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되어 국회 외교 분야를 이끌게 되었다.

2022년 12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제21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24

[제22대 국회의원 당선 (4선)]

제22대 총선에서 경남 양산시 을 선거구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며 4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2024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남 양산시 을 선거구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며 4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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