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 (농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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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인, 스포츠인, 감독, 선수 + 카테고리

김진은 대한민국 농구의 전설적인 선수이자 감독입니다. 현역 시절 '샤프 슈터'로 불리며 삼성전자의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지도자로서는 동양 오리온스와 창원 LG 세이커스를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KBL 역대 2개 팀 정규리그 우승 감독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특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20년 만의 금메달 획득을 지휘하며 '국민 명장'으로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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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61

[대한민국 농구인 김진 출생]

강원도 춘천시에서 대한민국 농구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될 김진이 태어났습니다.

강원도 춘천시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서울로 전학하여 신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며 농구 선수로서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1984

[실업팀 삼성전자 농구단 입단]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 삼성전자 농구단에 입단하며 프로 농구 선수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김진은 1984년 삼성전자 농구단에 입단하여 본격적으로 농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는 가드 겸 슈터로 활약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85

[삼성전자 농구대잔치 우승 주역 활약]

삼성전자의 84-85 농구대잔치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전자 농구단 소속으로 1984-85 농구대잔치에서 팀의 우승을 이끄는 주역으로 활약하며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습니다.

1988

[삼성전자 농구대잔치 우승에 또다시 기여]

삼성전자의 87-88 농구대잔치 우승에도 크게 기여하며 팀의 두 번째 정상 등극을 도왔습니다.

1987-88 농구대잔치에서 다시 한번 삼성전자 농구단의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코트의 신사'라는 별명처럼 냉철하고 샤프한 플레이를 보여주었습니다.

1990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발탁 및 동메달]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농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동메달 획득에 기여하며 스타 플레이어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 참가하여 남자 농구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95

[선수 은퇴 및 지도자 경력 시작]

1995년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곧바로 상무 농구단의 코치 겸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84년부터 1995년까지 삼성전자 농구단에서 선수로 활약한 김진은 1995년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은퇴 직후 1995년부터 1996년까지 상무 농구단에서 코치 겸 감독을 맡으며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1996

[대구 동양 오리온스 창단 코치로 합류]

은사 박광호 감독과 함께 동양제과 농구단(후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창단 코치로 부임하며 새로운 팀의 기틀을 다지는 데 참여했습니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창단 코치로 합류하여 팀의 초석을 다지는 데 기여했습니다. 팀이 32연패를 겪는 어려운 시기에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2000

[대구 동양 오리온스 감독대행으로 지휘봉 잡아]

박광호 감독을 잃은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서 감독대행을 맡아 어려운 시기 팀을 이끌었습니다.

2000년,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감독대행을 맡아 팀의 위기를 수습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01

[대구 동양 오리온스 정식 감독으로 승진]

감독대행을 거쳐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정식 감독으로 승진하며 팀의 운명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2001년 3월 1일, 오랜 코치 생활과 감독대행을 거쳐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정식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팀의 전반적인 운영과 경기 지휘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2002

[대구 동양 오리온스 창단 첫 통합 우승 달성]

2001-2002 시즌, 대구 동양 오리온스를 이끌고 창단 이래 첫 정규리그 우승과 파이널 챔피언을 동시에 달성하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감독 부임 첫해인 2001-2002 시즌에 김진 감독은 대구 동양 오리온스를 KBL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끌며 팀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당시 40대 초반의 나이로 이러한 성공을 거두며 감독 세대교체의 선봉장이 되었습니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지휘, '국민 명장' 등극]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농구 대표팀 감독을 맡아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이후 20년 만에 대한민국 농구에 금메달을 안기며 '국민 명장'으로 불렸습니다.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성공에 힘입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그는 대표팀을 이끌고 1982년 이후 20년 만에 아시안게임 농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며 한국 농구의 영광을 되찾았습니다. 이 업적으로 그는 대중에게 '국민 명장'으로 각인되었습니다.

2003

[대구 동양 오리온스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 견인]

2002-2003 시즌에도 대구 동양 오리온스를 이끌고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명장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2001-2002 시즌의 성공에 이어 2002-2003 시즌에도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며 팀의 전성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는 감독 재임 기간 6년 동안 모두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07

[서울 SK 나이츠 감독으로 부임]

대구 오리온스에서의 성공적인 6년 임기를 마치고 서울 SK 나이츠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대구 오리온스 감독직을 마친 후 2007년 5월 1일 서울 SK 나이츠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새로운 팀에서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2009

[서울 SK 나이츠 감독 자진사퇴]

서울 SK 나이츠 감독 재임 중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습니다.

2007년 5월 1일부터 서울 SK 나이츠 감독을 맡았던 김진은 2009년 12월 15일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하며 SK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2011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으로 선임]

NBA 연수를 마친 후 창원 LG 세이커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의 재건을 맡게 되었습니다.

2009년 서울 SK 나이츠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미국 NBA LA 레이커스에서 연수 과정을 거친 김진은 2011년 4월 7일 창원 LG 세이커스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KBL 무대로 복귀했습니다.

2014

[창원 LG 세이커스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이끌어]

부임 첫해의 어려움을 딛고 2년간의 리빌딩을 통해 창원 LG 세이커스를 창단 17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부임 후 2년간의 리빌딩 작업을 거쳐 2013-2014 시즌 창원 LG 세이커스를 창단 17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역사적인 성과로 이끌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전창진 감독과 함께 KBL 역대 2개 팀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한 감독이 되었습니다. 또한 2014년 KB국민카드 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 감독상 및 스포츠토토 한국농구대상 시상식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2017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직 퇴임]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6년 동안 감독직을 수행한 후, 2년간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 퇴임했습니다.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역대 최장수인 6년간 감독을 지휘했던 김진은 2017년 4월 13일 팀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퇴임 후에는 KBL 재정위원회를 맡기도 하고, 농구전술서를 저술하는 등 농구 관련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20

[농구 전술서 'PLAY BOOK' 발간]

자신의 농구 철학과 경험을 담은 농구 전술서 'PLAY BOOK'을 직접 저술하여 발간했습니다.

2020년, 김진 감독은 자신의 농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오랜 지도자 경력을 바탕으로 농구 전술서 'PLAY BOOK'을 직접 저술하여 출간했습니다. 이를 통해 농구인들과 팬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며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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