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환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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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인, 야구선수, 프로야구 코치, 프로야구 감독 + 카테고리

- 초창기 해태 타이거즈의 핵심 외야수이자 KKK포의 일원으로 활약했습니다. -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타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해태의 5회 우승에 기여하고 1987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습니다. - 은퇴 후 해태 쌍방울 SK 코치를 역임했으나 쌍방울 감독직이 구단 해체로 무산되며 프로팀 감독 지휘는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 이후 원광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역임하며 아마추어 야구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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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55

[김준환 출생]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태어났다.

1982

[골든 글러브 수상]

프로 데뷔 첫 해인 1982년 시즌,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뛰어난 활약을 인정받았다.

[해태 타이거즈 입단]

KBO 리그 원년 멤버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며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김성한, 김봉연과 함께 '제1기 KKK포'를 결성하며 초창기 해태의 강력한 타선을 이끌었다.

1987

[한국시리즈 MVP 선정]

해태 타이거즈의 통산 5차례 우승에 기여했으며, 특히 1987년 한국시리즈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쳐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1989

[선수 은퇴 및 코치 전향]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해태 타이거즈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며 야구인으로서 새로운 길을 걸었다.

1990

[쌍방울 코치 부임]

쌍방울 레이더스 코치로 자리를 옮겨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다.

1992

[쌍방울 코치진 잔류]

김인식 초대 감독의 사임 후 단행된 쌍방울 레이더스 코치진 개편 속에서도 원년 멤버 코치 중 한 명으로 자리를 지켰다.

1999

[쌍방울 감독 대행]

1999년 전반기 성적 부진(17승 59패 5무승부)으로 김성근 감독이 해임되자, 쌍방울 레이더스의 감독 대행을 맡으며 팀을 이끌게 되었다.

[프로팀 감독 무산]

그러나 구단이 해체 후 재창단 형식으로 변경되면서 고용 승계가 되지 않아 정식 감독 부임이 무산되었습니다.

이의철 구단주가 그를 쌍방울 4대 감독 물망에 올렸으나, 이용일 구단주 대행의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으로 김성근 감독이 선임된 바 있다. 하지만 쌍방울이 해체 후 재창단되면서 고용 승계가 무산되어 프로 야구팀 감독으로 공식적으로 지휘한 경기는 없게 되었다.

2000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쌍방울 레이더스 해체 후 2000년 1월 창단된 SK 와이번스의 창단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SK 감독 대행 (단기)]

시드니 올림픽 코치진으로 선임된 강병철 감독을 대신하여 2000년에 잠시 SK 와이번스 감독 대행을 맡았다.

[SK 코치 해임]

2000년 말 단행된 '쌍방울 색 지우기' 프로젝트에 따라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자리에서 해임되었다.그 외 함학수, 김성현 등 쌍방울 출신 코치들도 함께 팀을 떠나야 했다.

2003

[원광대 야구부 감독]

2003년 말부터 원광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아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로 활약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다.

2017

[원광대 감독 정년퇴임]

2017년 2월 28일, 원광대학교 야구부 감독직에서 정년퇴임하며 오랜 지도자 경력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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