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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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스포츠 산업 분야의 저명한 학자에서 박근혜 정부의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리는 권력의 정점에 섰으나, 결국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로 추락한 인물입니다. 한양대학교 교수 시절 쌓은 전문성을 인정받아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 발탁된 후, 체육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비선 실세 최순실(최서원) 및 장시호와 결탁하여 기업에 후원을 강요하고 국정을 농단한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불러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요 공범으로 법의 심판을 받으며, 지식인의 도덕적 해이와 권력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연표
1961
이후 한양대학교 신문학과(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 진학하여 학업을 마쳤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스포츠와 미디어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4
언론인으로서의 경험은 훗날 그가 학계와 관가에서 미디어를 활용하고 여론을 파악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후 유학길에 올라 미국 웨스턴일리노이 대학교와 뉴멕시코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99
스포츠 산업과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로서 학계에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야구발전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하며 스포츠 현장과의 접점을 넓혔습니다.
2005
한양대 스포츠산업마케팅센터장을 맡으며 스포츠와 산업을 연계하는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국내 스포츠 산업 분야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2013
당시 김진선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사퇴 등 체육계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체육계 정상화'를 명분으로 임명되었습니다. 3년 넘게 재임하며 '장관 위의 차관', '스포츠 대통령'이라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2014
그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정유라의 실력을 두둔하며 의혹을 제기하는 쪽을 비판했습니다. 이는 그가 최순실 일가와 깊은 유착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훗날 재조명되었습니다.
2015
그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게 영재센터에 16억 원이 넘는 후원금을 내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는 권력을 사유화하여 특정인에게 이익을 몰아준 전형적인 국정농단 행위였습니다.
2016
그는 박태환에게 '올림픽에 나가지 않으면 기업 후원을 알아봐 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선수 생명을 담보로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국민적인 공분을 샀습니다.
사의를 표명하며 '상황이 엄중해 자리에 있는 것이 맞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미 검찰 수사가 임박한 상황이었으며, 그의 사임은 몰락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법원은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그는 현직 차관 출신으로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구속된 첫 고위 공직자가 되었습니다.
최순실, 장시호와 공모하여 기업을 압박하고 문체부 내부 문건을 최순실에게 유출한 혐의 등이 적용되었습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일부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법리적 다툼을 이어갔습니다.
2017
재판부는 그의 행위가 고위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국정농단 세력과 결탁하여 국정의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판단했습니다.
2019
대법원은 기업에 후원을 요구한 행위가 '강요죄'의 협박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형량이 줄어들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2020
강요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직권남용 등 다른 혐의들이 유죄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구속 기간 동안 형기를 채운 상태였기에 재수감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로써 '스포츠 대통령'의 몰락은 사법적 단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로써 길었던 국정농단 재판이 종결되었습니다. 그는 학자로서 쌓아온 명예를 잃고 범죄자라는 낙인과 함께 역사 속에 불명예스럽게 기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