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1896년)
연표
1896
대지주 김경중과 장흥 고씨 부인 사이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 김성수가 큰아버지 김기중의 양자로 가면서 그가 사실상 장남 역할을 했다. 하서 김인후의 13대 후손으로, 선조들은 전라남도 장성에 대대로 살았으며 증조부 김명환의 셋째 아들인 김요협이 처가가 있는 전라북도 고부군으로 이주해오면서 고부군에서 살게 되었다.
1921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간부로 근무하며 본격적인 기업인의 길을 걸었다.
1924
현재 삼양그룹의 모태가 되는 삼수사를 설립하여 사업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25
형 김성수가 학교 경영 및 언론사 운영 등 사회 활동에 나서자, 김연수는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실질적인 경영을 맡아 기업 성장을 이끌었다.
1929
형 김성수와 함께 재단법인 중앙학원을 설립하며 교육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39
[양영회 설립 및 해외 진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육영재단인 양영회를 설립하고, 만주지역에 남만방적을 설립해 한국기업 최초로 해외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육영재단인 양영회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같은 해 만주지역에 남만방적을 설립하여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1945
광복 이후 경성방직 경영에서 손을 떼고 삼양사의 성장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956
울산에 제당공장을 건설하며 삼양사의 사업 영역을 제조업으로 확장,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식품 산업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1961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전신인 경제협의회 회장을 맡으며 대한민국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68
수당장학회를 설립하여 인재들에게 학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훗날 수당상 제정 등 활발한 연구 지원 활동의 기반을 마련했다.
1969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을 완공하여 섬유 산업 발전에 기여하며 국민 생활의 질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9
대한민국 산업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김연수가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