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흥
연표
1626
조선 후기 영의정을 지낸 문신 김수흥이 1626년에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신 안동 김씨이며, 우의정 김상헌의 손자이자 영의정 김수항의 형이다.
1648
인조 26년, 23세의 나이로 식년 사마시에 1등 5위로 급제하며 조선 관직의 문을 열었다.
1655
효종 6년, 춘당대에서 치러진 문과 시험에 병과 2위로 급제하여 학문적 실력을 인정받았다.
1656
이듬해인 1656년 문과 중시에도 병과 3위로 급제하여 세 번의 과거 시험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효종 7년 5월 28일 겸설서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10월 6일 설서가 되었다.
1657
효종 8년 10월 4일 부수찬에 임명되었다.
1658
효종 9년 1월 9일 수찬에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4월 11일에는 헌납으로서 충청도 어사로 파견되어 지방 민심을 살피는 임무를 수행했다. 5월 13일 어사 책무를 마치고 귀임하였다.
같은 해 6월 5일 교리에 임명되었고, 12월 21일에는 이조좌랑을 지냈다.
1659
현종 즉위년 12월 2일 이조정랑에 임명되었다.
1661
현종 2년 5월 6일 응교에 임명된 후, 같은 해 6월 9일 광주 부윤을 지냈다.
1663
현종 4년 4월 18일 대사간에 임명된 후, 같은 해 9월 18일 동부승지를 역임했다.
1664
현종 5년 2월 28일 대사간, 7월 8일 병조참지, 7월 23일 승지를 거쳐 12월 21일 경기감찰사를 역임했다.
1666
현종 7년 1월 24일 도승지에 임명되어 왕명을 출납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같은 해 7월 23일 대사성에 이어 8월 11일 호조판서에 임명되었다.
1668
현종 9년 2월 23일 좌참찬에 임명되었다.
1670
현종 11년 5월 17일 우참찬에 임명되었고, 같은 날 한성판윤을 겸임했다.
현종 11년 6월 2일 총융사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6월 13일 호조판서, 8월 23일 강화유수를 지냈으며, 승문원제조를 겸직하고 11월 4일 다시 총융사를 역임했다.
1673
현종 13년 2월 24일 지경연을 겸직하고, 현종 14년 2월 9일 판의금부사를 지낸 후, 4월 24일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1674
현종 15년 4월 26일 조선 최고위직인 영의정 자리에 올랐다.
영의정에 올랐으나 자의대비의 복제 문제로 남인에게 몰려 위기를 겪었다. 7월 효종의 정비 인선왕후의 승하로 인해 발생한 제2차 예송 논쟁에서 서인으로서 '대공설(9개월 복상)'을 주장했으나, 남인의 '기년설(1년 복상)'이 채택되며 벼슬에서 파직되었다. 현종이 죽자 춘천으로 유배되었다.
1680
1680년(숙종 6년) 경신대출척으로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유배에서 풀려나 양주로 돌아왔으며, 영중추부사가 되고 보사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1688
숙종 14년 12월 7일 다시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1689
1689년, 숙종이 희빈 장씨가 낳은 왕자 이균을 왕세자로 책봉하려 하자 송시열과 함께 시기상조라며 반대했다. 이로 인해 기사환국이 발생하여 남인이 다시 집권하게 되었고, 그는 장기현으로 유배되었다.
1690
유배지였던 장기현에서 1690년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