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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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신, 정치인, 영의정 + 카테고리

조선 후기 서인의 핵심 인물로 영의정을 지낸 문신입니다. 여러 과거에 연이어 급제하며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요직을 거쳐 조선 최고 관직에 올랐습니다. 예송 논쟁과 기사환국 등 굵직한 정쟁의 중심에서 서인의 입장을 대변하며 파직과 유배를 반복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꿈꿨으나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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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626

[김수흥 출생]

조선 후기의 문신 김수흥이 태어나다.

조선 후기 영의정을 지낸 문신 김수흥이 1626년에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신 안동 김씨이며, 우의정 김상헌의 손자이자 영의정 김수항의 형이다.

1648

[사마시 급제]

식년 사마시에 1등 5위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의 발판을 마련하다.

인조 26년, 23세의 나이로 식년 사마시에 1등 5위로 급제하며 조선 관직의 문을 열었다.

1655

[문과 급제]

춘당대 문과에 병과 2위로 급제하며 학문적 실력을 인정받다.

효종 6년, 춘당대에서 치러진 문과 시험에 병과 2위로 급제하여 학문적 실력을 인정받았다.

1656

[문과 중시 급제]

문과 중시에서 병과 3위로 급제하여 연이어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다.

이듬해인 1656년 문과 중시에도 병과 3위로 급제하여 세 번의 과거 시험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겸설서 임명]

겸설서에 임명된 후 설서를 거치며 관직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다.

효종 7년 5월 28일 겸설서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10월 6일 설서가 되었다.

1657

[부수찬 임명]

부수찬에 임명되어 관직을 이어가다.

효종 8년 10월 4일 부수찬에 임명되었다.

1658

[수찬 및 충청도 어사]

수찬으로 임명된 후 충청도 어사로 파견되어 지방 민심을 살피는 임무를 수행하다.

효종 9년 1월 9일 수찬에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4월 11일에는 헌납으로서 충청도 어사로 파견되어 지방 민심을 살피는 임무를 수행했다. 5월 13일 어사 책무를 마치고 귀임하였다.

[교리 및 이조좌랑]

교리로 임명된 후 이조좌랑을 지내며 관직 생활을 이어가다.

같은 해 6월 5일 교리에 임명되었고, 12월 21일에는 이조좌랑을 지냈다.

1659

[이조정랑 임명]

현종 즉위년 이조정랑에 임명되어 요직에 오르다.

현종 즉위년 12월 2일 이조정랑에 임명되었다.

1661

[광주 부윤 역임]

응교를 거쳐 광주 부윤을 역임하며 지방관으로서의 경험을 쌓다.

현종 2년 5월 6일 응교에 임명된 후, 같은 해 6월 9일 광주 부윤을 지냈다.

1663

[동부승지 역임]

대사간을 거쳐 동부승지로 승진하여 왕명 출납의 요직을 맡다.

현종 4년 4월 18일 대사간에 임명된 후, 같은 해 9월 18일 동부승지를 역임했다.

1664

[경기감찰사 역임]

대사간, 병조참지, 승지를 거쳐 경기감찰사를 지내며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다.

현종 5년 2월 28일 대사간, 7월 8일 병조참지, 7월 23일 승지를 거쳐 12월 21일 경기감찰사를 역임했다.

1666

[도승지 임명]

도승지에 올라 조정의 핵심 요직을 맡아 국정에 깊이 관여하다.

현종 7년 1월 24일 도승지에 임명되어 왕명을 출납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호조판서 임명]

대사성과 호조판서에 오르며 고위 관직에 진출하다.

같은 해 7월 23일 대사성에 이어 8월 11일 호조판서에 임명되었다.

1668

[좌참찬 임명]

좌참찬에 임명되어 국정 참여의 폭을 넓히다.

현종 9년 2월 23일 좌참찬에 임명되었다.

1670

[우참찬, 한성판윤 겸임]

우참찬과 한성판윤을 겸임하며 국정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다.

현종 11년 5월 17일 우참찬에 임명되었고, 같은 날 한성판윤을 겸임했다.

[강화유수 임명]

총융사와 호조판서를 거쳐 강화유수를 맡으며 국방과 행정 요직을 두루 거치다.

현종 11년 6월 2일 총융사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6월 13일 호조판서, 8월 23일 강화유수를 지냈으며, 승문원제조를 겸직하고 11월 4일 다시 총융사를 역임했다.

1673

[우의정 제수]

지경연과 판의금부사를 거쳐 마침내 우의정에 오르다.

현종 13년 2월 24일 지경연을 겸직하고, 현종 14년 2월 9일 판의금부사를 지낸 후, 4월 24일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1674

[영의정 등극]

조선 최고위직인 영의정에 오르며 정계의 정점에 서다.

현종 15년 4월 26일 조선 최고위직인 영의정 자리에 올랐다.

[예송 논쟁과 유배]

제2차 예송 논쟁에 참여하여 서인의 입장을 대변하다가 파직되고 춘천으로 유배되다.

영의정에 올랐으나 자의대비의 복제 문제로 남인에게 몰려 위기를 겪었다. 7월 효종의 정비 인선왕후의 승하로 인해 발생한 제2차 예송 논쟁에서 서인으로서 '대공설(9개월 복상)'을 주장했으나, 남인의 '기년설(1년 복상)'이 채택되며 벼슬에서 파직되었다. 현종이 죽자 춘천으로 유배되었다.

1680

[경신대출척 후 복권]

경신대출척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영중추부사와 보사원종공신에 책록되며 복권되다.

1680년(숙종 6년) 경신대출척으로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유배에서 풀려나 양주로 돌아왔으며, 영중추부사가 되고 보사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1688

[영의정 재임명]

숙종 14년 다시 영의정으로 임명되어 조정의 최고 수장 자리에 복귀하다.

숙종 14년 12월 7일 다시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1689

[세자 책봉 반대와 유배]

희빈 장씨의 왕자 세자 책봉을 반대하다 기사환국으로 다시 유배되다.

1689년, 숙종이 희빈 장씨가 낳은 왕자 이균을 왕세자로 책봉하려 하자 송시열과 함께 시기상조라며 반대했다. 이로 인해 기사환국이 발생하여 남인이 다시 집권하게 되었고, 그는 장기현으로 유배되었다.

1690

[유배지에서 사망]

장기현 유배지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치다.

유배지였던 장기현에서 1690년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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