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연표
1951
김문수는 1951년 8월 27일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황강동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중학교 동창으로는 삼성전자 대표를 역임하고 제4대 지방선거에서 상대했던 진대제가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3선 개헌 반대 시위를 하다 제적되었다가 겨우 복적되어 정상적으로 대학입시를 치를 수 있었다.
1970
[서울대 입학과 노동운동 시작]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후진국 사회연구원 활동에 참여하고, 전태일 분신 소식을 접한 뒤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하여 노동운동에 투신하다.
1970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고학으로 입학한 김문수는 대학 내 모임인 후진국 사회연구원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같은 해 피복공장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김근태와 함께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하여 노동계몽운동을 펼치며 한국 노동계의 현실을 체험했다.
1971
[서울대 제적과 군 면제]
부정부패척결 전국학생시위 관련하여 서울대학교에서 제적되다. 이후 고향 영천에서 4H운동, 야학 등 농민운동에 참여하고 수배 생활 중 강제징집되어 중이염을 이유로 군 면제를 받다.
1971년 10월 15일 부정부패척결 전국학생시위와 관련하여 서울대학교에서 제적되었다. 1971년부터 1972년까지 고향 경북 영천에서 4H운동, 야학 등 농민운동을 했으며, 수배 생활 중 강제징집되었다가 중이염을 이유로 군 면제를 받았다.
1974
[민청학련 사건과 노동 현장 투신]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하여 서울대학교에서 또다시 제적되고 청계천 피복공장 재단 보조공으로 근무하며 노동운동을 이어가다.
1974년 불온세력 조종 혐의로 구속·기소된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하여 서울대학교에서 다시 제적되었다. 이후 청계천 피복공장 재단 보조공으로 근무했으며, 여러 공장을 전전하면서도 고학으로 열관리 기능사 2급, 환경관리기사 2급, 안전관리기사 2급, 위험물 취급 기능사 등의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했다.
1976
1976년 6월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되어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1980년 9월까지 노조위원장직을 수행하며 노동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였다.
1980
[구로동맹파업과 고문]
광주민주화운동의 여파로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직에서 해고되고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하다 경찰에 체포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 가혹한 고문을 받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여파로 회사는 노조 해산 정책을 추진하여 김문수는 노동조합 위원장직을 그만두고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이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하다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전기고문과 물고문, 무차별 폭행 등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한쪽 귀 청력을 잃었으며, 구속 후 기소유예로 석방되어 다시 한일도루코로 복직했다.
1981
1981년 여성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한때 도피 생활 중 은신처를 제공했던 구로2공단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을 지낸 설난영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경찰의 감시 속에서도 굳건히 함께 투쟁의 길을 걸었으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이 생전에 가장 아끼고 존경한 인물 중 하나였다는 점은 그의 헌신과 인간적 면모를 증명한다.
1984
1984년 방용석 등과 함께 '한국노동자복지회'를 조직했으며, 그해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부위원장에 피선되었다. 이곳에서 만난 안선모 등을 출판사 등에 주선해주기도 했다.
1985
[전태일 기념사업회와 서노련 활동]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지내며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과도 교류했고,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심상정 등과 함께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다.
1985년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과도 교류했다. 그는 이소선에 대해 '지혜와 뱃심, 부드러움과 투쟁성, 운동과 생활, 어머니와 투사가 한 몸에 결합'이라며 그를 두 번 낳았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같은 해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심상정 등과 함께 서노련 지도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1986
[인천 5.3 민주항쟁 주도 혐의로 구속]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으로서 인천 5.3 민주항쟁 주도 혐의로 구속되어 수감 생활을 하며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다.
1986년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으로 인천 5.3직선제 개헌투쟁 주도 혐의 등으로 구속되어 고문을 받고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아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수감 생활 중 동지들의 멘토이자 버팀목으로 자리했으며, 특히 심상정 등 후배 노동운동가들의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며 끈끈한 연대를 이어갔다.
1988
1988년 개천절 특사로 석방된 후에도 김문수는 변함없이 노동 현장을 지켰다.
1990
[민중당 활동 및 총선 출마]
민중당 창당에 참여하여 민중당 서울특별시 구로구 갑 지구당 위원장과 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고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전국구 3번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다.
1990년 민중당 창당에 참여하여 민중당 서울특별시 구로구 갑 지구당 위원장을 지냈으며, 민중당 노동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전국구 3번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했다.
[이념적 혼란과 보수 전환의 계기]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 붕괴를 지켜보며 사회주의적 이상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점차 이념적 혼란을 겪으며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맞다.
1990년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 붕괴는 김문수가 평생 품어온 사회주의적 이상에 깊은 회의를 안겨주었다. 이로 인해 김문수는 점차 이념적 혼란을 겪으며, 성장에 자원을 집중하되 복지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며 이전의 노동관을 버리고 온건론으로 노선을 선회하였다. 이는 이후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2
1992년 10월 노동인권회관의 소장으로 추천되어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듬해에는 한국노동연구원 현대자동차 노사관계진단팀장에 임명되었다.
1994
[서울대 졸업 및 민주자유당 입당]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25년 만에 졸업하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혁명의 시대는 갔다'는 말을 남기고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다.
1994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입학 후 25년 만에 뒤늦게 졸업했다. 같은 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혁명의 시대는 갔다'는 말을 남기고 민주자유당에 입당했으며, 민주자유당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지구당 조직책이 되었다. 또한 노동부 행정규제완화위원회 위원과 노동인권회관 이사에 선출되었다.
1996
1996년 신한국당 공천으로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부천시 소사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현실주의를 내세운 노동자 권익 향상을 추진했으며, 신한국당 대표최고의원 특별보좌관을 수행하기도 했다. 또한 녹색정치인상을 수상했다.
1998
[노사정위원회 위원 선출 및 한나라당 주요 직책 수행]
야당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대통령 자문기구인 노사정위원회 위원에 선출되고, 한나라당 원내부총무와 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대정부 공격에 앞장서다.
1998년부터 1년간 야당 의원으로는 특별히 대통령 자문기구인 노사정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같은 해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한나라당 노동위원회 위원장, 김대중 정권 대북 뒷거래 진상조사위원회 특별위원장을 맡으며 대정부 공격에 앞장섰다. 한국유권자운동연합으로부터 국회의정활동 환경노동위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9
[결식아동 지원 활동과 '김결식' 별명]
결식아동 돕기 의정활동 공로패와 전국 보육시설협회 감사패를 받고 '김결식'이라는 별명을 얻다.
1999년 결식아동 돕기 의정활동 공로패와 전국 보육시설협회 감사패를 받았다. 당시 김문수는 '결식아동에게 밥을 줄 책임이 국가에 있는데 왜 예산을 배정하지 않아 성금에 의존토록 하느냐?'라고 항의하기도 하여 '김결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0
[희망을 여는 정치연대 활동 및 제16대 국회의원 당선]
시민단체인 희망을 여는 정치연대의 간사로 활동하고 근로기준법 재개정에 찬성하다.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다.
2000년 시민단체인 희망을 여는 정치연대의 간사로 활동했으며, 6월에는 근로기준법 재개정에 찬성하며 노동 실태 파악 및 노동자 권리 찾기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같은 해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었고, 밝은 정치 시민연합 새천년 밝은 정치인상을 수상했다.
2001
[한나라당 사무부총장 및 공천심사위원장]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을 역임하고 2003년에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거쳐 2004년 2월까지 활동하다.
2001년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을 역임했다. 2003년에는 한나라당 대외인사영입위원회 위원장, 공천심사위원장(2003년 12월~2004년 3월)을 맡았으며, 2004년 2월까지 공천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돈 싸 가지고 오는 사람을 제일 먼저 탈락시켰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당대표를 지냈던 최병렬 등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등 혁신적인 공천을 주도했다.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부천시 소사구에서 연이어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노동 분야와 환경, 수도권 교통과 아동보육 분야에 관심을 갖고 많은 의정 활동을 벌였으며, 정권 부패 척결과 북한 인권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장으로서 한나라당 혁신공천을 주도해 당을 위기에서 일정 부분 구출했다.
2005
2005년 국정감사 최우수의원상을 수상하며 의정 활동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2006
2006년 국회출입기자단으로부터 약속 잘 지키는 국회의원 1위와 일 잘 하는 국회의원 1위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4월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2006년 5월 제4회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7월 1일 민선 4기 경기도지사에 취임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7
[수도권 규제 완화 주장 및 수상]
수도권 규제 완화와 경기 지역 개발을 주장하다. 같은 해 제5회 포브스코리아 품질경영대상 공공혁신부문상과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선정 민선 4기 광역자치단체장 공약이행도 평가 1위를 수상하다.
2007년 4월 수도권 규제 완화와 경기 지역 개발을 주장했으며, 같은 해 제5회 포브스코리아 품질경영대상 공공혁신부문상과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선정 민선 4기 광역자치단체장 공약이행도 평가 1위를 수상했다.
2009
[일제 식민지 관련 발언 논란]
부천상공회의소 신년인사회에서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가 안 되고 전쟁이 없었고 통일이 됐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발언하여 논란을 빚다.
2009년 1월 2일 부천상공회의소 신년인사회에서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가 안 되고 전쟁이 없었고 통일이 됐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본질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의 위대함에 대한 이야기 중 언론이 일부만 인용하여 논란을 빚었다.
[무상급식 예산 삭감 관련 발언]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가 경기도교육청의 무상급식 예산을 삭감하자 '학교는 무료급식소가 아니다'라고 발언하며 포퓰리즘을 비판하다.
2009년 12월 2일 하루 전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가 경기도교육청이 제출한 무상급식 예산 650억 원을 삭감하자, 김문수 지사는 '학교는 밥도 중요하지만 선생님이 제일 중요하다. 학교는 무료급식소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이를 대표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오마이뉴스 등 일부 언론은 헌법 31조('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를 언급하며 그의 발언을 비판하기도 했다.
2010
2010년 11월 김문수의 대학 특강과 실·국장 회의에서의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이 자리에서 김문수는 걸그룹 소녀시대에 대해 젊은이들과 공감하는 차원에서 '내가 봐도 잘생겼다. 쭉쭉빵빵이다'라고 농담하였다가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문수는 유감을 표명할 사안이 아니라며 당시 논란을 삼았던 언론에 해명했다.
[이명박 정부 소통 문제 비판]
이명박 정부에 대해 '청와대는 구중궁궐', '언론이 꽉 막혀있다'며 소통 문제를 제기하고 독주를 비판하다.
2010년 9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해왔다. '청와대라는 데가 구중궁궐이지 않습니까?'라며 '각종 보고서를 많이 받겠지만, 그 보고서라는 것하고 현실은 굉장히 다르다'라며 소통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이명박의 독주에 대해서 '리더십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될 때 대통령 본인이 불행해진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세종시 수정안 비판]
정부가 제시한 '세종시 수정안'의 특혜 논란을 일고 있는 인센티브 내용들이 역차별을 부른다며 비판하다.
2010년 1월 7일 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정부가 제시한 '세종시 수정안'의 특혜 논란을 일고 있는 인센티브 내용들이 역차별을 부른다며 비판했다.
[여론조사 결과 고발 파문]
제5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지지율이 낮게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언론사와 여론조사업체를 검찰에 고발하다.
2010년 5월 20일 제5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본인의 지지율이 2위로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와 여론조사업체 '모노리서치'를 검찰에 고발했다. 김문수 후보측은 자신의 지지율이 낮게 나온 여론조사 결과는 편파조사라고 주장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촛불집회 및 역사적 인물 동상 관련 발언]
제5회 지방선거 유세 중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촛불집회에 나섰던 이들은 사과해야 한다'고 발언하고 '광화문 광장에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다.
2010년 5월 29일 제5회 지방선거를 위한 유세를 위해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하던 중 '국민에게 큰 불편을 끼치며 촛불집회에 나섰던 이들은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또한 '광화문 광장에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4대강 사업 추진 의지 표명]
4대강 사업에 대해 '다른 지역에서 안 하면 경기도에서 다 하겠다'고 발언하며 사업 추진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다.
2010년 6월 8일 김문수는 4대강사업에 대해 '다른 지역에서 안 하면 경기도에서 다 하겠다'고 발언했다. 김문수는 이날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단현리에 있는 한강 살리기 6공구 현장에서 '한강 살리기 사업 추진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다른 지역에서 왜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지 모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정희 업적 강조 및 민주주의 발언]
서울대학교 법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업적을 치켜세우며 '배고픈 사람에게 민주주의가 밥을 주진 않는다'고 발언하다.
2010년 11월 2일 서울대학교 법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치켜세운 걸 두고 한 학생이 '민주주의만 외치면 모든 게 정당화되느냐. 배고픈 사람에게 민주주의가 밥을 주진 않는다'고 답했다.
2010년 11월 22일 '세종대왕, 박정희를 다 합쳐도 이명박 대통령이 역대 최고의 역량을 가졌다'고 평가하여 화제가 되었다.
2011
[좌파 포퓰리즘 비판 발언]
'한나라당이 정당의 이념과 교육을 소홀히 함으로써 선진화를 가로막는 좌파의식, 포퓰리즘이 연탄가스처럼 국가와 국민을 오염시켰다'고 발언하다.
2011년 5월 16일 김문수는 '한나라당이 정당의 이념과 교육을 소홀히 함으로써 선진화를 가로막는 좌파의식, 포퓰리즘이 연탄가스처럼 국가와 국민을 오염시켰다'라고 발언했다.
[잦은 외부 특강과 강사료 논란]
재선 1년간 62차례 외부 특강을 가졌고 강사료도 일부 받아 온 것으로 확인되어 도정보다 자신의 정치적 철학과 소신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다.
2011년 6월 20일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김문수 지사는 2010년 7월 자신의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후 11개월 동안 모두 62차례 외부 특강을 가졌다고 한다. 특강 주제를 '통일 강대국, 대한민국을 만들자'로 바꾸고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 등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아 도정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철학과 소신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또한 특강 뒤 50만~100만원에 이르는 강사료도 일부 받아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119 긴급전화 남용 사건]
경기도지사 재직 중 남양주의 노인요양원을 방문하여 119로 긴급전화를 걸어 암 환자 응급 이송 관련 문의를 하다. 이 사건으로 119 장난 전화로 오인한 소방관들이 전보 발령되어 논란이 일다.
2011년 12월 19일 경기도지사 재직 중 남양주시의 노인요양원을 방문했던 김문수가 119로 긴급전화를 걸었다. 요양원 내 암 환자의 응급 이송 관련 문의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119 장난 전화로 오인한 소방관들이 전보 발령되어 논란이 일었다.
2012
2012년 8월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새누리당 경선 후보로 출마하여 최종 2위를 기록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재오와 함께 개혁보수로 불리던 인물이었으나, 박근혜가 당권을 잡으면서 강경보수 쪽으로 당내 기류가 변하자 박근혜를 공개 비판하며 갈등을 빚었다. 이후 강경 우파 성향을 확고히 하며 18대 대선 경선까지 박근혜 등 강경보수 세력에 대한 견제를 계속했다.
[경기도청 이전 보류 논란]
2012년 4월 16일 수원시 영통구 광교신도시로의 도청 이전이 보류되었습니다. 김문수 지사는 부동산 세수 감소 및 재정 비상경영을 이유로 신청사 이전 사업 중단을 지시했으며, 이에 입주 예정자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도청 이전 보류와 지사직 사퇴 시점 등에 대해 반발했습니다.
2014
[경기도지사 임기 종료 및 보수혁신특별위원장 임명]
제33대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다. 이후 9월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되다.
2014년 6월 30일 제33대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9월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국민이 지금 바라는 것은 정치 좀 바꿔라. 여의도 좀 바꿔라. 그리고 먹고살게 좀 해줘라. 희망을 좀 달라. 저는 이렇게 듣고 있다'며 민심을 앞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동안 보수정당 계열의 성지로 꼽혔던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37.69%(51,375표)를 득표해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84,911표)에게 대패하면서 정치 생명에 상당한 차질이 생겼다.
2017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에 참여하여 탄핵 반대 의견을 적극 피력했다.
2018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선거 결과 52.79%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김문수는 23.34%의 득표율로 2위를 기록했다. 원래는 당선보다는 안철수 후보를 이기고 서울 보수 민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기 위해 출마한 것에 가까웠다.
2019
2019년 들어 문재인 대통령 퇴진 운동에 자주 참석했다. 같은 해 조국 사태가 터지자 황교안에 이어 눈물을 흘리며 삭발식을 단행하며 정치적 입장을 표명했다.
2020
[자유통일당 창립 및 당대표 활동]
자유통일당을 창립하고 당대표 활동을 시작하다. 광화문 집회 세력을 규합하고 총선에 대비해 자유우파적 가치를 내세울 전망이었다.
2020년 1월 31일 자유통일당을 창립하고, 당대표 활동을 시작했다. 광화문 집회 세력을 규합하고, 총선에 대비해 자유우파적 가치를 내세울 전망이었다.
[자유공화당 공동대표 및 기독자유통일당 합류]
우리공화당과 통합하여 자유공화당 공동대표가 되다. 그러나 공관위 구성 비율과 비례대표 공천을 놓고 조원진계와 갈등 끝에 탈당하고 기독자유통일당에 합류하다.
2020년 3월 3일 우리공화당과 통합하여 자유공화당이 되었으며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러나 공관위의 구성 비율과 비례대표 공천을 놓고 조원진계와 극심한 갈등 끝에 탈당했고, 기독자유통일당에 합류했다.
[코로나 검사 동행 거부 논란]
사랑제일교회 예배에 참석했던 지인의 코로나 검사 동행을 거부하여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며 논란을 일으키다.
2020년 8월 17일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예배에 참석했던 김문수의 지인 ㄱ씨가 검진을 받지 않고 돌아다니자, 경찰이 ㄱ씨를 주소지 보건소로 강제 연행 조치하기 위해 김문수와 일행에게 다가왔다. 경찰이 검사를 위해 ㄱ씨와 함께 있던 김문수와 성창경에게도 함께 가자고 하자 김 전 지사는 경찰의 요청을 거부하고 언성을 높여 실랑이를 벌여 논란이 되었다.
2021
[서울시장 야권 단일화 및 김종인 사퇴 요구]
김무성, 이재오와 함께 서울시장 야권 후보 단일화와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다.
2021년 3월 18일 김무성, 이재오와 함께 서울시장 야권 후보 단일화와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정치적 목소리를 내었다.
2021년 10월 8일 퇴거불응 및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벌금 3,000,000원을 선고받았다.
2022
2022년 9월 윤석열 정부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2024
2024년 7월 31일 대한민국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으며, 8월 26일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 재가로 제10대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2024년 9월 3일 감염병의예방및관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벌금 2,500,000원을 선고받았다.
2025
2025년 4월 8일 제10대 고용노동부 장관직을 퇴임했다.
2025년 4월 9일 고용노동부 장관을 사직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해, 국회 소통관에서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깨끗한 제가 피고인 이재명 이긴다'고 강조했다.
2025년 5월 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득표율 56.53%를 얻어 제21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당 지도부 단일화 압박에 반발, 후보 일정 중단]
국민의힘 지도부의 단일화 압박에 반발하며 경선 후보로서의 일정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다.
2025년 5월 6일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덕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압박하자, 김문수는 정당한 대통령 후보인 자신을 강제로 끌어내리려 한다며 경선 후보로서의 일정을 지금 시점부터 중단하겠다고 경북 경주시 경주화백컨벤션센터를 찾아 밝혔다.
[한덕수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 결렬 및 당내 압박]
한덕수 대선 후보와 첫 단일화 회동을 가졌으나 성과 없이 끝나고, 권성동 원내대표가 단일화 압박을 위해 단식 농성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하다.
2025년 5월 7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김문수가 한덕수 대선 후보를 만나 '김문수-한덕수 단일화'에 대해 1시간 20여분 동안 논의하였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 이날 김문수와 한덕수의 회동 이후 권성동 국힘 원내대표는 김문수에게 단일화를 압박하기 위해 단식 농성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국민의힘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중 82.82%가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덕수 후보와의 2차 단일화 회동 결렬]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한덕수 후보와 2차 단일화 회동을 가졌으나 1시간 만에 결렬되고, 당 지도부의 지원 의혹을 제기하다.
2025년 5월 8일 오후 4시 30분 경 서울 국회의사당 사랑재 인근 야외 테이블에서 단일화를 위한 2차 회동이 있었으나 1시간 동안 단일화에 전진 없이 결렬되었다. 이 회동은 텔레비전과 유튜브로 생중계되었다. 김문수는 당 지도부(권영세, 권성동 등)가 한덕수 후보를 지원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한덕수 후보는 자신은 당 지도부와 어떠한 논의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당에 대한 해가 되는 행위라고 분연해했다.
[국민의힘 의원총회 및 단일화 협상 결렬]
국회 의원총회에 참석하여 당 지도부를 비판하고,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에 반발하여 퇴장하는 등 당내 갈등이 격화되다. 이후 단일화 협상도 최종 결렬되다.
2025년 5월 9일 김문수는 의원들의 요청을 받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했다. 모두발언에서 '당 지도부는 현재까지도 저 김문수를 끌어내리고, 무소속 후보를 우리 당의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 위해 온갖 불법·부당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말하며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이에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발언하며 의총장을 퇴장했다. 같은 날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는 김문수가 낸 전당대회 개최 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후 한덕수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이 '역선택 방지 조항' 등에서 이견을 보이면서 잇따라 결렬되었다. 국민의힘은 단일화 협상이 결렬될 경우 비상대책위원회에 후보 교체 권한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김문수 후보 기습 교체 사건과 후보 자격 회복]
국민의힘에서 김문수 후보 선출을 취소하고 한덕수 입당 및 후보 등록을 진행한다는 속보가 나오다. 이에 김문수는 불법적 조치에 대한 법적 대응을 시사하고, 전 당원 투표에서 '한덕수로 후보 변경' 안건이 부결되어 후보 자격을 회복하다.
2025년 5월 10일 새벽 1시쯤 국민의힘에서 김문수를 선출 취소하고 한덕수 입당 및 후보 등록을 진행한다는 속보가 나왔다. 당 지도부는 당헌 특례 규정을 근거로 삼았으나, 새벽 3~4시, 1시간 만에 후보 등록을 요구하는 등 '날치기' 논란이 일었다. 이에 김문수는 불법적이고 부당하다며 즉시 법적, 정치적 조치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고, 서울남부지법에 후보 선출 취소 효력정지 가처분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날 진행된 전 당원 대상 ARS 조사에서 '한덕수로 후보 변경' 안건이 부결되어 김문수는 국민의힘 후보 자격을 즉시 회복했다. 이로써 '김문수 후보 기습 교체 사건'은 마무리되었고,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책임을 지고 사퇴를 밝혔다.
[제21대 대선 후보 등록]
대선 후보 등록 마지막 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아 직접 후보 등록을 마치고, 선출 취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취하하다.
2025년 5월 11일 대선 후보 등록 마지막 날 김문수가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아 직접 후보 등록을 했다. 또한 전날 당원 투표 결과로 대통령 후보의 지위와 권한이 회복돼 가처분 실익이 없어졌으므로 오전 9시 30분 가처분 신청을 취하했다고 밝혔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낙선]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41.15%의 득표율을 얻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패배하며 낙선하다.
2025년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구조사 결과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과반 득표 확정 및 두 자릿수 이상 득표율 격차 패배가 예측되면서 낙선이 유력해졌다. 개표 초반에는 1~2% 정도 차이를 내며 약간 우위를 점했지만 이후 이재명 후보에게 역전당한 뒤 빠르게 격차가 벌어졌다. 최종 득표율 41.15%(14,395,639표)를 득표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49.42%, 17,287,513표)에게 8.27%p차(2,891,874표차)로 패배하였다.
[대선 패배 후 당대표 출마 유보]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당대표가 되라는 것은 쓰레기통에 들어가서 살라고 하는 것과 같다며 당대표 출마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다.
2025년 6월 5일 열린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는 지금 당대표가 되라고 하는 것은 쓰레기통에 들어가서 살라고 하는 것과 같다며 우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당대표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강력한 당대표 후보로 부상했다.
[맏형상으로 정치 일정 취소]
2025년 6월 11일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암 투병 중이던 맏형 김영수 씨가 별세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일 오후 예정된 국민의힘 상임고문단과의 당 수습 방안 논의 일정을 취소하고 장례식장을 서울 모처로 변경했습니다.
2025년 7월 20일 오후 2시에 기자 회견을 열어 공식적으로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최종 후보는 김문수, 안철수, 장동혁, 조경태였다.
[당대표 경선 앞두고 당사 무기한 농성]
국민의힘 당사 1층에서 14일 동안 무기한 농성을 진행하며 당대표 경선에 대한 의지를 다지다.
2025년 8월 14일부터 27일까지 14일 동안 국민의힘 당사 1층에서 무기한 농성을 진행했으며 밤도 새웠다. 잠은 그 자리에서 돗자리를 펴고 잤고, 3일차에는 약 10분간 팔굽혀펴기, 하늘자전거 등을 하는 체조를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5년 8월 22일 본선에서 아무도 과반을 넘지 못했고 비윤 성향이자 탄핵 찬성 후보인 안철수, 조경태가 동반 탈락했다. 이로써 당대표 후보는 단 2명 김문수 본인과 장동혁만 남아 결선을 치루게 되었다. 8월 26일 결국 49.73% 득표율로 낙선하며 아깝게 당선에 실패했다. 여론조사에서는 60%를 넘겨 장동혁을 20% 넘게 압도했지만, 당원 선거인단에서 5%p 정도 밀린 것이 패인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