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덕
연표
1739
조선 전라도 제주목 성내에서 김응렬과 제주고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751
12세의 어린 나이에 호열자로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고아가 되었으며, 이후 외숙부 집에 의탁하여 지냈습니다.
1760
가난으로 인해 외숙부 집을 나와 은퇴한 기생에게 의탁하여 생활했으며, 이때부터 옷을 동여매고 식비를 줄여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제주목사에게 탄원하여 양인으로 신분을 회복한 뒤, 객주를 운영하며 귤, 미역, 말총 등 제주 특산물을 육지로 유통하며 거상으로 성장했습니다.
1793
[제주 대기근 구휼미 기부]
제주도에 세 고을에서만 6백여 명이나 아사할 정도로 심각한 흉년이 닥치자, 전 재산을 풀어 47403석의 쌀을 사서 구휼미로 기부하여 수많은 제주 백성을 구제했습니다.
1793년, 제주도에 심각한 흉년이 계속되어 세 고을에서만 6백여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습니다. 조정에서 2만여 섬의 구조 식량을 보냈으나 운송 선박 침몰로 실패하자, 김만덕은 자신이 평생 모은 전 재산을 털어 47403석의 쌀을 구입하여 모두 구조식량으로 기부,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제주도 민중들을 구했습니다. 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796
[정조 알현 및 소원 성취]
김만덕의 선행이 알려지자 정조는 그녀를 칭찬하고 소원을 물었습니다. 만덕은 한양 궁궐과 금강산 유람을 원했고, 정조는 관의 허락 없이 제주도민은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규정을 깨고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듬해인 1796년 김만덕의 선행이 정조에게까지 알려지자, 정조는 제주목사를 통해 김만덕의 소원을 물었습니다. 만덕은 한양 궁궐과 금강산 유람을 소원했고, 정조는 제주도민의 섬 밖 출입 금지 규정을 특별히 풀어 그녀의 소원을 허락했습니다. 또한 그녀를 내의원 차비대령행수로 삼아 왕을 알현할 자격을 부여하며 선행에 보답했습니다.
1812
1812년, 73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습니다. 그녀의 묘는 가운이마루 길가에 처음 조성되었습니다.
김만덕이 사망한 해인 1812년 10월, 그녀의 업적을 기리는 구묘비문이 건립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1840
[김정희 '은광연세' 편액]
김정희가 제주 유배 중 김만덕 가문의 3대손 김종주에게 '은혜의 빛이 길이 빛나리'라는 뜻의 '은광연세' 편액을 써 주었습니다.
김만덕 사망 30여 년 후인 1840년,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김만덕 가문의 3대손인 김종주에게 '은혜의 빛이 길이 빛나리'라는 의미의 '은광연세(恩光衍世)' 편액을 써 주며 그녀의 선행을 기렸습니다.
1977
1977년 정월, 김만덕의 묘는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한 모충사로 이장되었습니다.
2007
2007년 1월 24일, 김만덕 묘비(金萬德 墓碑)는 제주특별자치도의 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되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