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
연표
1958
김두관은 1958년 12월 3일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고향은 그가 정치 활동을 시작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1983
영주경상전문대학 행정과와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이듬해인 1983년, 김두관은 제13대 총선에 민중의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아쉽게도 낙선했습니다. 이는 그의 첫 정치적 시도였습니다.
1986
1986년 7월 21일, 김두관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는데, 이는 그의 초기 사회운동 경력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1987
1987년, 김두관은 남해농민회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지역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 7월 10일, 이전 집시법 위반에 대한 특별복권이 이루어지면서 김두관은 다시 공식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88
[마을 이장 및 지구당 위원장]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 마을 이장과 민중의당 경상남도 지부 남해군·하동군 지구당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1988년, 김두관은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 마을 이장을 맡았으며, 같은 해 민중의당 경상남도 지부 남해군·하동군 지구당 위원장으로서 정치적 활동의 폭을 넓혔습니다.
1989
1989년, 김두관은 남해신문(주)의 대표이사 사장 겸 발행·편집인으로 취임하여 언론 분야에서도 활동했습니다. 이 직책은 1995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1995
1995년 6월 27일, 김두관은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여 경상남도 남해군수에 당선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첫 당선직이자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95년 7월 1일, 김두관은 제38대 경상남도 남해군수로 취임하여 민선 1기 군수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8
1998년 6월 4일, 김두관은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남해군수에 재선되었습니다. 그는 민선 2기 군수로서의 임기를 이어갔습니다.
2001
2001년, 김두관은 자치연대 공동대표를 맡으며 지방 자치와 분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2002
2002년 4월 13일, 김두관은 제39대 경상남도 남해군수직에서 퇴임하며 군수로서의 7년간의 임기를 마쳤습니다.
2002년, 김두관은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지사에 출마했으나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습니다.
2003
2003년, 김두관은 새천년민주당 당개혁특위 위원,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지방분권연구소 이사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으며 활발한 정치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03년 2월 27일,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김두관은 제5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취임했습니다. 이는 그가 국무위원으로서 중앙 정치 무대에 진출하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2003년 9월 3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미군 스트라이크부대 시위 대응 미흡 논란이 불거지면서, 당시 여소야대 정국에서 한나라당의 주도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한 해임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해임안이 통과된 것은 큰 정치적 파장이 있었습니다.
2003년 9월 17일, 국회의 해임안 가결과 여론의 압박 속에 김두관은 행정자치부 장관직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이후 허성관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후임으로 내정되었습니다.
2004
2004년, 김두관은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남해군·하동군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당시 한나라당 박희태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이후 열린우리당 경상남도당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2005
2005년, 김두관은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되어 대통령의 정무 활동을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06
2006년, 김두관은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경상남도지사에 다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이와 함께 열린우리당 최고위원과 민부정책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했습니다.
2006년 11월 6일, 김두관은 국정자문회의 의원 138명에 대한 보궐선거에서 국정자문위원으로 추가 당선되어 국정 자문 역할을 맡았습니다.
2009
2009년 10월, 김두관은 양산시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송인배 후보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문재인, 안희정 등과 함께 선거운동을 지휘했습니다.
2010
2010년 6월 2일, 김두관은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야권 단일 후보로 경상남도지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이달곤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0년, 경상남도지사로서 김두관은 경남 FC의 구단주로 취임하여 지역 프로축구단의 운영을 맡았습니다.
[경남도지사 취임 및 4대강 사업 반대]
제34대 경상남도지사로 취임했습니다. 재임 중 낙동강 4대강 사업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2010년 7월 1일, 김두관은 제34대 경상남도지사로 취임했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정부의 낙동강 4대강 사업에 강하게 반대하며 사업권 강제회수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는 등 도민의 입장에서 환경 보호와 정의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012
2012년 7월 1일, 김두관은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경상남도지사직을 사퇴했습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밀려 최종적으로 패배했습니다.
2014
2014년, 김두관은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경기 김포시 지역구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홍철호 후보에게 패배하며 국회 입성에 실패했습니다.
2014년 12월, 김두관은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당 김포시 지역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지역 조직을 이끌었습니다.
2016
2016년 4월 13일, 김두관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경기 김포시 갑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중앙 정치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20
2020년 4월 15일, 김두관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경남 양산시 을 지역구에 출마, 당선되며 국회의원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지역구를 옮겨 다시 한번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2020년 5월, 김두관은 더불어민주당 경상남도당 양산시 을 지역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지역 조직을 이끌었습니다.
[인천공사 비정규직 발언 논란]
인천국제공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논란에 대해 '조금 더 배웠다고 2배 임금 받는 것이 불공정'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2020년 6월 26일, 김두관은 인천국제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 "조금 더 배우고 필기시험 합격해서 정규직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이라고 발언하여 큰 논란을 빚었습니다. 이 발언은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불공정 시비를 일으키며 여러 비판을 받았습니다.
2021
[제20대 대선 출마 선언]
봉하마을에서 열린 지지조직 '노정연' 발대식에 참석하여 제20대 대선 출마 의지를 보인 후 공식 선언했습니다.
2021년 7월 1일, 김두관은 봉하마을 잔디밭에서 자신의 지지조직인 노정연 전국 발대식에 참석하여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고 공식 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대선 경선 사퇴 및 이재명 후보 지지]
제20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경선 도중 사퇴하며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2021년 9월 26일, 김두관은 제20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예비경선을 통과해 본경선에 진출했으나, 전북 경선이 끝난 뒤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며 경선에서 사퇴했습니다. 이는 대선 경선의 주요 변수로 작용했습니다.
2022
2022년 8월, 김두관은 더불어민주당 경상남도당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지역 당을 이끌었습니다.
2024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남 양산시 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김태호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습니다.
2024년 4월 10일, 김두관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인 경남 양산시 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국민의힘 김태호 후보에 밀려 아쉽게 낙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