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창 (화가)
연표
1913
1913년 2월 18일, 서울 운니동에서 당시 총독부 토지관리국 직원이던 아버지 김승환과 어머니 한윤명 사이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기를 잠시 충청남도 공주에서 보내기도 했다.
1921
여덟 살(승동보통학교 2학년)에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을 상실한 후 언어 장애의 증세가 있었다. 이후 어머니의 소개로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동양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1931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소개로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동양화를 배워 1931년 조선미술대전에 출품했다.
1937
[조선미술전람회 최고상 수상]
24살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며 화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연 4회 특선 경력을 쌓았다.
24살 때인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이후 1940년까지 6회 입선, 특선 3회를 기록하며 연 4회 특선 경력을 쌓았다.
1940
[선전 추천작가 선정 및 일제 선전 활동 시작]
27살에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가 되었고, 광복 전까지 일제의 내선일체 사상을 정당화하는 친일 활동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27살에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가 된 후, 광복 전까지 일제의 내선일체 사상을 정당화하는 친일 활동이 이어졌다. 1940년 10월 조선남화연맹전, 1943년 1월 애국백인일수전람회를 통해 일제의 기금 모집에 협력하였다. 1942년에서 1944년까지 일제 말 친일 미술전인 반도총후미술전 일본화부 추천작가로 발탁되었다.
1943
1943년에 화가 박래현과 처음 만나서 3년간의 필담 연애 끝에 1946년 결혼하였다.
1943년 8월 6일자 《매일신보》에 가 게재되었고, 이후 조선식산은행의 사보 《회심(會心)》지에 , 경성일보사 주최 ‘결전’ 미술전람회에 등이 친일 작품으로 지적되었다.
1946
1943년에 아내 박래현과 처음 만나서 3년간의 필담 연애 끝에 1946년 결혼하였다.
1957
[미국 현대작가전 초대 출품]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화랑 주최 한국 현대작가전에 초대 출품하며 국제적인 활동의 첫 발을 내디뎠다.
1957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화랑 주최 한국 현대작가전에 초대 출품했다. 이후 1960년 타이베이, 홍콩, 도쿄, 마닐라 한국미술전에 출품하는 등 국제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1960
[국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역임]
대한민국 국전의 초대작가가 되었고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며 한국 미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60년 국전 초대작가가 되어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타이베이와 홍콩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 출품했고 이어 도쿄·마닐라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도 출품했다.
1963
[5월문예상 수상 및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 출품]
5월문예상 미술본상을 수상하고,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출품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963년에 5월문예상 미술본상을 수상했고,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도 한국 대표로 출품했다.
1976
배우자 박래현이 1976년 1월 2일 사망하며 사별했다.
1977
1977년 은관문화훈장(2등급)을 수훈했다.
1979
[한국농아복지회 창설 및 사회 공헌 활동 시작]
한국농아복지회를 창설하고 초대회장에 취임했으며, 1984년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센터인 청음회관을 설립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에 헌신했다.
1979년 한국농아복지회를 창설하여 초대회장에 취임하였고, 1984년에는 서울 역삼동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센터인 청음회관을 설립하였다.
2001
2001년 1월 23일 사망했으며, 같은 해 금관문화훈장(1등급)이 추서되었다.
2008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명단 선정]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미술 분야에 선정되었습니다. 이어 2009년에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