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다카요시
연표
1833
[유신삼걸, 기도 다카요시 탄생]
조슈번의 무사 가문에서 태어나 가쓰라 집안의 양자가 된 그는 요시다 쇼인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존왕양이에 대한 사상을 깊이 배우게 된다. 이는 훗날 그가 일본의 미래를 바꾸는 혁명가가 되는 초석이 되었다.
기도 다카요시는 1833년 8월 11일 조슈번 하기시에서 무사 집안인 와다 마사카게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가쓰라 집안에 양자로 들어갔다. 요시다 쇼인의 문하생으로서, 요시다 기숙학교에서 공부하며 존왕양이의 사상을 배웠다. 학생 시절에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릴 운동을 이끈 조슈 번의 지도자들과 가깝게 지냈다.
1862
[조슈번의 핵심 리더로 부상]
조슈번의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이 된 그는 나가사키와 시모다에서 서양식 함선 건조를 직접 참관한 후 조슈번 최초의 전함 건설을 감독하며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1862년 조슈번 최고 지도자 가운데 한사람이 되었으며, 나가사키와 시모다에서 서양식 함선의 건조를 참관한 후 조슈에 돌아와 조슈번의 첫 번째 전함 건설을 감독하였다.
1865
[막부 탄압 극복과 정치적 재기]
도쿠가와 막부의 가혹한 탄압으로 지도자 직을 박탈당하며 위기에 처했지만, 막부 군대가 철수하자 급진파와 재기하여 2차 도쿠가와군 원정을 성공적으로 격퇴하고 정치적 입지를 되찾았다.
1865년 도쿠가와 막부는 조슈번에 원정해서 가혹하게 탄압했다. 조슈번에는 보수 정부가 들어서고, 기도는 지도자 직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막부 군대가 철수하자 급진파들도 자신들 군대를 조직하였고, 그리하여 2차 도쿠가와 군 원정을 성공적으로 격퇴할 수 있었다.
1868
[메이지 유신 주도 및 '유신 삼걸' 등극]
조슈번의 우두머리로서 사쓰마번 급진파 사무라이들과 손을 잡았다. 오쿠보 도시미치, 사이고 다카모리와 함께 쇼군을 무너뜨리고 천황을 복권시키는 쿠데타를 지도하며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어 '유신 삼걸' 중 한 명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 뒤 기도는 조슈번 우두머리로서 사쓰마번의 급진파 사무라이들과 협상을 시작하였다. 그와 오쿠보 도시미치, 사이고 다카모리는 함께 쇼군을 무너뜨리고 일본 천황을 권력에 복직시키기 위한 쿠데타를 지도하여, 이른바 '유신 삼걸'로 알려지게 된다.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한 행정 개혁 주도]
메이지 유신 이후, 권력 있는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어 제국의 수도를 교토에서 도쿄로 옮기는 책임을 맡았다. 또한 국가를 현들로 재분배하고 중앙 정부가 임명한 지사가 다스리도록 하는 등 근대 국가 체제를 확립하는 데 앞장섰다.
메이지 유신의 가장 권력있는 지도자들 중의 하나가 되어, 제국의 수도를 교토에서 에도(지금의 도쿄)로 옮기는 책임을 지던 기도는 국가를 현들로 재분배하여, 중앙 정부에 의하여 임명된 지사들에게 다스리도록 하였다.
1871
[이와쿠라 사절단 참여 및 정한론 반대]
오쿠보, 이토와 함께 이와쿠라 사절단의 일원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선진 문물을 직접 경험했다. 귀국 후에는 입헌군주제를 강력히 주장하며, 사이고 다카모리가 추진하던 조선 출병 계획인 정한론에 단호히 반대하여 출병을 막아냈다.
1871년 오쿠보 도시미치,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이와쿠라 사절단의 일원으로 세계를 여행하였다. 이후에 그는 입헌군주제를 주장하였으며 귀국 후에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에 반대하여 조선출병을 막았다.
1874
[대만 정벌 반대와 정계 복귀]
대만 정벌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한때 정치적으로 실각했으나, 1875년 오사카 회의 이후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복귀 후에는 일본에 서양식 헌법을 수립하기 위한 중요한 작업들을 시작하며 근대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1874년 대만 정벌에 반대하다가 실각하였다. 1875년 오사카 회의 이후에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고, 서양식 헌법의 수립을 위한 일을 시작하였다.
1877
[혁명가의 마지막, 지병으로 사망]
사쓰마 반란이 일어난 후 1877년 5월 26일, 그는 43세의 젊은 나이로 오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헌신했던 그의 삶은 아쉽게도 길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일본 역사에 깊이 새겨졌다.
사쓰마 반란이 일어난 후인 1877년 5월 26일, 43살의 나이로 예부터 갖고 있던 지병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