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모으기 운동
연표
1997
[아시아 금융위기 발발]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아시아 전역에 금융위기가 번지며 한국도 외채 상환 불능 위기에 처했습니다.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금모으기 운동의 직접적인 배경이 됩니다.
태국의 고정환율제도가 변동환율제도로 바뀌면서 태국 바트화 시세가 폭락, 동아시아 금융 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외채 상환이 어려운 금융기관, 달러 부족, 원화 환율 폭등 등 심각한 경제 문제에 직면했고,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려워 외화 차입이 봉쇄되며 장기 외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애국가락지 운동 시작]
국가적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새마을운동 단체인 '새마을부녀회 중앙연합회'에서 '애국가락지 모으기 운동'을 선포하며 금모으기 운동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새마을운동 단체 중 하나인 '새마을부녀회 중앙연합회'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애국가락지 모으기 운동'을 선포했습니다. 이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국민들의 애국심과 단결력을 이끌어내고자 한 움직임이었습니다.
[정부, 민간운동 평가]
국무총리 주재 비상경제대책추진위원회에서 외환위기 극복 계획이 보고되었고, 정부는 민간단체의 금모으기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전국적인 확산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추진위원회 회의에서 외환위기 극복 계획이 보고되었고, 정부는 경제난 극복을 위한 민간단체 차원의 바람직한 활동으로 평가했습니다.
[첫 금 헌납식 개최]
새마을부녀회 주도로 첫 헌납식이 열려 금, 은, 외화, 한화 등 총 1억 3천여만 원 상당의 기부금이 모였습니다.이 소식은 국민적 참여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7년 12월 10일, 새마을부녀회의 헌납식에서는 금 2445 돈, 은 133 돈, 외화 28 달러, 한화 701만 2천원이 기부받아 총 1억 3천 95만여 원이 모였습니다. 이 모금액은 중소기업진흥청에 중소기업지원금으로 전달되었습니다.
1998
[운동 최종 종료]
2월 말부터 주요 금융기관들이 금 모으기 업무를 중지하기 시작했고, 4월 말 농협중앙회를 마지막으로 모든 금모으기 운동이 최종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1998년 2월 말 주택은행·국민은행 등 5개 금융기관이 금모으기 업무를 중지한 데 이어 4월 말 농협중앙회를 마지막으로 모든 금모으기 운동이 끝났습니다. 운동 시작부터 최종 종료까지 약 227톤의 금이 모였고, 이는 18억 2천만 달러의 외화를 확보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전국적으로 351만여 명이 참여하여 4가구당 1가구꼴로 평균 65g의 금을 내놓는 등 전례 없는 국민적 참여를 기록했습니다.
[KBS 캠페인 시작]
'KBS 금 모으기 캠페인'이 시작되며 금모으기 운동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전국적인 국민 참여 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단순 헌납이 아닌 보상 체계로 전환되어 참여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1998년 1월 5일부터 'KBS 금 모으기 캠페인'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캠페인으로 금모으기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기존의 헌납 방식에서 벗어나 금을 내놓으면 전문 감정 후 수출하고 그에 해당하는 달러를 당시 환율과 국제 시세에 맞춰 원화로 돌려받는 보상 체계로 변경되어 국민 참여를 더욱 독려했습니다.
[공식 운동 종료 선언]
전국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금모으기 운동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그러나 국민의 염원을 모으기 위해 농협에서는 운동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1998년 3월 14일, 금모으기 운동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하지만 농업협동조합(농협)에서는 이후에도 운동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이 시점까지 약 225톤의 금이 모금되었고, 전국적으로 349만 명이 참여하여 당시 시세로 21억 7천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이 모였습니다.
2001
[IMF 차입금 조기 상환]
당초 예정보다 3년 앞당겨진 2001년 8월, IMF로부터 지원받은 195억 달러의 차입금을 전액 상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