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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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교육인, 예술감독 + 카테고리

대한민국 최초의 순 한국어 이름을 가진 금난새는 클래식 음악 대중화에 평생을 바친 지휘자입니다. 베를린 음대 졸업 후 카라얀 콩쿠르 4위 입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KBS 교향악단과 수원시립교향악단을 이끌며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민간 오케스트라 '유라시안 필하모닉'을 창단하고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 클래식의 즐거움을 전파하며 대한민국 클래식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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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47

[출생]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 '금난새'는 대한민국에 등록된 최초의 순 한국어 이름입니다.

1947년 9월 25일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이자 작곡가인 금수현은 해방 이후에도 남아있던 일제 잔재로 인해 순 한국어 이름 등록이 어려웠던 시기에 신문 기고를 통해 순 한국어 이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제도가 바뀐 후 '금난새'는 대한민국에 등록된 최초의 순 한국어 이름이 되었습니다.

1965

[서울대 음대 콩쿨 작곡부문 입상]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주최 콩쿨에서 작곡 부문 입상하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주최 콩쿨에서 작곡 부문 입상하며 일찍이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1966

[서울 영 앙상블 결성]

대학교 2학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서울 영 앙상블'을 결성하며 지휘자로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당시 지휘를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 독학으로 시작한 활동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2학년 시절, 지휘를 배울 방법이 없어 친구들 스무 명을 모아 '서울 영 앙상블'을 결성했습니다. 세종로 미국 공보원 강당을 연습실로 활용하며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경험을 시작했습니다.

1967

[클래식 음악 편곡가 데뷔]

클래식 음악 편곡가로서 공식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67년, 클래식 음악 편곡가로 데뷔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지휘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1970

[미국 공보원 어워드 오브 메리트상 수상]

미국 공보원으로부터 어워드 오브 메리트 상을 수상했습니다.

미국 공보원 어워드 오브 메리트 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73

[베를린 음악대학 유학 시작]

지휘를 배우기 위해 독일 베를린 음악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당시 유학이 쉽지 않았던 시기였으나, 현지에서 교수를 찾아 배움을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유학이 쉽지 않던 시절, 지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베를린 음악대학의 라벤슈타인 교수를 찾아가 그 자리에서 입학 허가를 받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1976

[피에르 데르보 마스터클래스 참가]

프랑스에서 피에르 데르보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하며 지휘 실력을 더욱 다졌습니다.

프랑스 피에르 데르보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하여 지휘에 대한 심도 깊은 지식을 습득하고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1977

[베를린 음악대학 졸업]

베를린 음악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유학 4년 만에 이뤄낸 성과로, 그의 지휘자 커리어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독일 베를린 음악대학을 4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이 시기에 지휘자로서의 전문적인 역량을 완성했습니다.

[난파음악상 수상]

난파음악상을 수상하며 국내 음악계에서도 그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카라얀 콩쿠르 입상과 동시에 난파음악상을 수상하며 국내외에서 동시에 지휘자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 4위 입상 및 지휘자 데뷔]

세계적인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4위로 입상하며 지휘자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이 콩쿠르는 세계 최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유망 지휘자를 발굴하기 위해 만든 대회입니다.

베를린 음대 졸업 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주최한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4위로 입상하여 국제적인 주목을 받으며 지휘자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지휘자로서는 최초의 기록입니다.

1980

[국립교향악단 전임지휘자 임명]

국립교향악단 전임지휘자로 임명되며 국내 무대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귀국 후 국립교향악단의 전임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1981

[KBS 교향악단 최연소 전임지휘자 임명]

KBS 교향악단 최연소 전임지휘자로 임명되어 12년간 악단을 이끌었습니다. 국내 최고 수준의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국내 최고 교향악단 중 하나인 KBS 교향악단에 최연소 전임지휘자로 임명되어 12년 동안 악단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는 그의 지휘 경력에 있어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986

[뮌헨 국립극장 오페라 지휘 연수]

세계적인 지휘자 볼프강 자발리쉬의 초청으로 뮌헨 국립극장에서 오페라 지휘 연수를 받았습니다.

볼프강 자발리쉬의 초청을 받아 독일 뮌헨 국립극장에서 오페라 지휘 연수를 받으며 오페라 지휘 역량을 강화했습니다.

1992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부임]

KBS 교향악단에서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로 전격 부임했습니다. 당시 침체되어 있던 악단을 연간 60회 이상 연주하는 활발한 단체로 발전시키며 '죽은 악단을 살려내는 지휘자'라는 평을 얻었습니다.

당시 연주 활동이 적고 관객도 없던 수원시립교향악단에 상임 지휘자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오페라 제작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악단을 활성화시키고 관객을 유치하여 연간 10회에 머물던 연주 횟수를 60여 회 이상으로 늘렸습니다.

1995

[옥관문화훈장 수훈]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하며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습니다.

1997

[예술의전당 감사패]

예술의전당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습니다. 그의 다양한 공연 기획과 성공적인 연주 활동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예술의전당으로부터 그의 기여를 인정하는 감사패를 받았습니다.

1998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오케스트라인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현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로비 음악회', '도서관 음악회'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섰습니다.

수원시향과의 임기 말 갈등 후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오케스트라인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현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습니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이 악단을 8년 만에 연간 135회 공연, 12만 명 관객을 동원하는 '국민 오케스트라'로 성장시키며 클래식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9

[한국평론가협회 음악대상 수상]

한국평론가협회 음악대상을 수상하며 음악 평론계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국평론가협회로부터 음악대상을 수상하며 그의 예술적 성과와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았습니다.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임용]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후학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지휘자로서의 경험과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며 교육자로서도 활동했습니다.

[포스코 로비 음악회 시작]

서울 테헤란로 포스코 본사 로비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연주를 시작으로 로비 음악회를 개최했습니다. 기업 공간을 활용한 혁신적인 공연으로 대중에게 클래식을 선사했습니다.

유라시안 필하모닉 창단 후 자금 마련을 위해 포스코 홍보팀에 연주를 제안했고, 1999년 포스코 로비에서 1,000여 석 규모의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연주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습니다. 이후 베토벤 교향곡 전곡 및 차이콥스키 교향곡 전곡 연주 등 정기적인 로비 음악회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2000

[청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임명]

청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어 지역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청주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어 지역 클래식 음악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2001

[예술의전당《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시작]

예술의전당 기획 프로그램인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를 기획하여 2006년까지 6년 동안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유료 음악회 성공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클래식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예술의전당에서 기획한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를 시작했습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2,400석 규모의 연주회가 대한민국 최초로 유료 음악회 전석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청소년들에게 클래식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2002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홍보대사]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을 장려했습니다.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기업들의 문화예술 지원을 독려했습니다.

2005

[제주 뮤직 아일 페스티벌 시작]

제주 뮤직 아일 페스티벌을 시작하여 제주도와 서울에서 매년 겨울 다채로운 실내악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매년 겨울 제주도와 서울에서 열흘간 진행되는 제주 뮤직 아일 페스티벌을 시작했습니다. 국내외 실력파 연주자들이 참여하는 이 페스티벌은 많은 실내악 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2006

[경기필하모닉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임명]

경기필하모닉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했습니다.

경기필하모닉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아 악단의 성장에 기여했습니다.

[울릉도 음악회 개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클래식 대중화에 힘쓴 그의 발자취 중 가장 감명 깊었던 연주회로 울릉도 음악회를 꼽았습니다. 공군참모총장의 도움으로 헬기 지원을 약속받았으나 기상 악화로 배를 타고 이동하여 공연을 성사시켰습니다.

전국 순회 연주 중 유일하게 가보지 못했던 울릉도에서 공연을 개최했습니다. 당초 헬기 지원을 약속받았으나 안개로 인해 배를 타고 이동하는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500석 규모의 공연에 1,000명 가까운 관객이 몰려 큰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금난새는 이 공연을 가장 감명 깊었던 연주회로 회상했습니다.

2008

[S&T홀딩스 사외이사]

S&T홀딩스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기업 경영에도 참여했습니다.

S&T홀딩스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그의 경험을 활용했습니다.

2009

[한국최고경영자회의 문화경영 문화인부문 대상]

한국최고경영자회의 문화경영 문화인부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문화경영 리더십이 인정받은 것입니다.

한국최고경영자회의로부터 문화경영 문화인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탁월한 리더십과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2010

[인천 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 지휘자 임명]

인천 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부임하여 2014년까지 활동했습니다.

인천 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어 악단의 예술적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결핵퇴치 홍보대사]

결핵퇴치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공익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결핵퇴치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한국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

한국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어 젊은 음악가들을 이끌었습니다.

한국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를 맡아 미래 음악 인재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 명예교사]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 명예교사로 위촉되어 예술 교육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 명예교사로 위촉되어 청소년과 일반인들에게 문화 예술 교육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효령상 문화부문 수상]

효령상 문화부문을 수상하여 문화 분야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효령상 문화부문을 수상하며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속적인 기여를 인정받았습니다.

2011

[제주도 홍보대사]

제주도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제주의 문화 관광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제주도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충무아트홀 상주단체 지정]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충무아트홀의 상주단체로 지정되어, 매년 정기적인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충무아트홀 상주단체로 지정되어, 매년 충무아트홀에서 정기적으로 음악회를 개최하며 관객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습니다.

2012

[맨하탄 챔버 뮤직 페스티벌 시작]

맨하탄 챔버 뮤직 페스티벌을 뉴욕 맨하탄에서 시작했습니다. '음악을 통한 사랑의 실천'을 목표로, 기업 후원금을 유엔 반기문 총장에게 전달하여 저개발 국가를 돕는 데 사용했습니다.

세계 경제,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뉴욕 맨하탄에서 맨하탄 챔버 뮤직 페스티벌을 시작했습니다. '음악을 통한 사랑의 실천'을 목표로 기업 후원금을 모아 UN 반기문 총장에게 전달, 아프리카 및 남미 등 저개발 국가를 돕는 데 사용하며 음악과 외교, 기업이 하나 된 새로운 형태의 기부 문화를 만들어갔습니다.

2013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 역임]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예술 교육 분야에도 헌신했습니다.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젊은 예술 인재 양성에 힘썼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학교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15

[성남시립교향악단 예술총감독 겸 상임지휘자 임명]

성남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겸 예술총감독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성남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및 예술총감독을 맡아 악단의 예술적 방향을 제시하고 공연 활동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한경필하모닉 초대 지휘자 겸 예술감독 위촉]

한국 경제신문사에서 창단한 한경필하모닉의 초대 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위촉되어, 기업의 문화예술 참여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2015년부터 한국 경제신문사에서 창단한 한경필하모닉의 초대 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위촉되었습니다. 이는 기업의 문화예술 참여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2016

[골든티켓어워즈 클래식·무용·전통 아티스트상 수상]

제12회 골든티켓어워즈에서 클래식·무용·전통 아티스트상을 수상하며 대중적 인기를 입증했습니다.

제12회 골든티켓어워즈 클래식·무용·전통 아티스트상을 수상하며 그의 공연이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고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2019

[서울예술고등학교 명예교장 위촉]

서울예술고등학교 명예교장으로 위촉되어 학교와 지속적인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직을 역임한 후, 2019년부터 명예교장으로 위촉되어 학교와의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0

[대법원, 성(姓) '금' 판결]

대법원이 그의 가족관계부 성(姓)이 '금'이 맞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그의 순 한국어 이름 '금난새'에 대한 법적 논란이 해소되었습니다.

대법원이 2020년 1월 21일 '금난새 가족관계부 성, 김 아닌 금이 맞다'는 판결을 내리며, 그의 순 한국어 이름인 '금난새'의 성이 '금'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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