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
연표
1785
독일 헤센주 프랑크푸르트 인근 하나우에서 야코프 그림이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출생은 훗날 그가 동생 빌헬름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동화를 창작하는 여정의 시작이 됩니다.
1786
독일 헤센주 프랑크푸르트 인근 하나우에서 빌헬름 그림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형 야코프와 함께 독일 민담을 수집하고 재구성하여 《그림 동화》를 세상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796
[아버지 사망과 가족의 어려움]
그림 형제의 아버지가 사망하여 가족이 하나우로 돌아왔습니다. 이 경험이 후일 동화 창작에 영감을 주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림 일가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족은 다시 고향 하나우로 돌아왔습니다. 이 시기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어머니의 재혼으로 양아버지 밑에 있게 된 경험이 후일 신데렐라 이야기를 쓰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도 있으나, 이는 민담을 채록한 것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1807
언어학 연구의 부수적인 자료로 시작된 민담 수집은 루트비그 아힘 폰 아르님과 클레멘스 브렌타노가 출간한 독일 민요 모음집 《소년의 마적》에 큰 자극을 받아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는 훗날 《그림 동화》의 기반이 됩니다.
1808
야코프 그림은 베스트팔렌 왕국의 국왕 제롬 보나파르트에게 수석 언어학자 칭호를 수여받으며 그의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언어학 연구와 경력에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1812
[《그림 동화》 초판 발간]
그동안 수집한 이야기들을 묶어 첫 번째 이야기 집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초판을 발간했습니다. 여기에는 샤를 페로의 이야기 등 다른 언어로 출간된 이야기도 수록되었습니다.
그림 형제는 86편의 이야기를 담은 첫 번째 이야기 집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초판을 발간했습니다. 이 책에는 농부와 마을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샤를 페로의 이야기 등 이미 다른 언어로 출간된 잘 알려진 이야기들도 수록되었습니다. 이 동화집은 그림 형제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드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814
1812년 발간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에 70편의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여 총 156편으로 구성된 증보판을 출간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작품이 대중에게 더욱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16
[카셀 도서관 취직 및 《독일 전설》 출간]
카셀의 도서관에 취직하였고, 그 후 2년간 독일의 전설과 초기 문학을 엮은 두 번째 이야기집 《독일 전설》을 펴냈습니다.
그림 형제는 카셀의 도서관에 취직하며 학문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이후 2년간의 작업을 거쳐 585편의 전설을 수록한 《독일 전설》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는 연대기 기록과 관련된 이야기나 드베르그, 거인, 괴물 같은 가공의 생명체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지만, 동화집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습니다.
1819
[《그림 동화》 2판 출간 및 지속적인 증보]
보다 많은 민담을 수집하여 170여 편을 수록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2판을 출간했습니다. 이 동화집은 그림 형제가 살아있는 동안 5판까지 증보되었습니다.
1819년부터 1822년까지 더 많은 민담을 수집하여 170여 편을 수록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2판을 출간했습니다. 이 동화집은 꾸준히 사랑받아 그림 형제가 살아있는 동안 제5판까지 증보되며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선사했습니다.
1830
[괴팅겐 대학교 교수 재직]
형 야코프 그림은 괴팅겐 대학교의 언어학 교수이자 도서관장으로, 동생 빌헬름 그림은 1835년에 교수가 되면서 그림 법칙을 비롯한 독일어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1830년 형 야코프 그림이 괴팅겐 대학교의 언어학 교수이자 도서관장으로 취임하고, 1835년 동생 빌헬름 그림도 교수가 되면서, 그림 형제는 그림 법칙 정립을 포함한 독일어 연구를 활발히 이어갔습니다. 이는 그들의 학문적 업적을 크게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37
[괴팅겐 7인 사건으로 파면]
하노버 왕국의 에르네스트 아우구스투스 1세가 자유 헌법을 철폐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청원을 제출하여 '괴팅겐의 7인'으로 불리며 파면당했습니다.
그림 형제는 괴팅겐 대학교 교수 5명과 함께 하노버 왕국의 에르네스트 아우구스투스 1세가 자유 헌법을 철폐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청원을 제출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이들은 '괴팅겐의 7인'으로 불리며 교수직에서 파면당했고, 이는 독일 역사에서 중요한 자유주의 운동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1838
괴팅겐의 7인 사건으로 교수직에서 파면된 그림 형제는 이듬해인 1838년, 프로이센 왕국의 초빙을 받아 베를린으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이는 그들의 학문 활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1854
그림 형제는 말년에 독일어 사전을 편찬하는 방대한 작업을 이어갔으며, 그 결과물이 1854년에 《독일어 사전》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언어학적 업적 중 가장 중요한 하나로 평가받으며 독일어 연구에 기념비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1859
[빌헬름 그림 사망]
동생 빌헬름 그림이 베를린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헨리에테 도로세아와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1859년 12월 16일, 동생 빌헬름 그림이 베를린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헨리에테 도로세아와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형과 함께 독일 민담 수집과 언어학 연구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1863
동생 빌헬름 그림 사망 이후에도 독일어 사전 제작 작업을 이어가던 형 야코프 그림이 1863년 11월 20일 사망했습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언어학자이자 동화 작가로서 독일 문화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