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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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전
바둑 기전, 폐지된 기전, 스포츠 대회 + 카테고리
국수전(國手戰)은 1956년 동아일보가 창설한 대한민국 최초의 정식 바둑 기전으로, 반세기 넘는 기간 동안 한국 바둑 역사의 중심에 서 있던 최고 권위의 대회입니다. 국내 기전 중 유일하게 예선과 본선을 거친 최종 승자가 전기 우승자에게 도전하는 '도전기 형식'을 뚝심 있게 유지하며 당대 최고 기사들을 배출해왔습니다. 조남철, 김인,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 등 전설적인 프로기사들이 국수 왕좌를 놓고 치열한 명승부를 펼쳤으나, 시대적 흐름과 2016년 기아자동차의 후원 중단 여파로 인해 2017년에 안타깝게 공식 폐지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56

[국수 제1위전 창설 및 초대 국수 탄생]

동아일보 주최로 대한민국 최초의 정식 바둑 기전인 '국수 제1위전'이 창설되었습니다. 예선을 통과한 4명이 본선 리그전을 벌여 조남철 5단이 전승으로 초대 국수에 등극했습니다.
당시 노국수(老國手)라 부르던 원로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국수전' 대신 '국수 제1위전'이라 명명되었습니다. 엔터테인먼트가 부족하던 전후 시절, 동아일보 사옥 앞 광화문 네거리의 국수전 실황 중계 현장에는 구경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1957

[국수전 명칭 확정 및 도전기 방식 도입]

제2기 대회부터 공식 명칭이 '국수전'으로 변경되었으며, 본선 우승자가 전기 우승자에게 도전하는 플레이오프제 형태의 도전기 형식이 최초로 도입되었습니다.
제2기 결승은 무려 13전 7선승제(도전 7번기 다승제)로 치러졌습니다. 조남철 5단이 도전자 민영현 2단을 상대로 7-0의 압도적인 전승 우승을 거두며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1962

[제6기 국수전 첫 판빅 무승부 발생]

제6기 도전기에서 김인 4단이 조남철 7단에게 도전했으나 1국에서 무승부(판빅)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후 대국이 재개되어 조남철 7단이 최종 3승 1무 1패로 국수위를 방어했습니다.
1국 결과 반면 집수가 동일한 판빅이 나왔는데, 당시 한국기원 규약상 도전기 최종국 전에는 덤이 없다는 조항이 발견되어 결국 무승부 처리되었습니다. 이 해프닝 이후 차기 대회부터 1~4국에도 덤이 적용되도록 규정이 개정되었습니다.

1965

[조남철 국수 9기 연속 우승]

제9기 국수전에서 조남철 8단이 윤기현 5단을 3-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창설 원년부터 이어진 조남철 국수의 무적 9연패 대기록이 완성되었습니다.
국내 바둑 체계를 정립한 조남철 8단은 국수전 초기 약 10년 동안 반상을 완벽하게 지배했습니다. 수많은 도전자들을 물리치며 초창기 국수전의 흥행을 이끄는 상징적인 인물로 군림했습니다.

1966

[김인 시대의 개막]

제10기 국수전에서 김인 5단이 조남철 8단의 10년 철권통치를 무너뜨리고 3-1로 승리하며 새로운 국수로 등극했습니다. 한국 바둑의 패권이 교체되는 세대교체의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과거 제6기 도전기에서 1대 3으로 패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뼈를 깎는 수련을 마친 김인 5단이 귀국 직후 거둔 성과입니다. 당시 결정국은 운당여관에서 치러졌으며 백을 쥔 김인이 반면 2집(총 6집반승)을 거두며 1인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1971

[김인 국수 6기 연패 달성]

제15기 국수전에서 김인 7단이 조남철 8단의 도전을 3-2 접전 끝에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승리로 김인은 국수전 6기 연속 방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조남철의 시대를 끝낸 이후 약 7년 동안 국수전 반상은 완전히 김인 국수의 독무대가 되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기사들이 돌아가며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그의 두터운 아성을 넘지 못했습니다.

1972

[윤기현의 국수위 쟁취]

제16기 국수전에서 새롭게 등장한 도전자 윤기현 7단이 철벽같던 김인 7단을 3-2로 무너뜨리고 3대 국수에 올랐습니다. 김 국수의 7년 장기 집권이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운당여관에서 열린 도전 5번기에서 치열한 명승부 끝에 새로운 왕좌의 주인이 탄생했습니다. 특정 기사의 장기 집권 체제가 깨지면서 한국 바둑계에 본격적인 군웅할거의 시대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1973

[하찬석 국수위 쟁취]

제18기 국수전 도전기에서 하찬석 5단이 윤기현 7단을 3-1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국수 타이틀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윤기현 국수의 2년 치세가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승부였습니다. 이 무렵부터 당대 강자들이 잇따라 국수위에 오르내리며 역동적인 타이틀 매치가 전개되었습니다.

1976

[조훈현 국수 쟁취와 전성기 서막]

제20기 국수전에서 천재 기사 조훈현 6단이 전기 국수인 하찬석 6단을 3-1로 꺾고 생애 최초로 국수위를 쟁취했습니다. 한국 바둑계를 제패하는 '조훈현 시대'의 화려한 서막이었습니다.
탁월한 감각과 빠른 행마를 무기로 하찬석을 제압한 조훈현은, 이 대회를 시작으로 국내 기전 타이틀을 휩쓸며 한국 바둑의 거대한 족적을 남기게 될 대장정에 돌입했습니다.

1985

[조훈현 국수 무적의 10연패 달성]

조훈현 9단이 제29기 국수전에서 최대의 라이벌 서봉수 7단을 3-0으로 완파하고 우승했습니다. 조남철의 9연패 기록을 경신하며 전무후무한 국수 10연패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장장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올라오는 도전자들을 모두 제압하며 이룬 결과입니다. 특히 서봉수와의 거듭된 맞대결에서 연승을 기록하며 절대 일인자로서의 완벽한 철권통치를 증명했습니다.

1986

[서봉수의 국수위 탈환과 조훈현의 전패준]

제30기 국수전에서 '된장 바둑' 서봉수 9단이 조훈현 9단을 3-0으로 완파하며 마침내 국수위를 탈환했습니다. 조훈현의 무적 10연패가 마침내 산산조각 난 충격적인 이변이었습니다.
당시 조훈현의 3차 전관왕 기록을 붕괴시키는 일격이었으며, 서봉수에게는 국수전 도전 10년 만에 얻어낸 눈물겨운 우승이었습니다. 디펜딩 챔피언 조훈현은 단 한 판도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전패준'의 굴욕을 맛보았습니다.

1988

[조훈현의 국수위 복귀와 서봉수 전패준]

제32기 국수전에서 절치부심한 조훈현 9단이 서봉수 9단에게 3-0 셧아웃 승리를 거두며 국수 타이틀을 되찾았습니다.
자신이 2년 전 30기 대회에서 당했던 3-0 완패의 수모(전패준)를 서봉수에게 그대로 되돌려준 짜릿한 복수전이었습니다. 한국 바둑을 양분했던 두 거장의 치열한 자존심 싸움이 돋보인 대회입니다.

1990

[이창호 국수위 쟁취 및 조훈현의 두 번째 전패준]

제34기 국수전에서 15세의 무서운 신예 이창호 4단이 스승인 조훈현 9단을 3-0으로 완파하고 국수위를 차지했습니다. 바둑계의 지각을 흔드는 사제 대결의 패권 이동이었습니다.
어린 제자가 당대 최고의 스승을 압도적으로 무너뜨리며 차세대 1인자의 탄생을 공식적으로 알렸습니다. 조훈현 9단은 이 대회 패배로 통산 두 번째 '전패준' 기록에 이름을 올리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1991

[조훈현의 국수위 탈환 (사제 대결)]

제35기 국수전에서 조훈현 9단이 제자 이창호 5단을 상대로 3-2의 끈질긴 역전극을 펼치며 다시 국수위 왕좌로 복귀했습니다.
전년도 3-0 완패의 충격을 딛고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1년 만에 타이틀을 되찾으며 승부사로서의 건재함을 세계에 과시했습니다. 사제지간의 엎치락뒤치락하는 타이틀 매치가 바둑계의 최대 흥행 카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1993

[이창호의 국수위 재탈환 및 장기 집권 시작]

제37기 국수전에서 이창호 6단이 조훈현 9단을 3-0으로 꺾고 빼앗겼던 국수 타이틀을 완전히 되찾아왔습니다. 이 우승을 시작으로 이창호의 기나긴 국수전 독주가 다시 시작됩니다.
스승을 상대로 압도적인 반집 승부와 철벽같은 수비력을 과시하며 무실 세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이창호 9단은 전설적인 국수 5기 연속 방어를 향한 쾌속 질주를 밟게 됩니다.

1994

[이창호 사이클링 히트 및 혈전 끝 방어]

제38기 국수전에서 이창호 7단이 조훈현 9단과 5국까지 가는 대혈전을 치른 끝에 3-2로 승리하며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이 해에 이창호는 무려 13개 기전을 석권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웁니다.
마지막 5국은 밤 11시 5분까지 이어지는 살얼음판 같은 승부였으며, 이창호가 극적인 반집승을 거두었습니다. 1994년 이창호는 국내 거의 모든 기전을 쓸어 담으며 사이클링 히트를 치는 극강의 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997

[이창호 국수위 5기 연패]

제41기 국수전에서 이창호 9단이 서봉수 9단을 3-1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며, 37기부터 시작된 국수위 5기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이로써 스승 조훈현, 영원한 야전사령관 서봉수 등 기존 한국 바둑을 호령하던 선배 기사들을 모두 꺾고 1990년대 후반 국내 기전을 완벽하게 평정하는 절대 권력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8

[조훈현 국수위 탈환 및 이창호 전패준]

제42기 국수전에서 조훈현 9단이 파죽지세의 이창호 9단을 2-0으로 제압하고 국수 타이틀을 재탈환하는 노익장을 과시했습니다.
잠시 3전 2선승제로 진행되었던 시기의 결승전으로, 조훈현 9단이 제자인 이창호의 국수 6연패를 극적으로 저지함과 동시에 이창호에게 굴욕적인 전패준 기록을 안겨주었습니다.

2000

[루이나이웨이, 여류 최초 국수 등극 대이변]

해를 넘겨 치러진 제43기 국수전 도전기에서 루이나이웨이 9단이 국수전의 절대 강자 조훈현 9단을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한국 바둑사 최고의 이변을 연출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기전 사상 최초의 여류 기사 및 외국인 기사의 종합 기전 우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이었습니다. 예선에서 유창혁을, 도전자 결정전에서 이창호를 차례로 연파하고 결승에서 조훈현마저 격파하는 등 그야말로 거물들을 전부 쓰러뜨린 기적이었습니다.

2001

[조훈현 통산 16회 국수위 우승]

제44기 국수전에서 조훈현 9단이 루이나이웨이 9단을 3-0으로 완파하고 잃어버렸던 국수위를 되찾았습니다. 이로써 조훈현은 단일 기전 통산 16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전년도 자신에게 뼈아픈 일격을 가했던 루이나이웨이를 상대로 단 한 세트도 내어주지 않으며 전패준을 안겼습니다. 국수전 최고령 승부사로서의 자존심을 완벽히 회복한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2003

[최철한 국수위 쟁취]

제47기 국수전에서 무서운 신예 '독사' 최철한 6단이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절대 1강 이창호 9단을 3-2 풀세트 접전 끝에 무너뜨리고 생애 첫 국수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이창호를 상대로 보여준 최철한의 막강한 공격력은 바둑계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최철한은 기세를 몰아 이듬해 열린 48기 대회에서도 이창호를 3-0으로 셧아웃시키며 2년 연속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2005

[이창호 국수위 10회 우승 금자탑]

제49기 국수전에서 이창호 9단이 최철한 9단에게 3-2로 신승을 거두고 국수 타이틀을 탈환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이창호는 국수전 통산 두 자릿수(10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습니다.
이전 47, 48기에서 최철한에게 연달아 패배하며 국수위를 내주었던 아픔을 딛고 치열한 접전 끝에 달성한 우승이었습니다. 통산 16회를 기록한 조훈현에 이어 국수전 역사상 두 번째 대기록입니다.

2006

[윤준상 파란의 국수 등극]

제50기 국수전에서 저단진 신예인 윤준상 4단이 당대 최고의 기사인 이창호 9단을 3-1로 꺾는 대파란을 일으키며 쉰 번째 국수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거침없는 신예 기사가 관록의 절대 강자를 무너뜨리며 전통의 국수 타이틀을 거머쥐어 바둑계의 세대교체 흐름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7

[이세돌 첫 국수위 쟁취]

제51기 국수전에서 세계 바둑계를 호령하던 이세돌 9단이 디펜딩 챔피언 윤준상 6단을 3-0으로 완파하며 생애 최초로 국수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이세돌 9단은 폭발적인 전투력을 앞세워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고 상대에게 전패준의 수모를 안겼으며, 국내 최고 권위의 전통 타이틀마저 섭렵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2009

[이세돌 휴직 사태와 토너먼트 우승]

전기 우승자인 이세돌 9단이 국내 기전 휴직 사태로 타이틀을 반납함에 따라, 제53기 국수전은 도전기를 폐지하고 본선 풀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렸습니다. 결승에서 이창호 9단이 홍기표 4단을 3-1로 누르고 우승했습니다.
국수전 역사상 이례적으로 타이틀 보유자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초유의 비상 상황이었습니다. 챔피언 공백 상태에서 열린 대회였지만, 이창호 9단이 노련하게 우승을 차지하며 통산 10번째 우승 기록을 유지했습니다.

2011

[조한승 국수위 쟁취 및 3연패 시작]

제55기 국수전에서 조한승 9단이 막강한 화력의 최철한 9단을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승리는 조한승의 국수전 3연패 위업을 알리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조한승 9단은 특유의 유연하고 끈끈한 기풍으로 상대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해 냈습니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56기와 57기에서도 연달아 도전자를 제압하며 견고한 방어력을 뽐냈습니다.

2014

[박정환 국수위 쟁취]

제58기 국수전에서 한국 바둑의 새로운 1인자로 떠오른 박정환 9단이 디펜딩 챔피언 조한승 9단을 3-1로 제압하고 새로운 국수에 등극했습니다.
조한승 9단의 4연패를 저지함과 동시에 최정상급 기사로 성장한 박정환이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전통 기전의 타이틀 홀더로 등극하며 완벽한 세대교체를 알린 대회였습니다.

2015

[제59기 마지막 결승전 개막]

훗날 마지막 국수전으로 기록된 제59기 국수전의 도전 1국이 개막했습니다. 결승 시리즈는 이듬해까지 이어졌으며, 박정환 9단이 조한승 9단에게 3-0 완승을 거두며 타이틀을 지켰습니다.
대회 당시만 해도 이 결승전이 국수전의 영원한 마지막 대국이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박정환 9단은 국수전 역사상 가장 마지막 우승자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2016

[예선 취소 및 대회 중단 위기]

오랜 기간 대회를 후원해오던 기아자동차가 갑작스럽게 후원 철회를 통보함에 따라, 2016/2017 시즌 제60기 국수전의 프로기사 예선 모집이 전면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김영삼, 조혜연 등 현역 프로기사들이 SNS를 통해 예선 등록 프로그램 취소 소식을 알리며 대회의 위기가 외부로 드러났습니다. 주요 언론들도 역사적인 대회의 중단 소식을 일제히 보도하며 바둑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2017

[국수전 공식 폐지 확정]

주최사인 동아일보가 기전 중단을 부인하며 대체 후원사를 모색했으나 결국 실패하면서, 60년 넘는 영광의 역사를 자랑하던 '국수전'이 한국기원에 의해 폐지 기전으로 최종 편입되었습니다.
이후 동아일보는 자체 지면의 바둑 란을 알파고 대 알파고의 기보를 전재하는 것으로 임시 대체해버렸고, 바둑 팬들은 대한민국 최고 전통의 대회가 허무하게 사라진 것에 대해 짙은 아쉬움과 성토를 쏟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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