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바둑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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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바둑 기사)
바둑 기사, 중국 국가대표, 세계 챔피언 + 카테고리
구리(古力)는 중국 충칭 출신의 전설적인 프로 바둑 기사로, 한국의 이세돌 9단과 함께 2000년대와 2010년대 세계 바둑계를 양분하며 '절대쌍교(絶代雙驕)'로 불린 인물입니다. 6세 때 바둑을 시작해 1996년 프로에 입단한 그는 특유의 강력한 전투력과 호쾌한 기풍으로 '구다리(古大力)'라는 별명을 얻으며 전 세계 바둑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생애 통산 8번의 메이저 세계 대회 우승을 차지하여 중국 바둑 기사 중 역대 1위, 전 세계 4위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습니다. 천원전 6연패, 명인전 6연패 등 중국 국내 기전을 완벽하게 평정했으며, 이세돌과의 피를 말리는 10번기 등 숱한 명승부를 남기며 바둑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은퇴 즈음에는 칭화대학 역사학과에 입학해 학업의 꿈을 이루었고, 현재는 중국위기협회 부주석으로서 중국 바둑의 발전을 이끌고 있는 위대한 바둑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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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83

[운명적인 출생]

중국 쓰촨성 충칭시에서 훗날 세계 바둑계를 호령할 전설적인 기사 구리가 아버지 구쥐산과 어머니 장중쉰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영특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훗날 거침없는 전투력과 호쾌한 기풍으로 무장하여 '구다리(古大力)'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수많은 바둑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영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1989

[바둑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다]

6살의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바둑돌을 쥐며 흑백이 교차하는 무궁무진한 반상의 세계에 입문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기량을 뽐내기 시작한 그는 복잡한 수읽기와 빠른 형세 판단 능력을 보여주며 주위의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이는 훗날 그가 세계적인 기사로 발돋움하는 튼튼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94

[세계청소년바둑선수권대회 우승]

세계청소년바둑선수권대회에 참가해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전 세계 바둑계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처음으로 널리 알렸습니다.
불과 11살의 나이에 또래 세계 최강자들을 모두 꺾고 정상에 오르며 중국 바둑의 미래를 짊어질 독보적인 유망주로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떡잎부터 달랐던 그의 압도적인 재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습니다.

1995

[국가소년바둑대 입단 및 영예]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 중국 국가소년바둑대(청소년 국가대표)에 정식으로 입단했으며, 같은 해 '전국 10대 소년선봉대원'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기 시작한 그는 체계적인 훈련과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해 실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국가가 공인하는 모범적인 소년으로 선정될 만큼 그의 재능과 성실함은 널리 인정받았습니다.

1996

[프로 바둑 기사 입단]

엄격한 입단 대회를 통과하며 마침내 초단(1단) 자격을 획득, 정식 프로 바둑 기사로서의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소년 티를 벗고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 뛰어든 구리는 선배 기사들을 상대로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호쾌한 바둑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앞으로 그가 써 내려갈 화려한 전설의 공식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1997

['철의 수문장' 녜웨이핑의 제자가 되다]

1997년 말, 중국 바둑의 영웅이자 '철의 수문장'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기사 녜웨이핑 9단의 정식 제자로 입문하는 큰 행운을 얻었습니다.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 아래 구리는 바둑의 대세관과 승부 호흡을 더욱 깊이 있게 깨우쳤습니다. 녜웨이핑의 든든한 지원과 지도는 구리가 세계 최정상급 기사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1998

[4단으로 초고속 승단]

프로 입단 후 불과 2년 만에 각종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4단으로 초고속 승단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가는 그의 기력 향상 속도에 중국 바둑계 전체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특유의 전투 바둑이 점차 완성도를 갖춰가며 성인 무대에서도 위협적인 존재로 급부상했습니다.

1999

[갑조리그 우승 신화 시작]

성설융배 바둑왕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충칭팀을 이끌고 중국 바둑 리그인 갑조리그에서 생애 첫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이 해의 우승을 시작으로 충칭팀은 2003년까지 무려 5연속 갑조리그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작성하게 됩니다. 구리는 팀의 절대적인 에이스로서 연승 가도를 견인하며 리그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1

[신인왕전 및 리광배 제패]

제8회 신인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신예 최강자로 등극했고, 기세를 몰아 제2회 리광배에서도 정상에 오르는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신인들의 무대를 넘어 성인 기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해입니다. 강력한 펀치력과 두터운 기풍으로 무장한 그는 동년배 기사들 사이에서 이미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제4회 한중 신인왕 대항전 우승]

한국과 중국의 최고 신예가 맞붙는 제4회 한중 신인왕 대항전에서 우승을 거두며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력까지 완벽하게 입증했습니다.
이 대회 우승은 중국 바둑의 자존심을 한껏 드높였으며, 구리가 앞으로 다가올 한중 바둑 패권 경쟁의 최선봉에 설 것임을 예고하는 강렬한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2002

[7단 승단 및 전국체육대회 제패]

빛나는 성과들을 인정받아 7단으로 승단했으며, 중국 전국체육대회 바둑 부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제 명실공히 중국 바둑계를 이끄는 최정상급 기사로 분류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적인 종합 체육 대회에서 챔피언에 오르며 대중적인 인지도 역시 폭발적으로 상승했습니다.

2003

[천원전 우승, 1인자 시대를 열다]

중국 전통의 주요 기전인 제17회 천원전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어 열린 한중 천원 대항전에서도 승리하며 양국 최강자의 면모를 뽐냈습니다.
이 천원전 우승은 구리의 기나긴 장기 집권을 알리는 서막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무려 6년 연속으로 천원전 타이틀을 방어하며 중국 바둑계의 '천하통일'을 이루어냈습니다.

2004

[명인전 및 다관왕 등극]

제17회 명인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NEC배, 아함동산배 등 굵직한 기전들을 모조리 휩쓸며 다관왕에 올랐습니다.
천원전 18회 방어까지 성공하며 중국 내 주요 타이틀을 싹쓸이하는 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명인전 역시 이 해를 기점으로 6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며 국내 무대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2006

[최고 단위 9단 승단]

LG배 세계대회 우승의 막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바둑 기사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인 9단(입신)으로 전격 승단했습니다.
같은 해 천원전(제20회)과 명인전(제19회) 타이틀도 굳건히 방어해내며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완벽한 기량을 뽐냈습니다. 바둑계 최고 존칭인 9단의 무게감에 걸맞은 압도적인 한 해였습니다.

[제10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천야오예를 3대 2로 극적으로 꺾고 제10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생애 첫 세계대회 제패의 감격을 누렸습니다.
오랜 기간 국내 1인자로 군림하면서도 세계대회 우승이 없어 겪었던 마음고생을 단숨에 씻어낸 기념비적인 대국이었습니다. 풀세트 접전 끝에 얻어낸 이 승리로 그는 마침내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습니다.

2007

[제6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 우승]

선배 기사인 창하오 9단을 2대 0으로 완벽하게 제압하며 제6회 춘란배에서 자신의 두 번째 세계대회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 대회 우승으로 LG배 우승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실력으로 입증했습니다. 강인한 체력과 흔들림 없는 수읽기를 바탕으로 세계 무대 다관왕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2008

[국내 기전 싹쓸이 및 란커배 제패]

명인전 5연패, 천원전 6연패의 대기록을 작성하고 NEC배, 아함동산배, 제2회 취저우 란커배까지 휩쓸며 중국 무대를 완벽하게 평정했습니다.
세계대회 우승으로 인한 피로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 기전에서 단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구리 천하'가 완성된 한 해였습니다.

[제21회 후지쯔배 세계바둑선수권 우승]

세계 바둑의 살아있는 전설 이창호 9단을 통쾌하게 꺾고 제21회 후지쯔배 우승을 차지하며 세 번째 세계대회 트로피를 수집했습니다.
한국 바둑의 상징적인 존재인 이창호를 결승이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 물리쳤다는 점에서 중국 바둑계가 열광했습니다. 이는 구리의 전성기가 활짝 만개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대사건이었습니다.

2009

[제4회 도요타덴소배 우승]

동료 기사인 퍄오원야오를 상대로 2대 0의 완승을 거두며 제4회 도요타덴소배 정상에 올라 네 번째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터진 세계대회 우승 소식에 중국 전역이 환호했습니다. 거침없는 기세로 세계 대회를 연속으로 집어삼키며 진정한 세계 1인자의 위용을 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CCTV 최우수 비올림픽 선수상 수상]

중국 최고 권위의 스포츠 시상식인 'CCTV 체단풍운인물'에서 바둑 기사로서는 이례적으로 '최우수 비올림픽 종목 선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가 거둔 눈부신 성과가 단순한 바둑계의 경사를 넘어 중국 국가 전체의 자랑으로 여겨졌음을 의미합니다. 스포츠 스타로서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게 되었습니다.

[제13회 LG배 우승 (이세돌 영봉)]

세기의 라이벌로 불리는 한국의 이세돌 9단과 결승에서 만나 2대 0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다섯 번째 세계대회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이세돌을 상대로 완벽한 내용의 영봉승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몹시 깊었습니다. 이 승리를 통해 두 기사의 상대 전적은 9승 8패로 구리가 근소하게 앞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제1회 BC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우승]

초대 대회로 치러진 제1회 BC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결승에서 한국의 조한승을 3대 1로 누르고 여섯 번째 세계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2009년 상반기에만 무려 3개의 세계대회 우승컵을 쓸어 담는 괴력을 발휘하며 바둑 역사에 길이 남을 압도적인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세계 바둑계는 온전히 구리의 독무대나 다름없었습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 획득]

안방에서 열린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종목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남자 단체전에서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비록 금메달은 한국팀에게 내주었으나, 국가를 대표하는 에이스로서 묵묵히 팀을 이끌며 최선을 다하는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정식 체육 종목으로 채택된 아시안게임에서의 첫 메달 획득이었습니다.

[제15회 삼성화재배 우승]

한국의 끈질긴 승부사 허영호를 상대로 2대 1의 신승을 거두며 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로써 개인 통산 일곱 번째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을 기록하며 중국 기사 중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스스로 경신해 나갔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무서운 막판 집중력이 돋보인 훌륭한 대회였습니다.

2011

[세계대회 연속 준우승의 시련]

제3회 BC카드배 결승에서 숙적 이세돌에게 2대 3으로 분패하고, 삼성화재배 결승에서도 원성진에게 1대 2로 역전패하며 두 번의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항상 정상에 군림하던 그에게 찾아온 뼈아픈 시련의 해였습니다. 특히 라이벌 이세돌과의 치열한 풀세트 혈투 끝의 패배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으나, 그의 실력이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임을 증명하는 무대들이기도 했습니다.

2012

[제17회 삼성화재배 준우승]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다시 한번 이세돌과 세기의 대결을 펼쳤으나, 아쉽게 1대 2로 패배하며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두 천재 기사의 라이벌 전은 전 세계 바둑 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를 연출했습니다. 비록 패배했지만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맹렬한 전투 바둑은 많은 이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2013

[루위안양과 백년가약]

새해 첫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리듬체조 단체전 은메달리스트인 국가대표 출신 루위안양(吕远洋)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중국 스포츠계를 대표하는 두 선남선녀의 만남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평생의 동반자를 맞이한 구리는 심리적 안정을 찾으며 승부사로서의 인생 제2막을 평온하게 열게 되었습니다.

[첫 딸을 품에 안다]

결혼 생활의 큰 축복 속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첫 딸을 얻으며 한 가정의 자상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바둑판 위에서는 냉혹하고 매서운 승부사지만, 가정에서는 다정다감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며 주변의 많은 축하를 받았습니다. 삶의 무게와 책임감이 더해진 따뜻한 순간이었습니다.

[제1회 몽백합배 아쉬운 준우승]

새롭게 창설된 제1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결승에 진출했으나,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 미위팅에게 1대 3으로 패배를 당했습니다.
세대교체의 거센 바람 속에서 젊은 후배 기사의 도전을 막아내지 못한 아쉬운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결승 무대에 오르는 저력을 통해 여전한 경쟁력을 만천하에 보여주었습니다.

2014

[이세돌과의 10번기 혈투]

승자 독식 상금 500만 위안(약 8억 5천만 원)이 걸린 엠릴리 몽백합 세기의 대결에서 평생의 숙적 이세돌 9단과 피를 말리는 10번기를 치렀습니다.
전 세계 바둑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 매치에서 구리는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최종 전적 2승 6패로 아쉽게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비록 승부에서는 패했지만, 시대를 풍미한 두 거장이 펼친 혼신의 대결은 바둑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서사시로 기록되었습니다.

2015

[칭화대학 역사학과 입학]

중국 최고의 명문 대학인 칭화대학 역사학과에 '우수 운동선수 대학 진학 특례'를 통해 당당히 입학하며 학업의 길을 새롭게 걸었습니다.
바둑에만 매진하느라 부족했던 인문학적 소양을 채우고 역사에 대한 오랜 관심을 탐구하기 위한 과감한 도전이었습니다. 승부사에서 학구적인 대학생으로 변신한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제10회 춘란배 우승 (세계 8관왕)]

대학 입학 직후 열린 제10회 춘란배 결승에서 저우루이양을 상대로 2대 0 완승을 거두며 개인 통산 여덟 번째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0번기 패배의 깊은 상처를 딛고 화려하게 부활하며 스스로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사임을 당당히 증명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중국 기사 세계대회 최다 우승, 전 세계 역대 4위의 엄청난 금자탑을 쌓아 올렸습니다.

2016

[개인 통산 1000승의 대기록 달성]

프로 데뷔 20년 만에 자신이 직접 집계한 기록을 바탕으로 개인 통산 1000승이라는 경이로운 대기록을 공식 달성했습니다.
수많은 강자들과의 피 말리는 대결 속에서 꾸준히 승리를 쟁취해 온 그의 엄청난 성실함과 굳건한 기량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중국 바둑계에 남긴 그의 거대한 발자취를 다시금 실감케 했습니다.

2019

[칭화대학 역사학과 영광의 졸업]

바둑 대회 참가와 학업을 병행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성실히 학점을 이수하여 마침내 칭화대학 역사학과를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인 학부에서 당당히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지장(智將)으로서의 면모를 완성했습니다. 현재는 중국위기협회 부주석이자 충칭시 위기협회 회장으로서 중국 바둑의 내일을 든든하게 설계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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