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히로키
연표
1975
[구로다 히로키 출생]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스미노에구에서 태어났다. 전 프로 야구 선수 구로다 가즈히로의 아들이자 포환던지기 선수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구로다 히로키는 1975년 2월 10일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스미노에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 프로 야구 선수 구로다 가즈히로이며, 어머니는 올림픽 포환던지기 선수 출신이다.
1996
센슈 대학 시절 높은 평가를 받으며 1996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역지명 2순위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했다. 그의 등번호는 15번으로 결정되었는데, 이 번호는 훗날 히로시마 구단의 영구 결번이 된다.
1997
[NPB 데뷔 및 첫 승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등판, 첫 선발, 첫 승리, 첫 완투를 동시에 달성하며 센세이셔널한 데뷔전을 치렀다.
1997년 4월 2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도쿄 돔 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그는 데뷔 첫 등판, 첫 선발, 첫 승리, 그리고 처음으로 완투를 기록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1997년 6월 3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니시쿄고쿠 야구장 경기에서 구로다 히로키는 프로 데뷔 후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
1999
1999년 시드니에서 열린 대륙간컵에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출전했다. 그는 대한민국전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고, 중화 타이베이전에서는 완봉승을 기록하며 팀에 기여했다.
2001
[첫 두 자릿수 승리 및 올스타전 출전]
데뷔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12승)를 달성하고, 리그 최다인 13완투를 기록하며 팀의 핵심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 구로다 히로키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12승)를 달성했다. 또한 이 해에 리그 최다인 13번의 완투를 기록했으며, 생애 첫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2003
[첫 개막전 선발 및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생애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했으며, 13승을 기록하며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고 처음으로 200이닝 이상을 던졌다.
2003년, 구로다 히로키는 팀의 에이스로서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이 해 그는 13승을 기록하며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고, 생애 처음으로 200투구 이닝 이상을 기록하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2003년에 삿포로에서 열린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팀의 금메달 획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4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야구 대회에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출전했다. 그는 중간 계투로서 2승을 기록하며 팀의 동메달 획득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2004년 4월 22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메이지 진구 야구장 경기에서 제이슨 베벌린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NPB 통산 1000투구 이닝을 달성했다.
2005
[다승왕 및 다수 개인 타이틀 획득]
15승을 기록하며 개인 첫 타이틀인 다승왕을 석권했고, 최우수 투수, 베스트 나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2005년 시즌, 구로다 히로키는 15승을 기록하며 센트럴 리그 다승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또한 최우수 투수, 베스트 나인, 골든 글러브상까지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2006
2006년 시즌, 구로다 히로키는 1.85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최우수 평균 자책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는 1992년 아카호리 모토유키 이후, 센트럴 리그에서는 1989년 사이토 마사키 이후의 쾌거였다.
2006년, 히로시마 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히로시마시에서 수여하는 '히로시마 시민 시상'의 네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2006년 4월 6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구라시키 머스켓 스타디움 경기에서 아카호시 노리히로를 삼진으로 잡으며 NPB 통산 1000탈삼진을 기록했다.
2006년 7월과 8월에 걸쳐 월간 MVP를 연속으로 수상했다. 이는 히로시마 구단 역사상 최초로 2개월 연속 월간 MVP를 수상한 선수가 되는 기록이다.
2006년 10월 16일, 시즌 최종전으로 치러진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히로시마 시민 구장 경기에서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히로시마 잔류 선언 및 MLB 도전 조항 계약]
4년 12억 엔의 조건으로 히로시마에 잔류를 선언하며 메이저 리그 도전 조항을 계약에 포함했다.
FA 자격을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이 제시한 4년 12억 엔(기본 연봉 2억 5,000만 엔 + 성과급)의 조건과 함께 메이저 리그에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조항을 포함하여 히로시마에 잔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다른 구단 유니폼을 입고 카프를 상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007
2007년 7월 1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도쿄 돔 경기에서 9이닝 2실점 완투승을 거두며 NPB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그의 데뷔 첫 승리도 도쿄 돔에서의 요미우리전이었다.
2007년 10월 18일, 구로다 히로키는 FA 권리를 행사하며 메이저 리그 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메이저 리그 구단들은 이미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이적]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3년간 3,530만 달러에 계약을 맺으며 히로시마 도요 카프 출신 최초의 일본인 메이저 리거가 되었다.
2007년 12월 15일, 구로다 히로키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3년간 3,53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는 AP 통신의 보도가 있었다. 이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 출신 선수 중 최초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일본인 선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계약 기간 단축을 자청하며 '전쟁터에 나가는 심정'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2008
2008년 4월 4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그는 메이저 리그 데뷔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일본인 최초 MLB 동시 선발승·세이브]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선발 승리를 거두고, 팀 동료 사이토 다카시가 세이브를 기록하며 일본인 선수 최초로 같은 경기에서 선발 승리와 세이브를 동시에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8년 5월 21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구로다 히로키는 선발 승리 투수가 되었고, 뒤이어 등판한 사이토 다카시가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인 선수로서는 사상 최초로 같은 시합에서 선발 투수가 승리하고 구원 투수가 세이브를 달성한 경우이다.
[MLB 첫 완봉승]
시카고 컵스전에서 9이닝 4피안타 무실점 11탈삼진 무볼넷의 완벽한 투구로 메이저 리그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
2008년 6월 6일 시카고 컵스와의 다저 스타디움 경기에서 구로다 히로키는 9이닝 동안 단 4피안타, 11탈삼진, 무볼넷 무실점의 호투를 펼치며 메이저 리그 데뷔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
[퍼펙트 게임에 근접한 완봉승]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7회까지 퍼펙트 게임을 이어가다가 9이닝 1피안타 무실점 완봉승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2008년 7월 7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구로다 히로키는 7회 종료 시점까지 퍼펙트 게임을 이어가는 놀라운 투구를 선보였다. 비록 8회에 첫 주자를 허용했지만, 최종적으로 9이닝 1피안타 무실점 완봉승을 거두었다. 신인 투수가 8회 도중까지 퍼펙트 게임을 이어간 것은 1984년 오렐 허샤이저 이후 처음이었다.
2009
[MLB 개막전 선발 등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하며 노모 히데오, 마쓰자카 다이스케에 이어 일본인 선수로는 역대 세 번째 기록을 세웠다.
2009년 4월 6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는 노모 히데오, 마쓰자카 다이스케에 이어 일본인 선수로는 역대 세 번째로 메이저 리그 개막전 선발 투수가 된 기록이다.
2010
2010년 시즌, 구로다 히로키는 11승을 기록하며 메이저 리그 이적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평균 자책점 3.39, 196과 1/3이닝, 159탈삼진을 기록하며 투수 부문에서 개인 최고 성적을 남겼다.
[다저스와 재계약]
FA 자격을 얻었음에도 1년 1,200만 달러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재계약하며 팀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2010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었지만, 다른 구단의 높은 평가와 영입 제안에도 불구하고 11월 15일 1년 1,200만 달러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재계약을 맺었다. 그는 '다저스가 필요로 해준다면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싶었다'고 밝히며 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2011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및 개인 최고 기록 경신]
13승을 기록하며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고, 평균 자책점 3.07, 161탈삼진으로 주요 3개 부문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2011년 시즌, 구로다 히로키는 13승을 기록하며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또한 평균 자책점 3.07(리그 9위)과 161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주요 3개 부문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모금 활동에 참가했으며 개인적으로도 5만 달러를 기부하며 재해 복구에 힘을 보탰다.
[트레이드 거부권 행사 및 다저스 잔류]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는 여러 구단의 트레이드 제안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하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잔류했다.
2011년 7월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앞두고 여러 구단이 구로다 히로키의 영입에 관심을 보였으나, 그는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하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작년에 계약할 때 다저스에서 뛰기로 정했고, 그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밝혔다.
2012
2012년 1월 26일, 구로다 히로키는 뉴욕 양키스와 1년간 1,50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월드 시리즈 제패'를 목표로 팀에 합류했다.
2012년 6월 13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6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미일 통산 150승을 달성했다.
[MLB 통산 50승 달성]
토론토 블루제이스전에서 노모 히데오, 오카 도모카즈에 이어 일본인 선수로는 역대 세 번째로 메이저 리그 통산 50승을 달성했다.
2012년 7월 18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우천 콜드 게임 완봉승을 거두며 메이저 리그 통산 50승을 달성했다. 이는 노모 히데오, 오카 도모카즈에 이어 일본인 선수로는 역대 세 번째 기록이다.
[3년 연속 MLB 10승 달성]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이치로와 함께 선발 출전하여 3년 연속 10승을 달성, 노모 히데오에 이어 일본인 선수 역대 두 번째 기록을 세웠다.
2012년 7월 23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이 날 트레이드로 양키스에 입단한 스즈키 이치로와 함께 선발 출전했다. 그는 7이닝 1실점의 호투로 노모 히데오 이후 일본인 선수로는 역대 두 번째로 3년 연속 10승을 달성했다.
[시즌 2번째 완봉승 및 MLB 통산 52승]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 시즌 두 번째 완봉승을 거두며 일본인 선수 단독 2위인 메이저 리그 통산 52승을 달성했다.
2012년 8월 14일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 시즌 두 번째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로 그는 일본인 선수 중 단독 2위인 메이저 리그 통산 52승을 달성했으며, 조 지라디 감독으로부터 '이번 시즌 투수진 가운데 최고의 투구 내용'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MLB 개인 최다 16승 및 지구 우승]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16승을 기록하며 프로 입단 후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고, 팀의 지구 우승을 확정 지었다.
2012년 10월 4일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투수전을 펼쳤다. 그는 7이닝 2실점 투구로 프로 입단 후 자신의 최고 기록인 16승을 올렸고, 동시에 뉴욕 양키스의 지구 우승을 결정 지었다.
[MLB 포스트시즌 일본인 최장 이닝 투구]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 8과 1/3이닝 2실점 투구로 포스트시즌 출전 일본인 선수 최장 기록을 세웠다.
2012년 10월 1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그는 8과 1/3이닝 동안 5피안타 2실점의 호투를 펼쳐 팀 승리에 기여했으며, 이는 포스트시즌에 출전한 일본인 선수로서 최장 이닝 기록이었다.
2012년 11월 20일, 구로다 히로키는 뉴욕 양키스와 1년간 1,500만 달러를 받기로 하고 재계약에 합의했다.
2013
2013년 6월 7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세이프코 필드 경기에서 2회말 라울 이바녜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미일 통산 2000탈삼진을 달성했다.
[일본인 최초 내셔널 리그 전 구단 상대 승리]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전에서 승리하며 내셔널 리그 모든 구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최초의 일본인 투수가 되었다.
2013년 6월 19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양키 스타디움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 승리로 그는 내셔널 리그 15개 모든 구단을 상대로 승리를 달성한 최초의 일본인 투수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일본인 최다 4년 연속 MLB 10승]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 10승을 달성하며 일본인 선수 최다 기록인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2013년 7월 25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의 호투로 10승째를 올렸다. 이로써 그는 노모 히데오의 기록을 넘어 일본인 선수로서 최다인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2013년 12월 7일, 뉴욕 양키스와 연봉 1,600만 달러(성과급 별도)의 1년 계약에 재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2014
2014년 8월 25일, 히로시마현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을 위해 성금을 기부했다. 이는 고향인 히로시마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5년 연속 MLB 10승 달성]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10승을 달성하며 개인 기록을 경신하는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2014년 9월 3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시즌 10승째를 기록하며 전년도에 자신이 세운 기록을 경신하는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미일 통산 3000투구 이닝 달성]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 미일 통산 3000투구 이닝을 달성하며 역대 두 번째 기록을 세웠다.
2014년 9월 14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 3회 무사 상황에서 닉 헌들리를 상대로 3루 땅볼을 잡아내며 미일 통산 3000투구 이닝을 달성했다. 이는 미국과 일본을 통틀어 역대 두 번째로 달성한 기록이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 전격 복귀]
미국 메이저 리그의 거액 제안을 거절하고 옛 친정팀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1년 4억 엔에 계약하며 복귀를 발표했다.
2014년 12월 27일, 구로다 히로키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1,800만 달러(약 18억 원)가 넘는 거액의 영입 제안을 거절하고, 옛 친정팀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1년 4억 엔(인센티브 별도)에 계약하며 복귀를 발표했다. 이는 일본 야구계와 메이저 리그 관계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5
[히로시마 복귀 후 첫 승리]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복귀 후 첫 등판하여 7이닝 무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었고, 복귀 후 첫 안타도 기록했다.
2015년 3월 29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마쓰다 스타디움 경기에서 히로시마 복귀 후 첫 등판을 가졌다. 그는 7이닝 5피안타 무실점의 호투로 복귀 후 첫 승리 투수가 되었고, 4회에는 복귀 후 첫 2루타를 때려내기도 했다.
2015년 9월, 유엔 체계 훈련조사연구소(UNITAR)의 친선 대사로 임명되었다.
[일본 야구계 최고 연봉으로 히로시마 재계약]
추정치 약 6억 엔에 달하는 성과급 지급으로 히로시마와 재계약하며 일본 야구계 최고 연봉을 기록했다.
2015년 12월 17일, 마쓰다 스타디움 구단 사무소에서 재계약 협상을 가졌고, 추정치 약 6억 엔에 달하는 성과급 지급 조건으로 히로시마와 재계약을 맺었다. 이로써 그는 오릭스 버펄로스의 가네코 지히로를 넘어 일본 야구계 최고 연봉을 기록하게 되었다.
2016
[40대 완봉승 달성]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40대로서 완봉 승리를 기록하며 역대 8번째이자 41세 이상으로는 4번째 쾌거를 달성했다.
2016년 4월 2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마쓰다 스타디움 경기에서 120개의 공을 던져 4피안타 완봉 승리를 기록했다. 이는 40대로서 완봉 승리를 거둔 역대 8번째이자, 41세 이상 선수 중에서는 4번째 쾌거였다.
[미일 통산 200승 달성]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7이닝 무실점 호투로 미일 통산 200승(NPB 121승, MLB 79승)을 달성했다.
2016년 7월 23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7이닝 무실점 호투로 미일 통산 200승(NPB 121승, MLB 79승)을 달성했다. 노모 히데오에 이어 일본인 선수로는 두 번째 기록이며, 대졸 출신으로는 무라야마 미노루 이후 46년 만의 200승 달성이었다.
[사상 최초 선발승만으로 미일 통산 200승]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승리로 미일 통산 201승을 기록, 사상 최초로 선발 승리만으로 미일 통산 200승을 달성했다.
2016년 8월 20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마쓰다 스타디움 경기에서 선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노모 히데오와 맞먹는 미일 통산 201승째이자, 사상 최초로 선발 승리만으로 미일 통산 200승을 달성한 기록이다. 또한 대졸 출신 투수로서 사상 최초로 선발 승리만으로 200승을 달성한 쾌거였다.
[히로시마 현민 영예상 수상]
아라이 다카히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가네토 리에와 함께 히로시마 현민 영예상의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2016년 8월 30일, 아라이 다카히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가네토 리에와 함께 히로시마 현민 영예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미일 통산 최다승 경신 및 히로시마 리그 우승]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시즌 9승, 미일 통산 202승을 기록하며 노모 히데오의 미일 통산 기록을 경신했다. 이 경기 승리로 히로시마는 25년 만에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2016년 9월 10일 도쿄 돔에서 열린 2위 팀 요미우리와의 맞대결에 선발로 등판하여 6이닝 3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9승, 미일 통산 202승을 달성했다. 이는 노모 히데오의 미일 통산 기록(201승)을 경신한 것으로, 미일 통산 승수에서 역대 1위를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한 히로시마는 25년 만에 통산 7번째 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고, 구로다는 동료들과 함께 헹가래를 받았다.
[7년 연속 10승 및 40대 2년 연속 10승]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시즌 10승을 거두며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고, 40대로서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2016년 10월 1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마쓰다 스타디움 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시즌 10승째를 기록했다. 이로써 그는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고, 일본 프로 야구에서 역대 세 번째인 40대로서의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기록을 세웠다. 양대 리그제 이후로는 구도 기미야스 이래 두 번째이자 우완 투수로서는 첫 쾌거였다.
2016년 10월 18일, 구로다 히로키는 히로시마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는 일본 시리즈를 대비한 훈련에 앞서 팀 동료들에게도 직접 은퇴 의사를 전달했다.
[현역 마지막 등판]
일본 시리즈 3차전이 현역 생활의 마지막 등판이 되었으며, 5와 2/3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 오타니 쇼헤이를 마지막 상대 타자로 마운드를 떠났다.
2016년 10월 25일 삿포로 돔에서 열린 일본 시리즈 3차전이 구로다 히로키의 현역 생활 마지막 등판이었다. 그는 5와 2/3이닝 동안 85구를 던지며 4피안타 1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고, 마지막 상대 타자는 오타니 쇼헤이였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 영구 결번 지정]
히로시마 도요 카프 구단이 그의 등번호 15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 11월 4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 구단은 구로다 히로키의 등번호 '15'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그의 공헌을 기리는 의미였다.
2017
2017년부터 구로다 히로키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닛폰 TV 방송망, 히로시마 TV 방송, TBS 텔레비전, J SPORTS 등에서 게스트 해설자로 출연하며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2018
[아라이 다카히로 은퇴 기념 신문 광고 게재]
절친한 후배 아라이 다카히로의 은퇴를 기념하여 주고쿠 신문에 2면짜리 전면 광고를 자비로 게재하여 화제가 되었다.
2018년 11월 5일, 2년 후배이자 맹우인 아라이 다카히로의 현역 은퇴 직후, 구로다 히로키는 주고쿠 신문에 '결국, 아라이는 대단했다'는 문구와 함께 2면짜리 전면 광고를 자비로 게재했다. 이는 아라이 본인에게도 알리지 않은 깜짝 이벤트였으며,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다.
2019
[신문광고상 대상 수상]
아라이 다카히로 은퇴 기념 신문 광고로 일본신문협회 주관 제39회 신문광고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는 개인이 대상을 차지한 첫 사례이다.
2019년, 아라이 다카히로의 은퇴를 기념하여 게재했던 신문 광고가 일본신문협회 주관 제39회 신문광고상 대상을 수상했다. 개인이 광고주 부문 대상을 차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다시 한번 그의 '의협심'이 주목받았다.
2024
2024년, 일본 야구계에 대한 그의 뛰어난 공헌과 업적을 인정받아 일본 야구 전당 헌액자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