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
연표
1936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생]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로 태어나다. 이탈리아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성장했습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는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플로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회계사 마리오 호세 베르고글리오와 레지나 마리아 시보리 사이에서 태어난 5남매 중 장남입니다. 그의 부친은 당시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고 전해집니다.
1957
[신학생 전 다양한 직업 경험]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화공학자, 나이트클럽 경비원, 청소 관리인, 화학 실험실 연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예수회에 입회하기 전에 베르고글리오는 나이트클럽 경비원, 청소 관리인, 화학 실험실의 연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는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화학 기술 자격증을 따기도 했습니다.
1958
[예수회 입회]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원죄 없으신 잉태 신학교에서 신학생이 된 후,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시작했습니다.
베르고글리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에 소속된 원죄 없으신 잉태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생이 되었으며, 그로부터 3년 후인 1958년 3월 11일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시작했습니다.
1960
[예수회 정식 회원으로 첫 서원]
3년의 수련기를 마치고 예수회원으로서 첫 서원을 하였으며, 칠레 산티아고에서 인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예수회 수련생 시절에 그는 칠레의 산티아고로 가서 인문학을 공부했습니다. 1960년 3월 12일 3년의 수련기를 마친 후 베르고글리오는 첫 서원을 하여 정식으로 예수회원이 되었습니다.
1969
[사제 서품]
신학교 과정을 마친 후 라몬 호세 카스텔라노 대주교에 의해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이후 산미겔 신학교에서 철학·신학을 계속 공부하며 수련장과 신학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1967년 베르고글리오는 신학교 과정을 마치고 1969년 12월 13일 라몬 호세 카스텔라노 대주교에 의해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사제가 된 그는 산미겔 신학교의 철학·신학 대학원에서 계속 공부하며 예수회 입회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수련장과 신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1973
베르고글리오는 스페인 알칼라데에나레스에서 마지막 수련 과정인 제3수련기를 완료하고, 1973년 4월 22일 예수회원으로서 종신 서원을 하였습니다.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 역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에 임명되어 1979년까지 역임했습니다. 이 시기는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 시기로, 군사정권 협조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1973년 7월 31일에 그는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의 관구장이 되어 1979년까지 역임했습니다. 관구장 임기를 마친 후에 그는 산미겔 신학교의 철학·신학 대학원의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더러운 전쟁' 당시 베르고글리오가 군사정권에 저항한 예수회 사제들의 체포와 납치를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1980
교수로 임용되기 전에 베르고글리오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1980년 3개월 동안 더블린에 있는 예수회 센터에서 지냈습니다.
1986
[독일 유학 및 박사 학위 취득]
독일 프랑크푸르트 성 제오르지오 철학·신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마쳤습니다. 이 시기 '매듭을 푸는 마리아' 성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베르고글리오 신부는 수개월 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유학하여 성 제오르지오 철학·신학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마치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코르도바에 있는 예수회 공동체의 고해 사제와 영성 지도자를 겸임했습니다. 한편 독일에서 유학하던 당시 아우크스부르크에 있는 '매듭을 푸는 마리아' 성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성화의 복제품을 구입하고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이후로도 깊은 성모 신심을 간직했습니다.
1992
1992년 베르고글리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보좌 주교로 임명되어서 아우카의 명의 주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주교 서품]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안토니오 콰라시노 추기경에 의해 주교 서품을 받았습니다. 사목 표어로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를 선택했습니다.
1992년 6월 27일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안토니오 콰라시노 추기경에 의해 주교 수품을 받았습니다. 주교가 된 그는 자신의 사목 표어로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성 마태오 사도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을 받는 마태오 복음서 9장 9절-13절을 설명하는 성 베다의 강론 중 "Vidit ergo Iesus publicanum et quia miserando atque eligendo vidit, ait illi Sequere me(예수님께서 세리 한 사람을 보신 뒤, 사랑의 감정으로 그를 주목하셨기에, 선택하며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1997
1997년 6월 3일에 베르고글리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교구장 승계권이 있는 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1998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직 승계]
콰라시노 추기경 선종 후 아르헨티나 교구장직을 승계하여 새로운 본당들을 세우고 행정조직을 재편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특히 슬럼가 복음화와 교회 재정 투명성 강화에 힘썼습니다.
1998년 2월 28일 콰라시노 추기경이 재직 중에 선종하자 베르고글리오 대주교가 아르헨티나 교구장직을 승계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교구장이 된 베르고글리오 대주교는 새로운 본당들을 세우고, 대교구의 행정조직을 재편했으며, 낙태 반대 운동을 지휘했습니다. 주요 정책 중 하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슬럼가의 복음화였고, 이를 위해 슬럼가에 주둔하는 사제의 수를 배로 늘렸습니다. 또한 대교구의 은행 지분들을 전량 매각하고 예금계좌들을 국제 은행의 일반 고객 명의로 전환하며 재정 투명성을 강화했습니다.
2000
['더러운 전쟁' 시기 교회의 죄 참회 주장]
전직 주교 헤로니모 포데스타와 화해하고, 1970년대 '더러운 전쟁' 시기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가 자행한 죄에 대해 공개적으로 참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000년에 베르고글리오는 전직 주교였던 헤로니모 포데스타와 화해한 유일한 교회 관계자가 되었습니다. 포데스타가 결혼했다는 소식에 진노한 바티칸이 강하게 질타하자, 베르고글리오는 포데스타의 아내를 감싸주었습니다. 같은 해에 베르고글리오는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가 일명 '더러운 전쟁'으로 알려진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사 독재 시절에 자행한 죄에 대해 공개적으로 참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001
[추기경 서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로마교구의 산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되었습니다. 교황청 산하 여러 기구의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2001년 2월 21일 추기경회의에서 베르고글리오 대주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로마교구의 산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되었습니다. 추기경에 서임된 베르고글리오는 교황청의 산하 기구들인 경신성사성, 성직자성, 수도회성, 교황청 가정평의회, 교황청 라틴아메리카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했습니다.
2005
[아르헨티나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 선출 및 재임]
3년 임기의 아르헨티나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에 선출되어 2011년까지 두 차례 역임했습니다.
2005년 11월 8일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3년 임기의 아르헨티나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에 선출되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지냈습니다. 그리고 임기가 완료된 2008년 11월 11일에 다시 주교회의 의장에 선출되었습니다.
2007
[전통 라틴 미사 거행 허용 조치]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자의교서 반포 이틀 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전통 라틴 미사 거행을 허용하여 자의교서에 따른 조치를 취한 최초의 주교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2007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전례 거행에 대한 새로운 규칙을 담은 자의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을 반포하자 그로부터 이틀 후에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전통 라틴 미사를 사제들이 자유롭게 거행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자의교서에 따른 조치를 취한 최초의 주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에서는 전통 라틴 미사가 매주마다 거행되고 있습니다.
2013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9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여 시리아 공습으로 아사드 축출을 강행하려 할 때, 미 주교단회의가 시리아의 공격을 반대하는 서한을 오바마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럼에도 오바마가 시리아 공습을 강행하려 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금식기도회까지 열며 공습을 반대했습니다.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후 소집된 콘클라베에서 다수의 표를 얻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예수회, 남반구 출신 교황이며, 시리아 출신 교황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의 비유럽권 출신 교황입니다.
2013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고령으로 인한 직무 수행의 어려움을 이유로 스스로 교황직을 사임함으로써 콘클라베가 소집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섯 차례의 투표 끝에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2/3의 표를 얻어 같은 해 3월 13일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 출신 교황이면서,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입니다. 또한 최초의 남반구 국가 출신이자 이중국적을 보유한 교황이기도 하며, 시리아 출신이었던 교황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즉위한 비유럽권 출신 교황입니다.
[교황명 '프란치스코'의 유래 설명]
기자들과의 첫 회견에서 자신의 새 이름 '프란치스코'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서 따온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13년 3월 16일 프란치스코는 기자들과의 첫 회견에서 자신이 교황으로서 사용할 새 이름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따온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콘클라베 당시 옆에 앉아 있던 클라우디오 후메스 추기경의 격려와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마십시오.'라는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교황 즉위 미사 거행]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즉위 미사를 거행하며 교황으로서 공식적인 직무를 시작했습니다. 이 즉위식에는 100만 명 이상의 인파와 전 세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으며, 특히 동방 정교회 지도자가 참석한 것은 1054년 교회 분열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즉위 미사는 2013년 3월 19일 오전 9시 30분(한국 시간 19일 오후 5시 30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즉위식에 아무런 조건 없이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을 초대했으나, 모국인 아르헨티나의 주교들과 평신도들에게는 바티칸 참석 대신 자선 단체에 기부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날 즉위 미사에는 6개국 국왕과 31개국 대통령, 3개국 왕자, 11개국 총리가 참석했으며, 동방 정교회의 지도자가 교황의 즉위식에 참석한 것은 1054년 기독교가 동서방 교회로 분열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10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모여들었습니다.
[8인 추기경 자문단 구성으로 교황청 개혁 시작]
교황청 개혁을 위해 자신을 자문할 8인의 추기경 자문단을 구성했습니다. 이 자문단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서한 《착한 목자》 수정을 포함한 교황청 개혁을 검토하는 주요 임무를 맡았습니다.
2013년 4월 13일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자문할 8인의 추기경 자문단을 만들었습니다. 이 자문단은 법적 지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며, 교황의 일을 돕고 조언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주요 임무는 1988년 8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반포한 사도적 서한 《착한 목자》(Pastor Bonus)를 수정하는 개혁을 검토하는 것이었습니다. 《착한 목자》는 교황청의 각 부서 조직의 업무 지침을 정리한 행정법에 준하는 법령입니다. 자문단은 모든 대륙에서 골고루 선정되었습니다.
[교황청 직원 보너스 지급 중단]
교황청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직원들에게 지급되던 보너스와 추기경들에게 지급되던 보너스 관례를 폐지하며 금융 개혁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2013년 4월 18일 프란치스코는 교황청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에 예측할 수 없는 일시 비용으로 예산에 부담을 주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적절치도 않다면서 교황청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본래 신임 교황이 선출되면 교황청 직원들에게 소액의 보너스를 지급했었던 것이 관례였으며, 2005년에는 직원 1인당 1500유로(한화 220만원)가 보너스로 지급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바티칸 은행 감독 위원회에서 매년 추기경들에게 25,000유로를 보너스로 지급하던 관례도 폐지했습니다.
[바티칸 은행 투명성 강화 협정]
바티칸 은행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교황청 금융정보국과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 사이에 금융거래 정보 공유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2013년 5월 7일 프란치스코는 바티칸 은행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교황청 금융정보국과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 사이에 양해각서를 체결, 의심스러운 금융거래 정보를 두 나라가 공유하기로 합의하도록 했습니다. 교황청 금융정보국은 이어 벨기에와 스페인, 슬로베니아와도 비슷한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감사 기도에 성 요셉 이름 추가]
경신성사성 교령을 통해 로마 미사 경본의 감사 기도 제2, 3, 4양식에 성모 마리아 다음 순서로 성 요셉의 이름을 추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13년 6월 18일 프란치스코는 경신성사성 교령 《아버지의 돌보심》(Paternas vices)을 통해 로마 미사 경본 제3판에 나와 있는 감사 기도 제2양식과 제3양식, 제4양식에 성모 마리아 다음 순서에 성 요셉의 이름을 추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13년 6월 29일 프란치스코는 교황 회칙 《신앙의 빛》(Lumen Fidei)을 반포했습니다.
[바티칸 시국 형법 개정]
바티칸 시국의 형법 개정을 승인, 최종 서명했습니다. 아동 인신매매, 성범죄 등 아동 관련 범죄 처벌 기준을 강화하고, 금융테러 및 돈세탁 방지 기준을 강화하며, 종신형을 폐지하는 내용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2013년 7월 11일 교황청 바티칸시국위원회는 프란치스코가 바티칸 시국의 형법 개정을 승인, 최종 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새 법은 그해 9월 1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새로 개정된 형법은 UN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아동 인신매매, 아동 성매매, 청소년 성범죄, 아동 포르노물 소지 등에 관한 형사처분 기준을 강화했습니다. 이와 함께 금융테러와 돈세탁방지를 위해 유럽의회 돈세탁 감시기구 머니발 위원회 요구에 따라 금융거래 기준을 강화, 투명성을 높였습니다. 종신형 제도가 비인간적이고 효과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종신형을 폐지했고, 최고 형량을 35년으로 정했습니다.
2013년 11월 24일에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반포했습니다.
미국의 공습을 피한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2013년 12월 28일 바티칸 교황청에 대표단을 보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친서를 보냈으나, 친서의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2014
[몬시뇰 임명 자격 제한]
교구 사제의 몬시뇰 임명을 65세 이상으로 제한하기로 결정하며 교황청 개혁의 일환으로 인사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2014년 1월 프란치스코는 교구 사제의 몬시뇰 임명을 제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각 교구장 주교들은 65세 이상의 사제에 대해서만 교황에게 몬시뇰 임명을 추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교황청이나 각국 주재 교황 대사관 등 특정 기구 소속 사제에 대해서는 나이 제한을 적용하지 않고, 이미 몬시뇰로 임명된 65세 미만 사제도 칭호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교황청 재무원 신설]
교황청의 재무와 행정 등 재정 관련 모든 분야를 감독할 재무원을 신설하며 투명성과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빈곤층 지원을 위한 기금 조성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2014년 2월 24일 프란치스코는 교황청의 재무와 행정, 인사, 조달 등 재정과 관련한 모든 분야를 감독할 재무원을 신설했습니다. 교황청은 이날 성명에서 “새로운 기구를 창설한 목적은 현재의 관리 구조를 단순화시켜 강화하고 감독 기능을 향상시켜 내부 통제와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황청 사업에 지원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재무원은 8명의 추기경과 7명의 재무전문가 등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수장에는 조지 펠 추기경이 지명되었습니다.
[포춘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1위]
미국의 유력지 《포춘》(Fortune)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50인' 중 1위에 선정되었습니다.
2014년 3월, 미국의 유력지인 《포춘》(Fortune)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50인을 선정했고, 그 중 1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정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방문 및 세월호 추모, 순교자 시복식]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만났으며, 광화문에서 순교자 124위 시복식을 집전했습니다. 해미 순교성지를 방문해 기념비 제막식에도 참석했습니다.
2014년 8월 16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대한민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번 교황의 대한민국 방문은 역사상 세 번째였습니다. 대한민국에 방문하여 당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추모하고 유가족과 만났습니다. 당일 광화문 앞에서 교황 집전 아래 순교자 124위 시복식이 열렸습니다. 8월 17일에는 해미순교성지를 들러 아시아 주교단과의 만남과 오찬을 가졌으며, 해미 순교자 3위의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했습니다.
[미국과 쿠바 간 관계 정상화에 기여]
미국과 쿠바의 외교적 관계 정상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의장에게 개인적으로 호소하며 인도적 해결책을 찾도록 권유했으며, 바티칸에서 양국 간 최종 협상이 타결되도록 주선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미국과 쿠바의 외교적 친선관계로의 전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14년 12월 17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의 관계정상화를 선언했습니다. 교황은 지난 여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편지를 보내 상호 차이점을 해소하고자 인도적 해결책을 찾아 바티칸에 제시하라고 권유했습니다. 교황의 노력으로 지난 10월 바티칸이 주선한 양국 간 접촉에서 최종 협상안이 타결되었습니다.
2015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교황 선출 2주년을 기념하여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님을 위한 24시간' 참회 예식 강론을 통해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교황 선출 2주년을 기념하는 2015년 3월 13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님을 위한 24시간’ 참회 예식 강론을 통해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했습니다. 강론에서 프란치스코는 “교회는 모든 이를 환대하며 그 누구도 거절하지 않는 집”으로서, 자비의 증인이 되고 하느님의 자비로 우리 시대의 모든 이를 위로하도록 부름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회동]
교황청에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회동하여 우크라이나 사태와 시리아 사태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이 회동 3개월 후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6월 10일 교황청에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회동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회동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시리아 사태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푸틴과 교황이 교황청에서 회동을 한 3개월 후 러시아는 2015년 9월 30일 IS 반군 퇴치를 명분으로 시리아 내전에 본격 개입했습니다.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더불어 사는 집, 곧 지구를 돌보는 데에 관한 교황 회칙인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반포했습니다.
2015년 6월 18일에는 더불어 사는 집, 곧 지구를 돌보는 데에 관한 교황 회칙인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반포했습니다.
[자비의 특별 희년 개막 선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이 되는 날, 성 베드로 대성전의 '거룩한 문'을 열어 자비의 특별 희년의 개막을 공식 선포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된 지 50년째 되는 날이기도 한 2015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프란치스코는 ‘자비의 문’으로 지정된 성 베드로 대성전의 거룩한 문을 열어 자비의 특별 희년 개막을 선포했습니다. 지역 교회들은 13일 로마 주교좌 성당인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전과 순례지 성당들이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각 지역 주교좌 성당과 교구장이 지정한 순례지에서 자비의 문으로 지정된 희년 성문을 열었습니다. 자비의 문은 보다 많은 순례자들이 거룩한 곳을 찾아 은총을 체험하고 회개할 수 있도록 자비의 희년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 열어두었습니다.
2016
[자비의 희년 종료 및 낙태죄 사면권 영구 부여]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성 베드로 대성전의 거룩한 문을 닫는 폐문 예식을 거행하며 자비의 특별 희년을 공식 종료했습니다. 또한, 전 세계 사제들에게 고해성사 때 신자들의 낙태죄를 사면할 수 있는 권한을 영구적으로 부여했습니다.
2016년 11월 13일 전 세계 모든 교구의 주교좌 성당들이 1년 내내 열어놓은 자비의 문을 닫은데 이어서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프란치스코가 성 베드로 대성전의 거룩한 문을 닫는 폐문 예식을 거행하면서 자비의 희년이 공식 종료되었습니다. 자비의 희년을 마치면서 프란치스코는 교황 교서 《자비와 비참》(Misericordia et Misera)을 발표하고, 사회의 취약계층과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습니다. 또한 전 세계 사제들에게 고해성사 때 신자들의 낙태죄를 사해줄 수 있는 권한을 영구적으로 부여했습니다.
2018
[칠레 성범죄 묵인 주교 옹호 논란]
칠레 방문 중 아동 성추행을 묵인했다는 의혹을 받는 바로스 주교를 옹호하며 '증거가 없다'고 주장해 세계적인 비판을 받았습니다.
칠레의 페르난도 카라디마 신부의 아동 성추행 사건이 2002년부터 이어졌고 2010년 이후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결국 카라디마 신부는 2011년 면직당했으나, 2015년 바티칸 교황청이 아동 성추행이 벌어진 오소로노 교구에 카라디마 신부의 제자인 바로스 주교로 임명하면서 성추행 묵인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1월 18일 칠레를 방문한 자리에서 바로스 주교를 둘러싼 성추문 은폐 의혹에 대해 '증거를 가져오면 이야기할 것'이라며 '단 하나의 증거도 없고 모든 것이 중상모략'이라며 바로스 주교를 두둔했습니다.
[칠레 성범죄 묵인 주교 옹호 발언 사과]
칠레 성범죄 묵인 주교 옹호 발언으로 비판이 들끓자, 자신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세계 각국서 교황에 대한 비판이 들끓자 결국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결국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2025
[마지막 공개 출현 및 부활절 연설]
부활절 일요일,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그의 마지막 부활절 연설을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지막 공개 출현은 2025년 4월 20일 부활절 일요일,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있었으며, 그곳에서 그의 마지막 부활절 연설을 하였습니다.
[88세로 선종]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향년 88세로 선종하였습니다. 사인은 뇌졸중에 이은 심혈관 기능 정지였습니다. 그의 영적 유언에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매장되기를 원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활절 다음 날인 2025년 4월 21일 오전 7시 35분(현지 시간)에 그의 거처,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향년 88세로 선종했습니다. 사인은 뇌졸중에 이어 발생한 '되돌릴 수 없는 심혈관 기능 정지(쇼크)'였습니다. 케빈 패럴 추기경이 바티칸 TV 채널 영상 성명을 통해 교황 프란치스코의 선종을 발표하였으며, 그의 장례는 소박하게 치러졌습니다. 교황의 2022년 6월 29일자 영적 유언에는 그가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매장되기를 원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을 사절단장으로 하는 조문단을 파견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에 따라 소박하게 장례식을 치렀으며, 2025년 4월 26일에 거행되었습니다. 교황의 선종과 함께 사도좌 공석이 시작되며, '노벤디알레스'(아홉 날)로 불리는 아홉 일간의 애도 기간이 진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을 사절단장으로 임명하여 교황 장례식 사절단을 파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