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FC

num_of_likes 111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축구단, 프로 스포츠 구단, K리그 축구 구단

광주 FC는 2010년 창단된 광주광역시 연고의 남자 프로 축구단으로, K리그1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K리그1 승격 후 첫 해 잔류에 성공한 최초의 구단이자, 시도민구단 중 최초로 K리그1에서 득점상과 최우수선수상을 배출하며 강팀으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2023년에는 구단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2002

[R리그 B조 1위 달성]

광주 상무 축구단이 연고 계약 후 K리그 참가에 앞서 2군 리그인 R리그에 참여하여 B조 1위를 기록했습니다.

연고지 계약을 맺었을 때는 이미 리그가 시작한 이후여서 2002년에는 K리그 참가에 앞서 2군 리그인 R리그에 참여하였고, B조 1위를 기록하며 좋은 시작을 알렸습니다.

[광주 상무 축구단 유치]

광주광역시가 2002 FIFA 월드컵 경기장 활용을 위해 국군체육부대와 연고 협약을 맺고, 실업 리그 상무 축구단을 유치하며 광주 상무가 창단되었습니다.

2002년 FIFA 월드컵을 위해 지어진 광주월드컵경기장 활용 방안으로 광주광역시는 프로축구단 유치를 추진했습니다. 새로운 구단 창단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기에 실업 리그에서 활동하던 상무 축구단을 유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02년 4월 13일, 국군체육부대와 광주광역시는 공식적으로 연고 협약을 맺었으며, 이로써 상무는 처음으로 연고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계약은 2008년까지였고, 그 사이에 광주광역시는 새로운 시민축구단을 만들기로 계획했습니다. 가입비 10억 원과 축구발전기금 30억 원 등 총 40억 원을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내고 한시적으로 상무를 유치한 것이었습니다.

[K리그 참가 신청서 제출]

광주 상무가 정식으로 K리그 참가 신청서를 제출하며 다음 시즌 K리그 진출을 준비했습니다.

광주 상무 축구단이 2002년 12월에 정식으로 K리그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듬해 1월 승인을 받아 2003년 광주 상무 불사조로 구단 명칭을 변경한 후 K리그에 참가하게 됩니다. 이는 1985년 이후 18년 만의 프로 무대 복귀였습니다.

2003

[광주 상무, K리그 재참가]

광주 상무 불사조가 18년 만에 K리그에 복귀하여 참가했습니다.

2003년, 광주 상무 불사조는 구단 명칭을 변경한 후 K리그에 참가했습니다. 이는 1985년 이후 18년 만의 프로 무대 복귀였습니다. 복귀 첫 해에 12팀 중 하위권인 10위를 기록했습니다.

2008

[FA컵 8강 진출]

광주 상무가 FA컵에서 수원 삼성을 꺾고 8강까지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FA컵 2008에서 광주 상무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승부차기로 꺾고 8강까지 진출하는 이변을 만들었으나, 4강에서 경남 FC에게 패하여 탈락했습니다.

[시민 구단 창단 2년 유예]

광주광역시가 연고 계약 만료 기한 내 시민 구단 창단 약속을 이행하지 못해 2년 유예를 요청했습니다.

광주 상무와의 연고 계약이 끝나는 2008년까지 광주광역시는 기한 내 시민 구단 창단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광주광역시는 2년간 유예를 다시 요청했고, 2010년까지 상무의 유치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2010

[광주광역시, 프로축구단 창단 선언]

박광태 광주광역시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 시민 축구단 창단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광주광역시와 상무의 연고 협약이 2010년을 기해 만료됨에 따라, 상무의 광주 유치에 대한 공약의 일환이었던 광주 시민 축구단 창단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2010년 4월 5일, 박광태 광주광역시장은 광주광역시청 대회의실에서 곽정환 한국프로축구연맹 회장,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 지역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프로 축구단 창단을 선언했습니다.

[창단 준비 위원회 발족]

광주 프로축구단 창단을 위한 준비 위원회가 발족하여 본격적인 창단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박광태 광주광역시장의 프로축구단 창단 선언 이후, 2010년 5월 4일 창단 준비 위원회가 발족하여 본격적인 창단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6월 11일부터 7월 20일까지 시민주 공모가 진행되었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창단 승인]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광주 시민 프로 축구단의 공식 창단을 승인했습니다.

2010년 10월 12일에 열린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광주 시민 프로 축구단은 연맹의 정식 창단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광주 FC의 창단이 공식화되었습니다.

[최만희 초대 감독 선임]

광주 시민 프로 축구단의 초대 감독으로 최만희가 선임되었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창단 승인 후 2010년 10월 18일, 클럽의 초대 감독으로 최만희가 선임되었습니다. 이어 10월 29일에는 '광주 FC'로 팀명이 확정되었습니다.

[팀명 '광주 FC' 확정]

창단을 준비하던 구단의 공식 팀명이 '광주 FC'로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초대 감독 최만희 선임에 이어, 2010년 10월 29일에 '광주 FC'로 팀명이 확정되었습니다. 약 두 달 뒤인 12월 16일에는 엠블렘 공개와 함께 공식적인 창단식을 가졌습니다.

[광주 FC 공식 창단]

광주 FC가 엠블렘 공개와 함께 공식적인 창단식을 개최하며 K리그 16번째 구단으로 탄생했습니다.

2010년 12월 16일, 광주 FC는 엠블렘 공개와 함께 공식적인 창단식을 가졌습니다. 이로써 광주 FC는 K리그 16번째 구단으로 정식 출범하여 2011 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연고 협약이 만료된 상무는 경상북도 상주시로 연고지를 옮겨 상주 상무 피닉스가 창단되었습니다.

2011

[신생팀으로서 K리그 11위 기록]

창단 첫 해인 2011 시즌, 광주 FC는 K리그 16개 팀 중 11위를 기록하며 신생팀으로서 호성적을 거두었습니다.

2011 시즌 광주는 총 9승 8무 13패를 기록하며 16개 팀 중 11위에 이름을 올리며 신생팀으로서 호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시즌 막판 6강 챔피언십 티켓이 절박한 팀들에게 연일 승리하거나 비기며 '고춧가루 부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초대 주장 박기동 선임]

2011 시즌을 앞두고 박기동이 광주 FC의 초대 주장으로, 김은선이 부주장으로 결정되었습니다.

K리그 2011 시즌을 앞두고 2011년 1월 16일, 초대 주장은 박기동, 부주장은 김은선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박기동 주장은 '광주FC가 힘차게 비상할 수 있도록 선수, 코치진 간 소통의 창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첫 시즌에 대한 포부를 밝혔습니다.

[창단 첫 공식전 승리]

광주 FC가 K리그 2010 시즌 15위였던 대구 FC와의 창단 첫 공식전에서 3-2로 승리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습니다.

2011 시즌의 첫 경기이자 역사적인 공식전의 상대는 K리그 2010 시즌 15위 대구 FC였습니다. 이 경기에서 광주는 펠레 스코어로 승리하며 창단 첫 승리의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2011 시즌 광주는 총 9승 8무 13패를 기록하며 16개 팀 중 11위에 이름을 올리며 신생팀으로서 호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첫 국가대표 A매치 선발 출장]

광주 FC 소속 이승기 선수가 레바논 전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발 출장하며 구단 역사상 첫 A매치 선발 출장 선수가 되었습니다.

광주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김동섭은 올림픽 대표로, 박기동과 이승기는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습니다. 이승기는 11월 15일 레바논 전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발출장하여, 대한민국 성인대표팀으로 A매치에 선발 출장한 첫 번째 광주 선수가 되었습니다.

2012

[K리그 사상 첫 2부 리그 강등]

2012 시즌, 광주 FC는 K리그 사상 처음으로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K리그 2012 시즌 초반, 광주는 5라운드까지 2위까지 오르는 등 기분 좋은 출발을 하였으나, 갈수록 순위가 떨어졌습니다. 결국 강원 FC와 마지막까지 강등 경쟁을 벌이다가 43라운드에서 대구 FC에게 0-2로 패배하며 강원과의 승점 차이가 벌어져 K리그 챌린지로의 강등을 확정지었습니다. 이로써 광주 FC는 K리그 사상 2부 리그로 강등된 첫 팀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최만희 초대 감독 사퇴]

강등이 확정된 후, 최만희 초대 감독이 계약 기간을 남기고 자진 사퇴하며 구단 운영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K리그 챌린지 강등이 확정된 후, 최만희 초대 감독은 마지막 라운드 종료 후, 계약을 1년도 남기지 않은 상태로 결국 자진 사퇴하였습니다. 최만희 감독은 사퇴하며 단장인 박병모의 운영 행태를 질타하였고, 서포터들도 강력하게 박병모 단장의 퇴임을 요구했습니다. 사임 이틀 후, 여범규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여범규 감독 승격]

최만희 감독 사퇴 이틀 후, 여범규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최만희 감독 사퇴 이틀 후인 2012년 12월 6일, 여범규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시즌 후 에이스였던 이승기는 광주를 떠나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했으며, 팬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던 박병모 단장을 포함한 경영진이 2부 강등의 책임을 지고 총 사퇴했습니다.

2013

[여범규 감독 사퇴 및 남기일 감독대행 부임]

K리그 챌린지 시즌 중 여범규 감독이 사퇴하고 남기일이 감독대행으로 시즌을 이어나갔습니다.

여범규 감독이 새로 부임하고 K리그 챌린지에서 리그를 시작한 광주는 최종 3위로 리그를 마무리하며 K리그 클래식으로의 승격의 꿈이 좌절되었습니다. 시즌 중도에 여범규 감독이 사퇴하였으며 남기일이 감독대행으로 시즌을 이어갔습니다. 시즌이 끝난 후 팀의 주축이자 창단 멤버였던 김수범, 김은선, 박희성, 유종현 등 수많은 선수들이 타 팀으로 이적했습니다.

2014

[2년 만에 K리그 클래식 승격]

광주 FC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경남 FC를 꺾고 강등된 지 2년 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기적적인 승격을 달성했습니다.

선수단 대부분을 개편하고 남기일 감독 대행 체제로 시작된 2014 시즌, 광주는 어렵게 4위에 안착하여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강원 FC를 1:0으로, 플레이오프에서 안산 경찰청을 꺾었습니다. 12월 3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경남 FC와의 1차전에서 3:1 승리를 거두었고, 12월 6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2차전에선 1:1로 비겼으나 총합 스코어 4:2로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했습니다. 이로써 광주는 K리그 챌린지에서 강등된지 2년 만에 기적적으로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게 되었습니다.

2015

[K리그1 잔류 및 역대 최고 순위 달성]

광주 FC가 승격 후 첫 해 잔류에 성공한 최초의 K리그 클래식 팀이 되었고, 창단 이후 역대 최고 순위인 1부 리그 10위를 기록했습니다.

2015 시즌 광주는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최악의 잔디 상태로 인해 성적이 주춤했지만, 리그 10승으로 창단 이후 역대 최다승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창단 이후 역대 최고 순위인 1부 리그 10위를 기록하며 승격 후 첫 해 잔류에 성공한 최초의 K리그 클래식 팀이 되었습니다. 2015 시즌은 다양한 역사를 새로 쓴 의미 있는 시즌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남기일 감독대행, 정식 감독으로 승격]

팀을 1부 리그로 복귀시킨 남기일 감독 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습니다.

2015년 1월, 팀을 1부 리그로 복귀시킨 남기일 감독 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시즌 초 강등 1순위로 분류되었으나 예상을 깨고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한때 2위까지 올라가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16

[정조국 K리그 MVP 3관왕 및 구단 최고 성적 달성]

정조국 선수가 K리그 득점상, 베스트 11, MVP 3관왕을 차지했고, 광주 FC는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인 8위를 기록하며 2년 연속 1부 리그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2016 시즌, 광주 FC는 FC 서울로부터 영입한 정조국을 앞세워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인 8위를 기록하여 2년 연속 1부 리그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팀의 주축 정조국은 1년간 20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상 수상, K리그 베스트 11 부문 선정, K리그 MVP 등 3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2017

[남기일 감독 자진 사퇴]

시즌 부진으로 강등권을 맴돌자 약 4년간 팀을 이끌어온 남기일 감독이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했습니다.

대구 FC와의 2017시즌 리그 개막전에서 승리하고 전북 현대를 상대로 시즌 첫 패배를 안기기도 했으나, 시즌 내내 부진을 이어가며 강등권을 맴돌았습니다. 결국 8월, 약 4년간 팀을 이끌어온 남기일 감독이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고, 후임 감독에 한국을 대표하는 지략가 중 한 명인 김학범 감독이 선임되었습니다.

[김학범 감독 선임]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남기일 감독의 후임으로 김학범 감독이 선임되었습니다.

2017년 8월 16일,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 남기일 감독의 후임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지략가 중 한명인 김학범 감독이 선임되었습니다.

[3년 만에 K리그1 재강등]

김학범 감독 부임에도 불구하고 시즌 내내 부진을 겪으며 대구 FC전 패배로 3년 만에 K리그1 재강등이 확정되었습니다.

김학범 감독은 짧은 기간에도 스리백을 중심으로 끈끈한 수비 조직력을 갖추면서 9월 24일 강원 FC전을 시작으로 6경기 연속 무패를 달리며 상승세를 이어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11월 4일 대구 FC전 패배로 3년 만에 K리그1 재강등이 확정되었으며, 김학범 감독이 2017 시즌을 끝으로 강등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습니다.

[김학범 감독 자진 사퇴]

K리그1 재강등에 책임을 지고 김학범 감독이 2017 시즌을 끝으로 자진 사퇴했습니다.

2017년 11월 18일, 대구 FC전 패배로 3년 만에 재강등이 확정되자 김학범 감독이 2017 시즌을 끝으로 강등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습니다.

[박진섭 신임 감독 내정]

2018 시즌을 앞두고 박진섭이 광주 FC의 신임 감독으로 내정되었습니다.

2018시즌을 앞두고 2017년 12월 16일, 박진섭 감독이 신임 감독으로 내정되었습니다. 하지만 FC 안양과의 리그 개막전부터 서울 이랜드와의 리그 4라운드전까지 단 1승도 못 거두었으며, FA컵에서도 약체 실업팀에 충격패를 당하며 불안한 시작을 알렸습니다.

2018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 및 승격 좌절]

박진섭 감독 체제에서 리그 5위를 기록하고 아산 무궁화의 승격권 박탈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대전 시티즌에 패하며 승격이 무산되었습니다.

박진섭 감독 체제에서 불안한 시작을 알렸지만, 이후 승점을 차곡차곡 쌓아 광주를 4강권 안으로 끌어들였고, 리그 최종 5위를 기록했습니다. 리그 1위인 아산 무궁화의 승격권 박탈로 운좋게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대전 시티즌과의 플레이오프전에서 악조건 속에 0:1로 패하며 승격이 무산되었습니다.

2019

[18경기 무패 행진 달성]

안산 그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여봉훈의 결승골로 승리하며 리그 18경기 무패 행진을 달성했습니다.

2019 시즌, 주전 선수 유출에도 불구하고 박진섭 감독은 펠리페의 무서운 득점력과 2선 미드필더들의 좋은 지원을 앞세워 7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리그 초반 단독 선두에 등극했습니다. 7월 6일 열린 안산 그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여봉훈의 결승골로 승리하며 18경기 무패를 달성했으며, 박진섭 감독은 6월 이달의 감독에 선정되었습니다.

[구단 사상 첫 K리그2 우승 및 1부 리그 승격]

2위 부산의 패배로 광주 FC가 마침내 K리그2 우승과 함께 1부 리그 승격을 확정 짓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2019년 10월 19일 안양전에서 4:0 대승을 거두며 7:1 대패를 설욕했고 리그 우승에 한발짝 더 다가섰습니다. 이튿날인 10월 20일, 2위 부산이 안산에 패하면서 광주 FC는 마침내 K리그2 우승과 1부 리그 승격을 확정지었습니다. 이는 구단 사상 첫 우승 기록입니다.

2020

[구단 최초 상위 스플릿 진출 및 1부 리그 6위]

박진섭 감독 체제 하에 돌아온 1부 리그에서 구단 역사상 최초로 상위 스플릿에 안착하며 6위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2020 시즌,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박진섭 감독은 펠리페, 엄원상 등을 주축 선수로 기용하며 돌아온 1부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이 시즌은 광주축구전용구장으로 홈구장이 이전된 첫 해였고, 그 해에 구단 역사상 최초로 상위 스플릿에 안착하며 6위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광주의 1부 리그 역대 최고 순위입니다.

[박진섭 감독, FC 서울로 이적]

2020 시즌 상위 스플릿 진출을 이끈 박진섭 감독이 계약기간이 남아있음에도 FC 서울 감독으로 이적했습니다.

2020 시즌 종료 후, 구단 역사상 최초로 상위 스플릿에 안착시킨 박진섭 감독은 계약기간이 남아있음에도 FC 서울 감독으로 이적했습니다. 이에 김호영 감독이 새롭게 부임하여 2021 시즌을 맞이하게 됩니다.

[김호영 감독 부임]

박진섭 감독의 이적 후, 김호영 감독이 광주 FC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박진섭 감독이 FC 서울로 이적한 후, 2020년 12월 22일 김호영 감독이 새롭게 부임하여 2021 시즌을 맞이했습니다.

2021

[K리그1 세 번째 강등]

김호영 감독 체제 하에 뛰어난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불운과 구단 내부 비리로 인해 광주 FC가 K리그1에서 세 번째 강등을 맞이했습니다.

김호영 감독 체제 하에 광주는 매우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으나, 경기 외적으로 여러가지 불운이 겹치면서 계속해서 승리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당시 광주는 중국으로 이적한 펠리페의 대체자로 임대 영입한 조나탄이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도 못했으며, 대기심의 실수로 인해 몰수패를 받기도 했고, 다득점으로 이기고 있다가 후반 종료 직전에 골을 먹혀 역전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구단 내부에 비리가 터지면서 전체적으로 팀 분위기가 흐트러지면서 세 번째 강등을 맞이하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이정효 감독 선임]

김호영 감독 경질 후, 과거 광주에서 코치를 역임했던 이정효 감독이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22 시즌을 앞두고 김호영 감독이 경질되고, 과거 광주에서 코치를 역임했던 이정효 감독이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광주의 주축 선수들이 많이 팔려나간 와중에 K리그에서 처음 데뷔하는 감독을 선임했기 때문에 시즌 초 전망은 좋지 못했습니다.

2022

[이정효 감독 체제 K리그2 우승 및 1부 리그 재승격]

이정효 감독의 뛰어난 리더십과 전술 구상 능력으로 광주 FC가 리그에서 단 네 번의 패배만 허용하며 압도적으로 K리그2 우승을 차지하고 1부 리그로 재승격했습니다.

2022 시즌은 김호영 감독이 경질되고 이정효 감독이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시즌 초 전망이 좋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정효 감독은 특유의 리더십과 전술 구상 능력을 발휘하여 리그에서 단 네 번의 패배만 허용하며 압도적으로 광주를 우승 시켜 1부 리그 재승격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2019년 박진섭 감독의 우승 때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K리그2 최다 승리, 최다 승점이란 기록을 작성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023

[구단 최초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쾌거]

이정효 감독의 혁신적인 전술로 K리그1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구단 최초로 단일 시즌 전 구단 상대 승리 기록을 세웠고, 최종 3위로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2023 시즌, 이정효 감독은 그동안 1부 리그에서 볼 수 없었던 캐릭터와 전술적 움직임으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선수들도 그의 지도에 잘 따르면서, 선수들의 수준 또한 한 단계 랭크업되었고, 광주 FC는 2023 시즌 K리그1 첫 번째이자 구단 최초 단일 시즌 전 구단 상대 승리 기록을 세웠습니다. 강한 압박과 공격 축구, 체계적이면서도 유기적인 포지셔닝을 통해 현대축구의 트렌드를 반영한 전술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구단 역사상 최고의 흥행을 맞이했습니다. 시즌 정규라운드를 3위로 마무리하며 구단 최고 성적으로 파이널 라운드 스플릿 A에 진출하는 업적을 달성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파이널라운드에서 3위 성적을 유지하면서 구단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어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광주 FC
+ 사건추가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