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달카날 전역
연표
1941
[진주만 기습]
일본 제국이 하와이 진주만에 주둔한 미해군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하여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공식 참전하게 된 사건입니다.
일본은 미해군 무력화와 천연자원 확보를 목표로 삼았으나, 이 공격은 미국의 참전을 불러와 태평양 전쟁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1942
[일본군, 툴라기 점령]
일본 제국 해군이 솔로몬 제도의 툴라기를 점령하고 해군 항공기지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이후 연합군의 과달카날 전역 계획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과달카날 비행장 건설]
일본 해군이 과달카날 룽가 포인트에 대규모 비행장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이 기지가 장거리 폭격기 기지로 활용될 우려가 커지면서, 연합군이 과달카날 공격을 결정하는 주요 계기가 됩니다.
[연합군 피지 집결]
75척에 달하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전투함이 피지 근처에 집결하여 상륙작전 훈련을 수행했습니다.
이는 암호명 '감시탑 작전'으로 불린 과달카날 공격의 시작을 알리는 대규모 움직임이었습니다.
[과달카날 향해 출정]
상륙작전 훈련을 마친 연합군 함대가 과달카날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로써 태평양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감시탑 작전'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핸더슨 비행장 공세]
일본군은 1942년 8월부터 11월까지 핸더슨 비행장을 되찾기 위해 수차례 대규모 공세를 시도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3번의 육상 교전, 5번의 야간 수상 교전, 2번의 항공모함 교전이 이어졌고, 거의 매일 항공 작전이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습니다.
[과달카날 기습 상륙]
주로 미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악천후를 틈타 일본군에 발각되지 않고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툴라기, 플로리다에 기습 상륙했습니다.
이는 일본 제국에 대한 연합군의 태평양 전쟁 첫 대규모 공세였습니다.
일부에서는 '과달카날 자정의 난동'이라고도 불립니다.
[라바울 일본군 공습]
라바울에서 발진한 일본 해군 항공기가 연합군 상륙부대를 공격하여 수송함 USS 조지 F.
엘리엇을 침몰시키고 구축함 USS 자비스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습니다.
이틀에 걸친 공습으로 일본군은 36기, 미군은 19기(함재기 14기 포함)의 항공기를 잃었습니다.
[연합군, 툴라기 점령]
3,000여 명의 미해병이 툴라기와 가부투-타남보고를 공격하여 886명의 일본 제국군에 맞서 격렬한 저항을 뚫고 툴라기를 점령했습니다.
대부분의 일본군이 전사하며 122명의 미해병대원도 희생되었습니다.
[핸더슨 비행장 확보]
미해병대가 룬가 포인트에 위치한 일본군 비행장을 점령했습니다.
이 비행장은 이후 '핸더슨 비행장'으로 명명되며, 과달카날 전역 전체의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 거점이 됩니다.
일본 해군 건설대는 보급품과 장비를 버리고 도주했습니다.
[사보섬 해전 발발]
과달카날 전역의 첫 주요 해상 교전인 사보섬 해전이 발발했습니다.
일본 해군 중장 구니치 미카와가 이끄는 함대가 연합군 호위 함대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도쿄 익스프레스 시작]
사보섬 해전 직후 일본군은 구축함을 이용한 보급 작전인 '도쿄 익스프레스'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미군이 붙인 이름으로, 과달카날에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야간 고속 수송 작전이었습니다.
[사보섬 해전 연합군 완패]
사보섬 해전에서 연합군은 중순양함 4척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미카와 제독이 연합군 수송선을 공격하지 않고 철수하여 수송선 엄호에는 성공했습니다.
이 해전은 과달카날 전역 초기의 중요한 해상 전투였습니다.
제1차 사보섬 해전 또는 일본에서는 제1차 솔로몬 해전이라고도 불린다. 일본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미군 중순양함 3척과 호주 순양함 1척이 침몰하고, 미군 순양함 1척과 구축함 2척이 손상되었다. 일본군은 무방비 상태의 연합군 수송선을 공격할 기회를 놓쳤는데, 미카와 제독이 낮 시간 동안 미국 항공모함의 공습을 우려해 철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부투-타남보고 점령]
미해병대가 가부투-타남보고 섬을 점령하며 툴라기 지역의 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대부분의 일본군 방어자들이 전사했습니다.
[연합군 수송함대 철수]
플레처 제독의 항공모함 기동 함대 철수로 공중 지원이 불가능해지자, 터너 제독은 장비 및 보급품 하역이 절반도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함대를 과달카날에서 철수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과달카날에 남겨진 미해병대의 초기 보급 부족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동부 솔로몬 해전 발발]
1942년 8월 24일부터 25일까지 동부 솔로몬 해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해전에서 미군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가 대파되고, 일본군의 항공모함 류조가 침몰하는 등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본 해전 외에 일본군 경순양함 진츠가 미군 B-17 폭격기에 의해 대파되고 구축함 무츠키가 침몰하는 피해도 입었습니다.
[과달카날 해전 대규모 공세]
1942년 11월 초, 일본군은 '과달카날 해전'으로 불리는 핸더슨 비행장에 대한 대규모 공중, 해상 폭격과 육상 공격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 실패는 일본군이 과달카날을 수복하려는 시도를 포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일본군 과달카날 수복 포기]
일본군은 핸더슨 비행장 탈환을 위한 지속적인 실패와 막대한 피해로 인해 1942년 12월 과달카날 수복 시도를 공식적으로 포기했습니다.
이는 태평양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43
[일본군 '케 작전'으로 철수]
미육군 14군단의 공세에 직면한 일본군은 '케 작전'을 통해 과달카날에 남아있던 잔존 병력을 철수시켰습니다.
이는 일본군이 과달카날 전역에서 완전히 패퇴했음을 의미합니다.
[과달카날 전역 종결]
약 6개월간 이어진 과달카날 전역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이 전역은 태평양 전구에서 연합군이 일본군에 거둔 첫 전략적 제병 승리이자, 일본이 태평양 지역에서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전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