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연표
1963
공지영은 1963년 1월 31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동에서 1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으며, 차와 기사가 있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녀의 자전적 소설 《봉순이 언니》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1969
[아버지의 일본 출장과 어린 시절 경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본 출장을 다녀오며 고가의 선물을 받아 친구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았으나, 부모의 검소함과 친구들의 부유함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1969년 아버지가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됐는데, 시골 친척들까지 김포공항으로 올라와 환송하며 잔치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유학을 갔다 오면서 공지영을 위해 핑크색 바바리와 키티 필통, 롤러스케이트까지 고가의 선물을 사 와 친구들 사이에서 주목받았습니다. 부모는 검소하여 용돈을 많이 주지 않았고, 잘 사는 친구들은 지갑에 지폐가 가득했지만 공지영은 그 사이에서 왕따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1972
공지영은 초등학교 3학년 때 MBC가 주최한 '어머니'를 주제로 한 글쓰기 대회에서 차상을 수상하고 상금 3만원을 받으면서 실력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입상한 글은 어머니가 오빠를 편애한다는 어린이다운 투정을 담은 내용이었습니다.
1977
[야구선수 최동원에 대한 자존심 섞인 팬심]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야구부의 최동원 선수를 좋아했으나, 같은 학생에게 사인을 받는 것이 자존심 상해 "나중에 내가 사인을 해주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고등학교 야구부에서 활약하던 야구 선수 최동원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학생에게 사인을 받는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던 공지영은 최동원에게 "나중에 내가 사인을 해주겠다"라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980
공지영은 학창 시절 가장 큰 일탈로 "언니 코트를 입고 대학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다가 커피숍을 가서 커피 마시다가 집에 온 게 가장 큰 일탈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 커피숍에 가면 정학이었기 때문입니다.
1981
[대학교 입학 및 민주화 운동 참여]
1981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아버지와 이념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1981학번으로 연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독재 정권에 맞선 민주화 열기가 가득했던 시대에 대학 생활을 했습니다. 성당에서 가톨릭 포콜라레 운동에 참가하며 빈민촌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을 키웠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아버지와 이념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1984
[시인 데뷔 및 문학 활동 시작]
1984년 시인으로 문단에 등장하고, 이후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상근 간사로 활동하며 문인들과 교류했습니다.
1984년 공지영은 시인으로 등장했습니다. 대학교 졸업 후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 상근 간사로 취직했습니다. 당시 <자실>을 드나들었던 문인들은 공지영을 담배 많이 피우고 늘 인상 찌푸렸던 삐딱한 시인으로 기억했습니다.
1985
공지영은 운동권 학생으로 활동하면서 연애를 하였고 첫사랑과 첫 번째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 결혼에 대해 공지영의 아버지는 반대했으나 공지영은 "아버지와 같은 부르주아가 좋아하는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이 결혼을 강행했습니다.
1987
[부정 개표 반대 시위 참여와 구치소 수감]
1987년 대선 부정 개표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일주일간 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1987년 대선 당시 구로구청 부정 개표 반대 시위에 갔다가 시위를 진압하러 온 경찰에 붙잡혀 1주일간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그녀의 등단작 《동트는 새벽》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1988
[소설가 등단 및 첫 아이 출산]
구치소 경험을 토대로 쓴 단편 《동트는 새벽》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했고, 같은 해 첫 딸을 낳았습니다.
1987년 부정 개표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치소에 수감되었던 경험을 토대로 쓴 《동트는 새벽》을 1988년 내놓아 《창작과 비평》에 실리며 소설가로 등단했습니다. 같은 해 딸도 낳았습니다. 결혼 후 딸을 키우며 교외의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시간이 없어 새벽에 글을 쓰면서 딸이 깰까봐 스탠드에 수건을 덮어놓고 쓰기도 했습니다. 이 때가 장편소설 《더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쓰던 때였습니다.
1989
1989년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출간했습니다.
1991
[첫 번째 이혼과 장편소설 출간]
첫 번째 남편 위기철과 이혼했으며, 이 시기에 장편소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1-2》를 출간했습니다.
1991년 위기철 작가와 이혼했습니다. 이혼 후 쓴 첫 작품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는데, 작품보다 이혼 소식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같은 해 장편소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1-2》를 출간했습니다.
1993
[베스트셀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출간 및 두 번째 결혼]
여성 문제에 대한 통찰을 담은 장편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출간해 80~90만 부 판매를 기록했습니다. 영화감독 오병철과 두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1993년 장편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출간했는데, 이 작품은 80~90만 부가 팔렸습니다. 여성들의 지지를 받아 페미니스트 대표로 인식되기도 했으나 본인은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같은 해 영화감독 오병철과 두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1994
['공지영 신드롬'과 베스트셀러 작가 등극]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 권이 동시에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르며 '공지영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1994년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 권이 동시에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르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고 '공지영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대중의 지지만을 얻기 위한 글을 쓴다", "얼굴로 책을 판다"는 등의 혹평과 동료들의 비판으로 충격을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미미의 일기》, 《인간에 대한 예의》, 《고등어》를 출간했습니다.
1995
1995년 영화감독 오병철과 이혼했습니다.
1996
1996년 《상처없는 영혼》을 출간했습니다.
1997
[장편소설 《착한 여자 1-2》 출간 및 세 번째 결혼]
장편소설 《착한 여자 1-2》를 출간했으며, 교수 이해영과 세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1997년 장편소설 《착한 여자 1-2》를 출간했습니다. 같은 해 교수 이해영과 세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1998
1998년 자전적 성장 소설 《봉순이 언니》를 출간했는데, 이 작품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을 끝으로 7년간 공백기를 가졌습니다.
1999
1999년 창작집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를 출간했습니다.
2001
[문학상 수상 및 작품 활동]
21세기 문학상과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작가 공지영과 다시 만난 어린왕자》,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출간했습니다.
2001년 21세기 문학상과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같은 해 《작가 공지영과 다시 만난 어린왕자》와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출간했습니다.
2003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집필을 위한 사형수 만남 시작]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집필을 준비하며 사형수들과 만남을 시작했으며, 이 만남은 13년간 이어졌습니다.
2003년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집필을 준비하며 사형수들과 만남을 시작했습니다. 이 만남은 13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2004
[오영수 문학상 수상 및 세 번째 이혼]
오영수 문학상을 수상하고 세 번째 남편 이해영과 이혼했습니다. 이후 처음으로 저축을 시작했다고 밝혔으며, 《별들의 들판》을 출간했습니다.
2004년 오영수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세 번째 남편 이해영과 이혼했습니다. 세 번째 이혼 후 처음으로 저축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해 《별들의 들판》을 출간했습니다.
2005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출간]
7년 공백 끝에 사형제 존폐 문제를 다룬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4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도 출간했습니다.
7년간의 공백 끝에 복귀하여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출간했습니다. 이 소설은 사형수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자신과 살고 싶어도 죽어야 하는 사형수를 작품에 투영한 것이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어 4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이 작품을 쓰면서 5개월간 사형수들과 시간을 보내며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같은 해 《사랑 후에 오는 것들》도 출간했습니다.
2006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수상 및 방송 진행]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CBS 《아주 특별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를 출간했습니다.
2006년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CBS 《아주 특별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를 출간했습니다.
2007
[한국 가톨릭문학상 수상 및 《즐거운 나의 집》 출간]
한국 가톨릭문학상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했으며, 자신의 가족을 모델로 사생활을 당당히 공개한 《즐거운 나의 집》을 출간했습니다.
2007년 한국 가톨릭문학상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자신의 경험담을 모티브로 삼아 가족을 모델로 한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집필하고 자신의 사생활도 일부 반영하여 당당하게 공개했습니다. 이는 젊은 여성들에게 지지를 받아 '닮고 싶은 여성 4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책로역정(冊路歷程)》도 출간했습니다.
2008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등 출간]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와 《괜찮다, 다 괜찮다》를 출간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08년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와 《괜찮다, 다 괜찮다》를 출간했습니다.
2009
[실화 바탕 소설 《도가니》 출간]
실화를 바탕으로 장애인 학교의 비리를 다룬 소설 《도가니》를 출간하여 큰 주목을 받았고, 2011년 영화로 제작되어 4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도 출간했습니다.
2009년 실화를 바탕으로 장애인 학교의 비리를 다룬 장편소설 《도가니》를 출간하여 많은 주목을 받았고, 2011년 영화로 제작되어 약 400만 명의 관객이 들었습니다. 같은 해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도 출간했습니다.
2010
2010년 《공지영의 지리산행복학교》와 《사랑후에 오는것들》을 출간했습니다.
2011
[제35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맨발로 글목을 돌다》로 제35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았습니다.
2011년 1월 7일,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공지영이 《맨발로 글목을 돌다》에서 이루어낸 소설적 성과를 높이 평가하여 이 작품을 2011년도 제35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공지영이 5년 만에 내놓은 단편 소설로 월간 '문학사상' 2010년 12월호를 통해 발표됐습니다. 북한 납치범, 위안부 경험자, 아우슈비츠 수용자 등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이 역사적 폭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MBC 스페셜 <지리산에서 행복을 배우다> 내레이션]
MBC 스페셜 <지리산에서 행복을 배우다> 내레이션에 참여했습니다.
2011년 3월 4일, MBC 스페셜 <지리산에서 행복을 배우다>의 내레이션에 참여했습니다.
['아이 셋, 이혼 셋' 사생활 공개 논란과 대중의 반응]
유력 일간지 인터뷰에서 "성이 다른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고 고백한 내용이 1면에 '아이 셋, 이혼 셋'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어 화제가 되었으나, 대중은 아픔을 뚫고 나온 것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베스트셀러가 된 후 유력 일간지에 인터뷰가 실리게 됐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기자가 "국장이 바뀌어서 특집을 하려는데 공지영 인터뷰를 하고 와라"는 지시를 받아 공지영은 자신을 알아봐준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인터뷰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성이 다른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며 고백했습니다. 다음날 신문 가판대에서 1면에 '아이 셋, 이혼 셋'이라는 제목으로 나간 것을 보며 놀랐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할까봐 걱정했지만 오히려 통쾌하다'는 생각도 가졌습니다. 아버지는 "네가 세 번 이혼하는 것은 싫지만, 네가 불행해지는 것은 더 싫다"라며 공지영을 걱정해줬고 많은 용기가 됐습니다. 소설가의 이미지가 중요했던 시기 공지영은 좌절했으나 "소설가 못하면 어떤가, 내 인생이 그것뿐은 아니다"라며 스스로 위안을 얻고 위대한 소설가보단 인생의 승리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사가 나간 후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하였으나 아픔을 뚫고 나온 것에 대해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냈고 수많은 안티들도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솔직하게 알려줬습니다.
[종합편성채널 개국 반대 발언 논란]
종합편성채널 개국에 반대하며 인순이, 김연아 등 종편 출연 연예인을 비판하는 트윗을 남겨 논란이 되었습니다.
2011년 12월 1일, JTBC, TV조선, 채널A, MBN 등 종합편성채널 4개사가 방송을 시작하자 공지영은 트위터를 통해 종편 개국에 대한 반감을 표현했습니다. "인순이님 개념 없는 거죠 머", "연아, 아줌마가 너 참 예뻐했는데 네가 성년이니 네 의견을 표현하는 게 맞다, 연아 근데 안녕" 등의 멘션을 남겨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과거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에 소설을 연재한 적이 있다는 지적에 "나 욕참고 말할게 비슷 알바 다 꺼져라 응? 노무현 때였다"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자신의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슬프다는 심경을 밝혔습니다.
[인터파크 '2011 최고의 작가' 선정]
인터파크 주최 《제6회 2011 최고의 책》 시상식에서 득표율 39.7%로 '2011 최고의 작가' 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
2011년 12월 22일, 인터파크가 주최한 《제6회 2011 최고의 책》 시상식에서 공지영은 득표율 39.7%를 기록해 '2011 최고의 작가' 부문에 선정됐습니다.
2012
[르포르타주 《의자놀이》 출간 및 표절 논란]
르포르타주 신간 《의자놀이》를 출간했으나, 타 작가의 글 인용 문제로 편집 후 재출간을 결정하며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책은 재능 기부 프로젝트로 3억 7천여만원을 기부했습니다.
2012년 공지영의 르포르타주 신간 《의자놀이》에서 시민운동가 하종강 교수의 글을 인용하였는데, 해당 부분이 르포작가 이선옥의 글을 인용한 부분으로 알려짐에 따라 편집 후 새로 찍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찍어놓은 책을 회수 후 폐기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공지영이 트위터에서 하종강 교수를 비난한 문제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논란과 별개로, 공지영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시민, 출판사 휴머니스트가 재능 기부 프로젝트로 출판한 《의자놀이》의 총 기부액은 2014년 2월 현재 3억 7천여만 원입니다.
2013
2013년 《높고 푸른 사다리》를 출간했습니다.
2014
2014년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를 출간했습니다.
2015
[교정위원 재위촉 탈락 논란 및 한국 가톨릭 매스컴상 수상]
법무부 교정위원 재위촉에서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탈락하며 논란이 되었고, 본인은 '사상검열'이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제25회 한국 가톨릭 매스컴상 출판부문을 수상했으며,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출간했습니다.
2015년 봄에 이어 가을에도 법무부 교정위원 재위촉에서 탈락하였습니다. 공지영이 속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를 통해 최종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공지영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재위촉되지 못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고,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하여 “죽이려고 번호(를) 매겨 놓은 사람들(사형수들에게) 내 정치성향이 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일까?”라며 분통을 터뜨리며, 봉사활동을 하는 데에도 “본래 제게 있지도 않은 ‘사상검열’을 당하는 기분”이라고 토로하였습니다. 같은 해 제25회 한국 가톨릭 매스컴상 출판부문('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을 수상했습니다.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출간했습니다.
2016
2016년 《시인의 밥상》을 출간했습니다.
2017
2017년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출간했습니다.
2018
2018년 《해리 1,2》를 출간했습니다.
[서울 구치소 교정위원 재위촉]
황교안 법무장관 재직 시절 박탈당했던 서울 구치소 교정위원증을 재발급 받으며 "정권이 바뀜을 이제사 실감한다"고 밝혔습니다.
2018년 4월 1일 서울 구치소 교정위원에 다시 위촉되는 위촉장을 받았다고 8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밝혔습니다. "황교안이 법무장관 재직 시절 빼앗겼던 교정위원증 재발급 받았다"며 "정권이 바뀜을 이제사 실감한다"고 적었습니다.
2020
2020년 《먼 바다》를 출간했습니다.
김부선과의 논란 이후 트위터 계정을 폐쇄하고 활동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해당 계정은 이후 다른 사람이 새로 등록하여 사용 중이며, 공지영을 사칭하는 듯한 트윗도 간혹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