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공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공손공은 중국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 요동 지역의 군벌로, 공손탁(공손도)의 차남이자 공손강의 동생입니다. 형이 죽은 뒤 조카들이 어려 요동 태수직을 승계했고, 위나라로부터 거기장군과 평곽후에 봉해지며 요동의 지배권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음소(陰消)'라는 질병으로 병약해진 틈을 타, 228년 성인이 된 조카 공손연에게 협박당해 강제로 태수 자리에서 물러나 감옥에 갇히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238년 위나라의 사마의가 공손연을 토벌하고 요동을 평정했을 때 비로소 석방되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요동 공손씨 정권의 흥망성쇠와 권력 투쟁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연표
204
[영녕향후(永寧鄉侯) 봉작]
아버지 공손탁(공손도)이 사망하고 형 공손강이 요동 태수직을 승계했습니다. 이때 공손공은 영녕향후(永寧鄉侯)에 봉해졌습니다.공손탁이 다져놓은 요동의 기반 위에서 형인 공손강이 뒤를 이었습니다. 공손공은 공손강의 동생으로서 영녕향후라는 작위를 받으며 요동 지배층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209
[요동 태수직 승계]
형 공손강이 사망했을 때, 그의 아들인 공손황과 공손연이 너무 어렸습니다. 이에 공손공이 요동 태수의 지위를 이어받아 요동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공손강은 죽으면서 자신의 아들들이 아직 요동을 통치하기에 어리다고 판단하여 동생인 공손공에게 후사를 맡겼습니다. 이로써 공손공은 요동의 3대 군주가 되었습니다.
221
221.3
[거기장군 임명 및 평곽후 봉작]
위나라 문제(조비)로부터 거기장군(車騎將軍), 가절(假節)의 직위를 수여받았습니다. 또한 기존의 영녕향후에서 평곽후(平郭侯)로 작위가 승격되었습니다.조비는 황제에 오른 뒤 요동의 공손공을 회유하고 지배권을 인정하기 위해 높은 관직을 내렸습니다. 이는 공손공 정권이 위나라의 제후로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사건이었습니다.
223
[음소(陰消) 발병 및 건강 악화]
공손공은 '음소(陰消)'라는 병을 앓아 성기능을 상실하고 신체가 쇠약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통치 능력이 약화되었습니다.역사서에는 그가 소갈증(당뇨병)의 일종이나 생식기 관련 질환인 음소를 앓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으로 인해 그는 자식을 낳을 수 없었고, 점차 정무를 돌보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228
[공손연의 찬탈 및 강제 퇴위]
성인이 된 조카 공손연이 무력을 앞세워 공손공을 위협했습니다. 결국 공손공은 요동 태수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형 공손강의 아들인 공손연은 야심이 크고 무예가 뛰어났습니다. 그는 삼촌인 공손공이 병약한 틈을 타 군사력을 장악하고, 협박을 통해 태수 자리를 빼앗았습니다.
[유폐 생활의 시작]
공손연에게 태수직을 빼앗긴 후, 공손공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후 약 10년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비참한 유폐 생활을 이어갔습니다.공손연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삼촌을 죽이지는 않았으나 철저히 감시하고 가두었습니다. 공손공은 병든 몸을 이끌고 차가운 감옥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238
238.8
[사마의의 요동 평정 및 석방]
위나라의 사마의가 군사를 이끌고 와 공손연을 토벌하고 요동을 평정했습니다. 이때 사마의는 감옥에 갇혀 있던 공손공을 발견하고 그를 석방해주었습니다.공손연이 위나라에 반기를 들자 사마의가 토벌군을 이끌고 와 공손연을 처형했습니다. 사마의는 요동성을 점령한 뒤 옥에 갇혀 있던 공손공을 풀어주고, 그를 위로하며 평곽후의 작위를 다시 잇게 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