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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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
다국적 투자은행, 금융 서비스 회사, 자산 운용사 + 카테고리
1869년 마르쿠스 골드만이 뉴욕 로어맨해튼의 작은 지하실에서 상업어음 중개업으로 창립한 골드만삭스는 오늘날 전 세계 금융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최고의 다국적 투자은행으로 성장했습니다. 초창기 시어스와 포드, 마이크로소프트 등 역사적인 기업공개(IPO)를 주도하며 월스트리트의 판도를 바꿨고, 대공황의 위기와 펜센트럴 파산 사태 등 숱한 파고를 넘기며 사업 영역을 다각화했습니다. 1999년의 성공적인 기업공개 이후 대규모 인수합병과 첨단 전자 거래 도입 등을 통해 거대한 금융 제국을 구축했습니다. 비록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말레이시아 1MDB 스캔들 등으로 도덕적 비판과 막대한 벌금을 물기도 했으나,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시장 장악력을 바탕으로 여전히 세계 경제에서 가장 강력하고 핵심적인 금융 기관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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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

[골드만삭스 창립]

마르쿠스 골드만이 뉴욕 로어맨해튼의 석탄 창고 옆 좁은 지하실에서 어음 중개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훗날 거대한 금융 제국으로 성장할 회사의 첫걸음이었습니다.
독일계 이민자였던 마르쿠스 골드만은 영세한 상인들과 은행 사이에서 상업어음을 중개하며 자본을 축적했습니다. 당시 뉴욕의 치열한 금융 시장에서 신용과 신뢰를 바탕으로 점차 사업의 규모와 명성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1882

[새뮤얼 삭스 합류]

마르쿠스 골드만의 사위인 새뮤얼 삭스가 동업자로 회사에 정식 합류했습니다. 이를 통해 가족 경영의 형태를 띠며 회사의 지배구조가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새뮤얼 삭스의 합류는 훗날 골드만삭스의 핵심 기업 문화가 되는 파트너십 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협력은 회사가 단순한 어음 중개를 넘어 더 큰 금융 비즈니스로 진출하는 튼튼한 발판을 제공했습니다.

1885

[사명 변경 (Goldman Sachs & Co.)]

마르쿠스의 아들인 헨리 골드만과 또 다른 사위 루트비히 드레퓌스가 회사에 합류했습니다. 이 시점에 맞춰 회사의 이름을 현재의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 Co.)'로 공식 변경했습니다.
새로운 파트너들의 합류로 기업의 자본력과 영업력이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이들은 기업가들을 위한 상업어음 사용을 선구적으로 개척하며 19세기 말 미국 금융 시장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1896

[뉴욕증권거래소 가입]

골드만삭스가 미국 금융의 심장부인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주식 거래 및 브로커리지 시장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뉴욕증권거래소 가입은 골드만삭스가 단순한 어음 중개상을 넘어 주류 증권사로 도약했음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2년 후인 1898년경 회사의 자본금은 160만 달러 규모로 급성장했습니다.

1900

[지사 확장 (보스턴, 시카고)]

뉴욕을 넘어 보스턴과 시카고에 새로운 지사를 연달아 개설하며 전국적인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의 영향력이 미국 주요 경제 거점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당시 급격히 팽창하던 미국의 산업화에 발맞춰 주요 상업 도시로 거점을 확장한 전략적인 행보였습니다. 이후 1918년 샌프란시스코, 1920년 필라델피아와 세인트루이스 등으로 지사 설립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1906

[시어스 로벅 기업공개(IPO) 주도]

미국의 거대 유통업체인 시어스 로벅(Sears, Roebuck and Company)의 기업공개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IPO 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장부 가치 대신 주가수익비율(PER)을 기반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혁신적인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이 거래는 헨리 골드만과 시어스의 소유주 줄리어스 로젠월드 간의 개인적인 친분을 바탕으로 성사되었습니다. 이 성공적인 IPO를 계기로 실물 자산이 부족한 소매 유통 기업들도 거액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1912

[최초의 비가족 파트너 영입]

창업주 일가 출신이 아닌 헨리 S. 바워스가 회사의 이익을 공유하는 정식 파트너로 승진했습니다. 혈연 중심의 폐쇄적인 경영에서 벗어나 실력 위주의 개방적 파트너십으로 진화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이 결정은 골드만삭스가 우수한 외부 인재들을 끌어들여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근대적인 투자은행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회사의 수익과 성장을 공유하는 체계가 확립되었습니다.

1917

[헨리 골드만의 사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친독일 성향을 강하게 보였던 헨리 골드만이 다른 파트너들의 거센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회사에서 사임했습니다.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는 상황에서 그의 친독일적 발언과 태도는 고객과 동료들에게 큰 반감을 샀습니다. 그의 사임으로 인해 골드만 일가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삭스 가문이 회사의 완전한 통제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1918

[워딜 캐칭스의 합류]

뛰어난 투자 감각을 지닌 워딜 캐칭스가 새로운 파트너로 골드만삭스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곧 회사 내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절대적인 실권자로 급부상했습니다.
캐칭스의 합류로 회사는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928년까지 단일 파트너로서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하며 회사의 전략적 방향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습니다.

1919

[머크(Merck) 지분 인수]

골드만삭스가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인 머크 앤 코(Merck & Co.)의 주요 지분을 대규모로 인수하며 제약 및 산업 분야 투자를 확대했습니다.
당시 전후 호황기 속에서 이뤄진 전략적인 투자 중 하나였습니다. 1922년에는 제너럴 푸즈의 주요 지분도 잇달아 인수하며 기업 사냥 및 대규모 지분 투자의 큰손으로 떠올랐습니다.

1928

[골드만삭스 트레이딩 법인 설립]

주식 시장의 끝없는 호황 속에서 대규모 자본을 굴리기 위해 폐쇄형 펀드인 '골드만삭스 트레이딩 법인(Goldman Sachs Trading Corp.)'을 전격적으로 출범시켰습니다.
출범 당시 큰 기대를 모았으나, 이듬해 터진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으로 인해 펀드는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가 조작과 내부자 거래를 했다는 거센 비난과 소송에 직면하며 회사의 명성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습니다.

1930

[시드니 와인버그 수석 파트너 취임]

대공황의 끔찍한 타격 속에서 책임을 물어 워딜 캐칭스를 축출하고, 시드니 와인버그가 회사의 새로운 수석 파트너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트레이딩에서 투자은행(IB) 업무로 회사의 핵심 역량을 대대적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와인버그는 무너진 골드만삭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리스크 아비트라지(위험 차익거래) 기법의 초기 혁신을 이끄는 한편, 투자 연구 부서와 지방채 부서를 신설하여 현대적 투자은행의 뼈대를 굳건히 다졌습니다.

1956

[포드 모터 컴퍼니 IPO 주관]

단일 기업공개로는 당시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6억 5,700만 달러 규모의 포드 모터 컴퍼니 IPO를 수석 자문사로서 완벽하게 주도했습니다.
이 거대한 거래의 성공은 시드니 와인버그 리더십의 최대 승리로 평가받으며, 월스트리트에서 골드만삭스가 최상위권 투자은행으로 완전히 부활했음을 알리는 강력한 선언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 투자은행 전담 부서도 공식적으로 분리 신설되었습니다.

1957

[20 브로드 스트리트로 본사 이전]

회사의 덩치가 커지고 비즈니스가 팽창함에 따라 뉴욕 20 브로드 스트리트로 글로벌 본사를 이전했습니다. 새로운 터전에서 월스트리트의 핵심 플레이어로서의 위상을 굳혔습니다.
이 시기에는 투자은행 부문의 와인버그와 증권 트레이딩 부문을 개척한 거스 레비 사이의 건강한 사내 권력 경쟁이 회사의 성장을 더욱 날카롭게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1969

[거스 레비 수석 파트너 취임]

전설적인 리더 시드니 와인버그가 사망한 후, 대량 주식 거래(블록 트레이딩)의 선구자인 거스 레비가 수석 파트너직을 승계하여 트레이딩 제국을 재건했습니다.
레비는 "장기적인 탐욕(long-term greedy)"이라는 유명한 철학을 회사에 심었습니다. 이는 단기적인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와 장기적 수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의미로, 파트너들이 수입의 대부분을 회사에 재투자하는 굳건한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1970

[펜센트럴 파산 사태]

미국의 거대 철도 기업인 펜센트럴 운송회사가 파산하면서, 골드만삭스를 통해 발행된 8천만 달러 이상의 상업어음이 휴지조각이 되는 끔찍한 금융 위기에 처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비롯한 수많은 소송에 휘말리며 회사의 자본금과 평판, 그리고 생존 자체가 심각하게 위협받았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오늘날 모든 상업어음 발행사에 대한 신용평가 서비스가 의무적으로 도입되는 역사적 결과를 낳았습니다.

[런던 지사 설립]

수석 파트너 스탠리 R. 밀러의 지휘 아래 유럽 금융의 중심지인 런던에 회사 역사상 최초의 해외 국제 지사를 공식적으로 개설했습니다.
미국 내 비즈니스에 머물던 골드만삭스가 본격적으로 글로벌 자본 시장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이후 1972년에는 개인 자산 관리(PWM) 부서와 채권 부서를 신설하며 글로벌 금융 서비스의 틀을 갖췄습니다.

1974

[백기사 전략 최초 도입]

일렉트릭 스토리지 배터리(ESB) 회사를 인코(Inco)와 경쟁사 모건스탠리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로부터 방어하는 과정에서 월스트리트 최초로 '백기사(White Knight)' 방어 전략을 고안해 냈습니다.
적대적 M&A 방어 분야에서 골드만삭스의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자문 능력을 널리 입증한 사례였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M&A 자문 시장에서 골드만삭스는 가장 신뢰받고 혁신적인 파트너로 급부상했습니다.

1976

[공동 수석 파트너 체제 출범]

시드니 와인버그의 아들인 존 와인버그와 존 C. 화이트헤드가 공동 수석 파트너로 취임하며, 두 명의 리더가 이끄는 독특한 공동 지도 체제를 부활시켰습니다.
두 사람은 취임 직후 회사의 직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엄격한 '14가지 비즈니스 원칙'을 확립하여 제정했습니다. 이 원칙들은 오늘날까지도 골드만삭스 기업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헌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1981

[J. 에런 앤 컴퍼니 인수]

커피와 금 등 원자재 시장의 거물급 트레이딩 회사인 'J. 에런 앤 컴퍼니(J. Aron & Company)'를 전격 인수하여 기존 채권 부서와 통합, FICC(채권, 통화, 원자재) 부문으로 재편했습니다.
이 인수는 골드만삭스가 원자재 트레이딩 시장의 압도적 강자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합병을 통해 입사한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훗날 회사의 최전성기를 이끄는 CEO 로이드 블랭크페인이었습니다.

1983

[85 브로드 스트리트로 본사 이전]

뉴욕에 새롭게 건설된 85 브로드 스트리트의 최신식 빌딩으로 글로벌 본사를 웅장하게 이전했습니다.
이 건물은 2009년 현재의 최첨단 본사로 이전하기 전까지 무려 20년 넘게 세계 금융을 호령하는 골드만삭스의 심장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1980년대 금융 붐과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력을 수용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1986

[마이크로소프트 IPO 주관 및 GSAM 설립]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주관하는 동시에, 대부분의 뮤추얼 펀드와 헤지펀드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골드만삭스 자산운용(GSAM)'을 설립했습니다.
이 해에 골드만은 런던과 도쿄 증권거래소에도 가입하며 글로벌 M&A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RCA를 인수한 제너럴 일렉트릭(GE)에 재무 자문을 제공하며 기술 및 산업계 거물들의 핵심 파트너로 군림했습니다.

1988

[인도국립은행 상업어음 발행 자문]

신흥 시장 개척의 일환으로 인도국립은행(State Bank of India)이 국제 신용평가 등급을 획득하고 미국 상업어음 시장에서 2억 달러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핵심적인 자문을 제공했습니다.
소련의 해체 조짐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민영화의 흐름 속에서, 신흥국 금융 기관들의 자본 시장 진출을 돕는 글로벌 투자은행으로서의 압도적인 능력을 과시한 사건이었습니다.

1990

[루빈-프리드먼 체제와 전자 거래 도입]

로버트 루빈과 스티븐 프리드먼이 새로운 공동 수석 파트너로 취임했으며, 이들의 주도 아래 뉴욕증권거래소에 종이가 필요 없는 최첨단 전자 거래 시스템(paperless trading)을 전격 도입했습니다.
이들은 M&A와 트레이딩 사업 부문을 한층 강화하고 회사의 철저한 세계화(globalization)를 선언했습니다. 로버트 루빈은 이후 1992년 빌 클린턴 행정부의 핵심 경제 관료로 일하기 위해 회사를 떠났습니다.

1994

[GSCI 출시 및 베이징 지사 개설]

원자재 시장의 글로벌 지표가 되는 '골드만삭스 원자재 지수(GSCI)'를 전격 출시했으며, 중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베이징에 최초의 공식 사무소를 개설했습니다.
이 해에는 스티븐 프리드먼의 은퇴로 존 코자인이 새로운 CEO로 취임했습니다. 중국 사무소 개설은 빠르게 팽창하는 아시아 시장의 자본을 선점하기 위한 매우 공격적이고 선제적인 포석이었습니다.

[멕시코 증권거래소 진출]

멕시코 볼사(Bolsa) 증권거래소가 외국계 금융사로는 이례적으로 골드만삭스와 또 다른 한 개 회사의 시장 진입과 영업을 공식적으로 허가했습니다.
그러나 1994년 말 터진 멕시코 페소화 폭락 사태(테킬라 위기)로 인해 골드만삭스가 대거 보유하고 있던 멕시코 채권의 가치가 증발할 뻔한 끔찍한 위기를 간신히 넘기기도 했습니다.

1996

[야후(Yahoo!) IPO 주관]

당시 초기 인터넷 열풍을 이끌던 닷컴 기업 야후의 기업공개(IPO)를 수석 주관사로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기술주 및 인터넷 기업들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막강한 자금 조달 능력을 입증하며, 이후 실리콘밸리 벤처기업들이 상장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최우선 파트너로 굳건히 자리 잡았습니다.

1998

[NTT 도코모 IPO 주관]

일본 통신 거인인 NTT 도코모의 2조 엔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기업공개를 공동 주관사 자격으로 화려하게 이끌었습니다.
아시아 금융 시장에서 골드만삭스의 압도적인 딜 메이킹 역량과 거대 자본 동원력을 재차 확인시켜 준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1999

[헐 트레이딩 컴퍼니 인수]

전자 거래 시장으로의 전환을 서두르기 위해 파생상품 거래 전문업체인 헐 트레이딩 컴퍼니(Hull Trading Company)를 5억 3,100만 달러에 전격 인수했습니다.
이 인수를 통해 골드만삭스는 전통적인 객장 거래를 넘어 컴퓨터 기반의 고속 전자 트레이딩 기술을 확보하며 다가오는 디지털 금융 시대에 대비한 막강한 인프라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골드만삭스 기업공개 (IPO)]

수십 년간 이어진 파트너들 간의 격렬한 내부 논쟁 끝에, 마침내 주당 53달러의 가격으로 주식을 상장하며 폐쇄적인 파트너십 회사에서 공개 기업으로 역사적인 전환을 이뤘습니다.
전체 지분의 12.6%만을 일반 대중에게 공개 매각했으며, 나머지는 전·현직 파트너와 직원, 그리고 스미토모 은행 등 장기 투자자들이 나눠 가졌습니다. 성공적인 상장 직후 존 코자인의 뒤를 이어 헨리 폴슨이 새로운 회장 겸 CEO로 취임했습니다.

2000

[세계은행 최초의 인터넷 채권 주관]

경쟁사인 리먼 브라더스와 함께 세계은행(World Bank) 역사상 최초로 발행된 인터넷 기반 채권 공모의 수석 간사로 활약했습니다.
전통적인 채권 인수 방식을 뛰어넘어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대규모 채권 유통을 성공시킴으로써 금융 시장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는 선구자로서의 명성을 재확인했습니다.

[스피어, 리즈 & 켈로그 인수]

뉴욕증권거래소의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스페셜리스트(시장조성자) 회사 중 하나였던 '스피어, 리즈 앤 켈로그(Spear, Leeds, & Kellogg)'를 무려 63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이 막대한 규모의 인수는 상장 이후 확보한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주식 매매 및 시장 조성 부문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한 매우 공격적인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2003

[아코 컴퍼니(The Ayco Company) 인수]

고액 자산가들과 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수수료 기반의 전문적인 재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코 컴퍼니(The Ayco Company L.P.)'를 전격 인수했습니다.
프라이빗 뱅킹 및 자산 관리(Wealth Management) 비즈니스 라인을 한층 정교하게 다듬고, 고소득 고객층을 상대로 한 맞춤형 금융 서비스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확고한 조치였습니다.

['브릭스(BRICs)' 개념 최초 제시]

수석 경제학자 짐 오닐이 이끄는 골드만삭스 리서치팀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지칭하는 '브릭스(BRICs)'라는 개념을 창안한 경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향후 2050년까지 이들 신흥 국가들이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 것이라는 대담한 예측을 담았습니다. 이후 '브릭스'는 글로벌 투자 자본의 흐름을 신흥 시장으로 돌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설적인 경제 용어가 되었습니다.

2006

[로이드 블랭크페인 CEO 취임]

헨리 폴슨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미국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어 회사를 떠나면서, 트레이딩 부문 출신의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전격 승진했습니다.
그의 취임 직후 2008년의 끔찍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쳐왔으나, 블랭크페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붕괴를 예견하고 대규모 공매도를 지시하는 등 회사가 최악의 타격을 피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08

[TARP 구제금융 100억 달러 수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골드만삭스 역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미 재무부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으로부터 100억 달러의 긴급 구제금융을 지원받았습니다.
비록 위기 초반 하락장에 베팅하여 40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차익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 붕괴의 여파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지원받은 구제금융 자금은 이듬해인 2009년 6월 이자와 함께 전액 상환되었습니다.

2011

[글로벌 알파 펀드 폐쇄]

한때 120억 달러 규모로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산하에서 가장 훌륭한 실적을 내던 초대형 퀀트 헤지펀드인 '글로벌 알파 펀드(Global Alpha Fund LP)'의 전격적인 폐쇄를 발표했습니다.
이 펀드는 고빈도 매매와 통계적 알고리즘을 활용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으나, 금융 위기 이후 막대한 손실을 입으며 운용 자산이 10억 달러 선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변화된 규제 환경과 알고리즘 트레이딩의 한계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2013

[애플(Apple Inc.) 170억 달러 채권 발행 주관]

도이치은행과 함께 기술 거인 애플(Apple Inc.)이 진행한 17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채권 공모를 수석으로 주관하여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켰습니다.
이는 당시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기업 채권 발행 거래였으며, 애플이 1996년 이후 처음으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 뜻깊은 딜이었습니다. 글로벌 우량 기업들의 자금줄 역할을 확실히 수행하는 골드만삭스의 저력을 재입증했습니다.

2017

[베네수엘라 중앙은행 채권 매입 논란]

극심한 반정부 시위와 인권 침해가 벌어지던 베네수엘라의 중앙은행으로부터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PDVSA)의 2022년 만기 채권을 28억 달러어치나 대거 매입했습니다.
시장 가격보다 크게 할인된 가격으로 이뤄진 이 거래는 곧바로 니콜라스 마두로 독재 정권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엄청난 국제적 비난과 인권 단체들의 맹렬한 분노를 촉발시키며 도덕성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2020

[말레이시아 1MDB 스캔들 대규모 벌금 합의]

말레이시아 국부펀드인 1MDB의 수조 원대 부패 및 자금 세탁 스캔들에 핵심적으로 연루된 혐의로, 말레이시아 정부와 39억 달러 규모의 징벌적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골드만삭스의 은행가들이 부패한 고위 관료들에게 막대한 뇌물이 흘러가도록 방조하고 부당한 자문 수수료를 챙긴 이 사건은 회사 역사상 최악의 오점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같은 해 10월에는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의 기소에 대해서도 29억 달러 이상의 천문학적인 벌금을 추가로 내기로 합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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