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연표
1994
한국프로농구연맹에 창단서를 제출하며 팀 창단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고, 이는 현재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1995
1995년 3월, 모기업 동양제과의 대규모 지분 투자를 통해 '동양제과 농구단'이 공식적으로 창단되었으며, 이는 팀의 초기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1995년 10월, 농구단의 상징이 될 심볼을 '오리온스'로 최종 확정했습니다. 이는 팀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96
1996년 3월 27일, 대규모 창단식을 통해 '동양제과 농구단'이 남자 농구계에 정식으로 출사표를 던지며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창단 27일 만의 첫 우승]
창단 27일 만에 박카스배 코리안리그 1차 대회에서 상무와 동률을 이루었으나, 승자승 원칙에 따라 첫 우승을 차지하는 신화를 기록했습니다.
1996년 4월 23일, 창단한 지 불과 27일 만에 박카스배 코리안리그 1차 대회에서 상무 농구단과 동률을 기록했지만, 승자승 원칙에 힘입어 구단 역사상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신생팀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1996년, 제77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창단 초기부터 강력한 전력을 과시했습니다. 이는 팀이 프로 출범 전부터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6년 11월, 한국프로농구 출범을 앞두고 전국적인 농구 열기가 뜨거웠던 대구광역시를 팀의 연고지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지역 팬들과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프로팀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대구 동양 오리온스 프로농구단 출범]
독립법인 동양레포츠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동양제과 농구단'에서 '대구 동양 오리온스 프로농구단'으로 개칭하며 프로농구단으로 정식 출범했습니다.
1996년 12월 27일, 독립법인 동양레포츠 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동양제과 농구단'이 '대구 동양 오리온스 프로농구단'으로 팀명을 변경하고 프로리그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프로 시대의 막을 열었습니다.
1997
[프로 원년 4강 진출 실패]
프로 원년인 1997 시즌에 11승 10패로 4위를 기록하며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4강 플레이오프에서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에게 아쉽게 패배했습니다.
1997년 프로농구 원년 시즌, 11승 10패로 정규리그 4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준 플레이오프에서는 광주 나산 플라망스를 완파했으나, 4강 플레이오프에서 그해 챔피언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에게 패하며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98
[2년 연속 4강 진출]
1997-98 시즌에 23승 22패로 5위를 차지하고 준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여 2년 연속 4강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1997-98 시즌, 23승 22패로 정규리그 5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준 플레이오프에서 원주 나래 블루버드를 꺾고 2년 연속 4강에 진출하며 꾸준한 강팀의 면모를 유지했습니다.
[주축 선수 대거 입대]
1997-1998 시즌 종료 후 전희철, 김병철, 박재일 등 주축 국내 선수 6명이 모두 병역 문제로 대거 입대하면서 전력에 큰 공백이 생겼습니다.
1997-1998 시즌이 끝난 후, 팀의 핵심 선수인 전희철, 김병철, 박재일을 포함한 6명의 주전급 국내 선수들이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동시에 입대했습니다. 이는 팀 전력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며 다가올 암흑기의 서막이 되었습니다.
1999
1998-1999 시즌, 팀은 외국인 선수 이탈과 주축 선수들의 병역 입대로 인한 전력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3승 42패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암흑기를 맞이했습니다.
[역대 최다 32연패 중단]
KBL 신기록이자 NBA 기록까지 넘어서는 굴욕적인 32연패를 기록한 뒤, 마침내 나산 플라망스전에서 연패를 끊으며 길었던 패배의 사슬을 끊었습니다.
1999년 2월 28일, 팀은 KBL 역대 최다 연패 기록인 32연패에 빠지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팬들의 눈물 속에서 나산 플라망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마침내 이 길고 긴 연패의 사슬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이 연패는 팀의 긴 암흑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000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1999-2000 시즌, 복귀 선수들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외국인 선수의 이탈 등 악재가 겹치며 20승 25패로 8위를 기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1999-2000 시즌, 전희철의 복귀와 신인 조우현의 가세로 기대를 모았으나,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과 외국인 선수 무스타파 호프의 이탈 등 악재가 겹치며 20승 25패로 8위를 기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01
[또다시 꼴찌, 감독 교체]
2000-01 시즌 9승 36패로 다시 리그 꼴찌를 기록하며 최악의 부진을 겪었고, 시즌 중 최명룡 감독이 해임되고 김진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임명되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2000-01 시즌, 김병철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포인트가드 부재와 외국인 선수 교체 난조 등 여러 문제로 9승 36패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다시 한번 리그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이로 인해 시즌 중 최명룡 감독이 해임되고 김진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는 등 팀은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2001년 4월 1일, 지난 시즌 감독대행을 맡았던 김진 코치가 공식적으로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이는 팀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요한 인사 조치였습니다.
2002
[창단 첫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2001-02 시즌, 신인 드래프트 3순위 김승현과 1순위 용병 마커스 힉스의 센세이션한 활약으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 플레이오프 접전 끝에 감격적인 창단 첫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2001-02 시즌, '꼴찌의 반란'이라는 평가 속에 신인 김승현과 외국인 선수 마커스 힉스가 폭발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들의 활약과 김진 감독의 용병술, 양철 듀오(전희철-김병철)의 변신이 더해져 팀은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 플레이오프에서 접전 끝에 창단 첫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김승현 아시안게임 금메달]
핵심 가드 김승현 선수가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특례를 받아 팀의 전력 유지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팀의 핵심 가드 김승현 선수가 농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특례를 받았습니다. 이는 팀의 장기적인 전력 유지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3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과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
2002-03 시즌, 주축 선수들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김승현-마커스 힉스 콤비와 김병철의 활약으로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나, KBL 챔피언 결정전에서 '15초 실종사건' 등 오심 논란 끝에 원주 TG삼보 엑서스에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2002-03 시즌, 전희철과 페리맨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김승현과 마커스 힉스 콤비의 더욱 무르익은 플레이와 김병철, 박훈근 등의 활약으로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KBL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15초 실종사건'이라는 초유의 오심 논란 속에 원주 TG삼보 엑서스에게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팀은 재경기를 요청했으나 프로농구 발전을 위해 최종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팀명 '대구 오리온스'로 변경]
모기업 동양그룹이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으로 분리되면서, 팀은 오리온그룹 계열로 들어가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서 '대구 오리온스'로 팀명을 변경했습니다.
2003년 9월, 모기업인 동양그룹이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으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팀은 오리온그룹 소속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구 동양 오리온스'라는 팀명은 '대구 오리온스'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구단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4
[오심 논란 속 플레이오프 탈락]
2003-04 시즌 32승 22패로 3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6강 플레이오프에서 또다시 오심 논란에 휩싸이며 탈락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KBL은 외국인 심판제 재도입과 실린더룰 폐지를 결정했습니다.
2003-04 시즌, 팀은 32승 22패로 정규시즌 3위를 차지하며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LG와의 3차전에서 빅터 토마스의 아웃 오브 바운드 오심과 실린더룰 적용 논란으로 인해 4강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이 오심 파문은 KBL에 재경기 요청과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KBL은 외국인 심판제 재도입과 실린더룰 폐지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7
[KBL 최다 6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2004-05 시즌부터 2006-07 시즌까지 김진 감독, 김승현-김병철 체제로 KBL 최다인 6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기록을 달성하며 '빠른 농구'로 KBL 흥행 코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4-05 시즌부터 2006-07 시즌까지, 팀은 김진 감독과 김승현-김병철의 강력한 주축 선수들을 중심으로 KBL 역대 최다인 6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속공과 3점슛, 덩크슛을 내세운 '오리온스표 화려한 농구'는 많은 팬들을 열광시키며 KBL의 흥행을 이끌었습니다.
[김진 감독 이적]
팀의 6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던 김진 감독이 서울 SK 나이츠로 이적하며 팀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2007년 4월 30일, 팀을 6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며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진 감독이 서울 SK 나이츠로 이적했습니다. 이는 팀의 리더십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2007년 5월 14일, 대한민국 농구계의 전설적인 스타이자 창원 LG 세이커스의 감독을 역임했던 이충희를 새로운 감독으로 영입하며 팀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했습니다.
2007년 12월 26일, 2007-08 시즌 초반 팀의 에이스 김승현의 부상과 계속되는 성적 부진으로 인해 이충희 감독이 결국 사임을 결정했습니다. 이는 팀에 다시 한번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2008
[최하위 시즌 재현]
2007-08 시즌을 김상식 감독대행 체제로 12승 42패의 저조한 성적으로 마감하며 7년 만에 리그 최하위의 수모를 겪었습니다.
2007-08 시즌, 김승현의 부상과 감독 교체 등의 악재 속에서 김상식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치렀습니다. 결과는 12승 42패라는 참담한 성적으로, 7년 만에 다시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으며 긴 암흑기가 지속됨을 알렸습니다.
2009
[김상식 감독 사퇴]
2008-09 시즌에도 김승현의 시즌 아웃과 용병 영입 실패 등으로 부진이 계속되면서 김상식 감독이 결국 사퇴했습니다.
2008-09 시즌, 팀은 김승현의 시즌 아웃과 레지 오코사 용병 영입 실패 등 연이은 악재로 또다시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결국 김상식 감독이 2009년 3월 2일 사퇴하며 팀은 다시 무주공산이 되었습니다.
[김남기 감독, 김유택 코치 취임]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코치였던 김남기 감독과 김유택 코치가 새롭게 팀에 취임했습니다.
2009년 4월 22일, 김상식 감독 사퇴 후 공석이었던 감독직에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김남기가, 코치직에는 김유택이 취임하며 팀의 재건을 맡게 되었습니다.
2010
2010년, 팀의 주요 선수였던 김승현 선수가 이면계약 문제에 연루되어 KBL로부터 18경기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는 팀의 성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1
[부진 지속 및 감독·스타 선수 이탈]
2010-11 시즌에 10위를 기록하며 부진이 계속되었고, 프랜차이즈 스타 김병철이 은퇴했으며 김남기 감독도 팀을 떠났습니다.
2010-11 시즌, 팀은 여전히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리그 10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시즌을 끝으로 팀의 상징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병철 선수가 은퇴를 선언했으며, 김남기 감독 또한 팀을 떠나며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2011년 3월 28일, 김남기 감독의 후임으로 추일승 감독이 새로 취임하며 팀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이는 팀의 재건을 위한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대구에서 고양으로 연고지 이전 강행]
대구광역시와 협의 없이 경기도 고양시로의 연고지 이전을 강행했고, 이로 인해 대구 팬들의 거센 반발과 오리온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어졌습니다.
2011년 6월, 팀은 대구광역시와의 사전 협의 없이 경기도 고양시로의 연고지 이전을 강행했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결정은 대구 팬들의 큰 분노를 샀고, 오리온 제품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고양시 연고지 이전 확정 및 팀명 변경]
KBL 이사회에서 오리온스의 고양시 연고지 이전이 최종 확정 승인되었고, 팀명은 '고양 오리온스'로 공식 변경되었습니다.
2011년 6월 27일, KBL 이사회에서 오리온스의 경기도 고양시로의 연고지 이전이 최종적으로 확정 승인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팀명은 '고양 오리온스'로 공식 교체되었으며, 팀은 새로운 연고지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2
2011-12 시즌은 고양 오리온스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연고지에서 맞이한 첫 시즌이었습니다. 팀은 20승 34패를 기록하며 8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2013
[6강 플레이오프 진출, 4강 실패]
2012-13 시즌에 5위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안양 KGC인삼공사에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12-13 시즌, 팀은 레더 선수의 무단이탈 등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5위로 정규리그를 마감하며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안양 KGC인삼공사에 패하며 아쉽게 4강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2015
2015년, 프로-아마농구 최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팀의 경쟁력과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이는 다가올 시즌의 기대감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5년, 팀명을 '고양 오리온스'에서 모기업의 이름을 포함한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변경했습니다. 이는 구단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었습니다.
2016
[고양 연고지 첫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2015-2016 시즌, 전주 KCC 이지스를 꺾고 KBL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하며 고양 연고지로는 첫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2015-2016 시즌, 팀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전주 KCC 이지스를 물리치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고양시로 연고지를 이전한 후 처음으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린 역사적인 순간이자, 팀 역사상 두 번째 챔피언 결정전 우승이었습니다.
2020
2020년 KBL 컵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팀의 꾸준한 경쟁력을 보여주는 결과였습니다.
2022
[팀명 '고양 캐롯 점퍼스'로 변경]
팀명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 '고양 캐롯 점퍼스'로 변경하며 새로운 스폰서와 함께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2022년, 팀은 새로운 스폰서와 함께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 '고양 캐롯 점퍼스'로 팀명을 변경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2023
2023년, 팀명을 '고양 캐롯 점퍼스'에서 '고양 데이원 점퍼스'로 변경하며 구단 운영에 있어 또 다른 변화를 겪었습니다.
[팀명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로 변경]
'고양 데이원 점퍼스'에서 현재의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로 팀명을 변경하며 새로운 구단 시대를 열었습니다.
2023년, '고양 데이원 점퍼스'에서 현재의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로 팀명을 변경하며 구단 역사에 또 다른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이는 소노인터내셔널의 새로운 운영을 알리는 변화였습니다.
2024
2024년, 김태술 감독이 제10대 감독으로 취임하여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 팀의 새로운 시즌에 대한 기대가 모였습니다.
2025
2025년, 손창완 감독이 제11대 감독으로 취임하여 팀의 새로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팀의 미래가 기대되고 있습니다.
2025년 3월 6일, 서준혁이 소노인터내셔널의 소유주로서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구단의 주인이 되었음이 보도되었습니다. 이는 구단의 경영 주체에 중요한 변화를 알렸습니다.
2025년 9월 4일, 이기완이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의 단장으로 공식 부임했습니다. 그는 구단의 전반적인 운영과 선수단 관리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