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복수
연표
1911
고복수는 1911년 12월 29일 경상남도 울산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국수 공장을 운영하던 집에서 자랐으며, 유년시절부터 축음기에 매달려 노래를 부르며 가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1932
20대 초반의 나이에 콜럼비아레코드 주최 콩쿠르 부산대회에 입상하고 경성부에서 열린 본선에 진출해 3위를 차지한 것이 가수로 데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34
[데뷔곡 '타향' 발표 및 대성공]
오케레코드에서 데뷔곡 〈타향〉과 〈이원애곡〉을 발표하며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타향〉은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히트곡이 되었고, 같은 해 〈휘파람〉도 발표했다.
가요계 데뷔 후 1934년 오케레코드에서 〈타향〉과 〈이원애곡〉을 발표했다. 후에 〈타향살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타향〉은 일제 강점기 최고의 대중가요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크게 유행하며 고복수를 스타덤에 올렸다. 또한 같은 해 〈휘파람〉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1935
1935년에는 대표곡 〈사막의 한〉을 발표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이어갔다. 한숨을 쉬는 듯한 고복수 특유의 분위기 있는 가창은 〈사막의 한〉과 같은 한탄조 가사의 곡에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았다.
1936
['짝사랑' 발표 및 인기]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라는 가사로 유명한 히트곡 〈짝사랑〉을 발표하며 또 한 번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36년 말에 발표한 〈짝사랑〉은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명곡으로, 또다시 크게 히트하며 고복수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했다.
1937
1937년, 이은파와의 듀엣곡 신민요 〈풍년송〉을 발표하며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통해 변함없는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1940
오케레코드와 전속 공연단인 조선악극단에서 활동하던 고복수는 1940년부터 빅타레코드의 반도악극좌로 소속을 옮겨 새로운 활동 무대를 모색했다.
1941
빅타레코드 반도악극좌에서 활동하던 중 〈알뜰한 당신〉으로 큰 인기를 얻던 가수 황금심과 만나 1941년에 결혼했다. 두 사람은 한국 가요계의 대표적인 부부 가수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57
1957년 은퇴 공연을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물러났지만, 이후 손대는 사업마다 계속 실패하여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아내 황금심이 영화 주제곡을 부르며 생계를 연명하는 동안 고복수는 서적 외판원으로 일하기도 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1972
오랜 투병 끝에 뇌신경 고혈압과 식도염으로 1972년 2월 10일 사망했다. 향년 62세. 그는 인기 가수였지만 인생에 굴곡이 많았기에 불운의 가수로도 기억되지만, 한국 대중가요사에 길이 남을 명곡들을 남기며 후대에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