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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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도자기, 예술품, 공예, 문화유산 + 카테고리

- 고려청자는 송나라 기술을 기반으로 피어난 고려의 독창적인 예술입니다. - 초기 소박함에서 비색청자의 절정 그리고 세계 최초의 상감기법 개발로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했습니다. - 말기 몽골 침입으로 쇠퇴했지만 그 유산은 조선시대 분청사기로 이어지며 한국 도자 예술의 황금기를 대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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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900

[고려청자 생산 시작]

중국 오월의 월주요 제작 기술이 도입되며 고려에서도 청자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10세기 초경, 중국 오월(吳越)의 청자 제작 기술인 월주요(越州窯) 기법이 고려에 도입되면서 청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의 청자는 송나라에서 '비색(秘色)'이라 불리던 고급 도자기 기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950

[청자 생산지 확산]

경기도 시흥시, 황해남도 배천군 등지에서 청자가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10세기 후반에는 경기도 시흥시와 황해남도 배천군을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도 청자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 지역에서는 벽돌을 주재료로 만든 전축요를 사용하여 청자를 구웠습니다.

992

[순화 3년명 고배 제작]

순화 3년(992년)명 고배가 제작되었습니다.

10세기에 제작된 청자 유물 중 순화 3년(992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고배(高杯)가 발굴되어 당시의 청자 제작 양상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993

[순화 4년명 항아리 제작]

순화 4년(993년)명 항아리가 제작되었습니다.

10세기에 제작된 청자 유물 중 순화 4년(993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항아리(壺)가 발견되어 고려 초기 청자 기술의 발전 단계를 보여줍니다.

1000

[강진 청자 가마 집중]

11세기 고려의 국력 증대와 함께 청자 소성 가마가 전남 강진에 집중되며 관요적 성격을 강화해 갔습니다.

11세기에 접어들면서 고려의 국력이 증대하고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되자, 청자를 굽는 가마들이 전남 강진에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강진은 고려청자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관요(官窯)적인 성격이 강화되어 국가 주도로 청자가 생산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전라북도 부안군 등지도 주요 제작지였습니다.

1147

[상감청자 발생]

고려청자의 최성기인 2기가 시작되며, 의종 대(1147-1170년)에 독창적인 상감청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고려청자의 최성기로 불리는 제2기(1150년~1250년)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서긍의 『고려도경』 기록을 통해 상감청자의 발생은 대체로 의종(毅宗) 시대(1147-1170년)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상감기법은 자기가 완전히 건조되기 전 무늬를 음각하거나 새김판으로 찍은 후 백토(白土)나 적토(赤土)를 메워 초벌구이한 다음 청자유를 발라 굽는 방식입니다. 이 기법은 나전칠기나 동제 용기의 입사법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이며, 고려인의 뛰어난 창의력을 보여주는 독자적인 기술입니다.

1159

[문씨묘 상감청자 발굴]

문씨묘(文氏墓)에서 청자상감 국화문혈, 청자상감보상화문완 등의 상감청자 유물이 발굴되었습니다.

1159년에 사망한 문씨의 묘(文氏墓)에서 청자상감 국화문혈(菊花文盒), 청자상감보상화문완(寶相花文椀) 등 연대가 확실한 상감청자 작품이 발굴되어, 당시 상감청자의 발전된 수준을 증명합니다.

1202

[명종 지릉 상감청자 발굴]

명종 지릉(明宗 智陵)에서 청자상감석류문완, 청자상감국화문혈 등의 상감청자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1202년에 조성된 명종 지릉(明宗 智陵)에서 청자상감석류문완, 청자상감국화문혈 등의 상감청자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상감청자는 무늬를 전면적으로 사용하되 배경 여백을 충분히 두거나, 여러 무늬를 통일적으로 배열하여 회화적인 효과를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1250

[고려청자 쇠퇴기 시작]

고려청자의 쇠퇴기인 제3기(1250년~1350년)가 시작되었습니다. 몽골의 침입과 원나라 지배의 영향으로 청자의 질이 저하되기 시작했습니다.

고려청자가 쇠퇴하는 제3기(1250년-1350년)가 시작되었습니다. 몽골의 침입과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국가의 말기적 증상이 미술에도 반영되어 청자의 퇴조를 보였습니다. 중국에서도 전통적인 청자가 소멸되는 변화가 고려청자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청자의 표면이 황록색조를 띠거나 비색을 잃고, 상감 무늬도 산만하고 조잡해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특수 청자 기법 등장]

쇠퇴기에 진사, 화청자, 철채자기 등 특수한 기법의 청자가 등장했습니다.

쇠퇴기에는 진사(辰砂)나 화청자(畵靑磁)와 같은 특수한 상감청자가 만들어졌고, 철채자기(鐵彩磁器)도 등장했습니다. 진사는 산화동을 사용하여 밝은 홍색을 내는 기법이며, 화청자는 백토나 흑토로 태토 위에 무늬를 그리고 유약을 발라 굽는 유리화(釉裏畵) 방식이 주를 이뤘습니다. 철채자기는 태토 전면에 흑색 유약을 발라 배경을 검게 하고 그 위에 백토로 무늬를 그려 청자유를 씌운 것입니다.

1392

[조선시대 도자기로 계승]

고려청자의 무늬는 쇠퇴기를 거쳐 조선시대 초기의 분청사기 및 철화백자로 이어집니다.

고려 말기 쇠퇴기에 접어든 청자의 무늬는 점차 간략화되고 조잡해지면서, 그 기술과 양식은 조선시대 초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분청사기 및 철화백자로 자연스럽게 계승되고 연결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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