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연표
BC 10C
기원전 약 10세기를 전후하여,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 정착하여 살던 여러 부족은 약 200~300년에 걸쳐 서로 교류하거나 전쟁을 벌였으며 융화와 추방을 반복했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고대 로마 문명의 초기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BC 8C
[라티움인, 에트루리아인, 그리스인 이탈리아 정착]
라티움에 라티움인들이 정착하고, 에트루리아인과 그리스인들이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훗날 로마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원전 8세기경 라티움에는 라티움인들이 정착해 살았으며, 이탈리아에 복합 문명이 발달하게끔 깊은 영향을 준 두 집단인 에트루리아인과 기원전 8세기 중엽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마그나 그라이키아)에 정착한 그리스인들이 활동했습니다.
로마의 역사가들은 기원전 753년 4월 21일에 로마라는 이름의 도시가 로물루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 날짜는 기원전 1세기 말 로마 역사가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가 고대 로마의 신화와 전설을 연구하여 도출한 것입니다.
[로마 지역 농촌 촌락 형성]
팔라티누스 언덕을 비롯한 로마의 여러 언덕에 농촌 촌락이 형성되었으며, 현대 학자들은 이 시기를 로마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 시기로 확증합니다.
기원전 750년경에는 팔라티누스 언덕을 비롯한 로마의 여러 언덕에 농촌 촌락이 들어섰는데, 이들 산지 촌락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언과 관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 학자들은 이 시기를 로마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 시기로 확증하고 있습니다.
BC 7C
기원전 7세기 말 에트루리아인들은 이 지역에 귀족·왕족 계급을 이루어 피지배층을 정치적으로 다스린 것으로 보입니다.
BC 6C
[로마 왕정 붕괴 및 공화정 수립]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왕의 아들 섹스투스가 루크레티아를 성폭행한 사건을 계기로 왕정이 폐지되고, 라티움족과 사비니족의 협력으로 공화정이 수립되었습니다.
기원전 509년에는 왕정체제였던 로마 왕국이 무너지고 귀족과 평민 계급이 로마 공화정을 세웠습니다. 기원전 6세기 말,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오만한 타르퀴니우스)를 마지막으로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 귀족들에 밀려 지배권을 잃었으며, 그의 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가 로마의 귀족 여성 루크레티아를 성폭행하면서 왕정 폐지가 촉발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라티움족과 사비니족이 협력하여 왕정을 폐지하고, 권력 집중을 억제하는 공화정 체제를 세웠습니다.
BC 5C
[로마의 이탈리아반도 정복 시작]
로마가 점차 에트루리아 등 이탈리아반도의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기 시작했으며, 베이 점령을 계기로 라티움 밖으로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기원전 5세기경부터 로마는 점차 에트루리아 등 이탈리아반도의 다른 나라를 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베이 점령은 라티움 밖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징표가 되었고, 그 이후 로마는 남진과 북진을 거듭하며 이탈리아 내에서 팽창을 거듭합니다.
BC 3C
[타렌툼과 피로스의 대 로마 전쟁 시작]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앞둔 로마의 지배권에 마지막으로 도전한 그리스 식민시 타렌툼이 에페이로스의 피로스를 끌어들여 로마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앞두고 로마의 지배권에 마지막 도전장을 던진 세력은 그리스 식민시 타렌툼이었습니다. 기원전 281년 타렌툼은 그리스 서북부에 있던 에페이로스의 피로스를 끌어들여 로마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탈리아 동맹 체제 수립]
로마가 외적들을 복속시키고 게누아에서 이탈리아 최남단까지 거대한 동맹 체제를 수립하며 이탈리아반도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은 평민과 귀족 간에 200여 년 이상 투쟁과 타협을 반복하며 로마 특유의 과두정 체제를 점진적으로 이루었습니다. 내부의 신분 투쟁 가운데도 로마는 외적들을 복속시키며 마침내 기원전 272년경 게누아(제노바)에서 이탈리아 최남단까지 거대한 동맹 체제를 수립했습니다.
기원전 270년까지 로마는 정복을 통해 전략 요충지에 로마의 식민지를 건설하여 이탈리아 전역을 장악하고, 안정적 지배권을 확립했습니다.
[포에니 전쟁 발발]
로마는 지중해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와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을 벌였으며, 이 전쟁을 통해 시칠리아, 사르데냐, 에스파냐 등 해외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기원전 3세기 후반, 로마는 3차에 걸쳐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년 ~ 기원전 146년)에서 카르타고와 격돌했습니다. 초기에 카르타고와 로마는 동맹 및 협력 관계였으나 동지중해 지역 패권을 놓고 결국 충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1,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면서 로마는 이 전쟁에서 처음으로 해외 영토인 시칠리아, 사르데냐, 에스파냐 등을 확보합니다.
[로마의 발칸 반도 침공 시작]
한니발을 무찌른 직후, 로마는 대규모 시민군을 상비군으로 전환하고 아드리아해에서 로마의 해상 운송을 방해하던 서쪽 발칸 반도를 침공했습니다.
로마는 한니발을 상대하면서 동원한 대규모 시민군을 상비군으로 전환한 후, 기원전 229년 아드리아해에서 로마의 해상 운송을 방해하던 서쪽의 발칸 반도를 침공했습니다.
기원전 219년 일단락된 이 지역 정복은 후에 마케도니아를 정복할 때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BC 2C
기원전 2세기, 로마는 마케도니아 왕국과 셀레우코스 왕국을 물리치면서 지중해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 시도]
해외 팽창으로 인한 사회 내분과 대농장 발달, 기사 계급의 정치적 제약 등으로 원로원은 토지 개혁에 소극적이었으며, 그라쿠스 형제가 토지 개혁을 시도했으나 결국 살해당했습니다.
해외 팽창은 내분을 불렀습니다. 원로원 의원은 로마 속주의 부를 통해 부유해졌지만, 주로 소농 출신의 병사들은 고향을 오래 떠나있었기에 자기 땅을 지키지 못했고, 임금 노동 대신 외국 노예에 크게 의존하는 대농장이 발달했습니다. 원로원은 끊임없이 정쟁을 일삼아 계속 토지 개혁에 발목을 잡았고, 기사 계급의 정치 발언권 확대를 거부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기원전 2세기 말 평민에게 주로 귀족이 소유한 토지를 재분배하려는 토지 개혁 입법을 시도한 그라쿠스 형제 시대에 극에 달했습니다. 두 형제는 결국 살해당했습니다.
BC 1C
이탈리아 동맹국에 로마 시민권 확대를 거부하면서 기원전 91년에서 기원전 88년까지 3년 동안 동맹국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마리우스와 그의 부하 술라가 내전을 벌였으며, 술라가 기원전 82년 콜리네 문에서 압승을 거두고, 결국 기원전 81년~기원전 79년에 술라가 독재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술라가 기원전 82년 콜리네 문에서 압승을 거두고, 결국 기원전 81년~기원전 79년에 술라가 독재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술라는 무너져 가던 공화정을 부흥시키려 개혁을 하고, 독재관에 취임한 지 2년 만에 자진 퇴임했습니다.
[제1차 삼두정치 형성]
율리우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크라수스가 제1차 삼두정치를 이루어 공화국을 농단하며 로마 정계를 장악했습니다.
기원전 1세기 중반, 마리우스의 처조카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술라의 부하인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크라수스 세 사람이 제1차 삼두정치를 이루어 공화국을 농단했습니다.
기원전 58년부터 7년에 걸쳐 갈리아를 정복하는 갈리아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크라수스 전사, 제1차 삼두정치 붕괴]
파르티아와 벌인 카르하이 전투에서 크라수스가 전사하면서 제1차 삼두정치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로 나뉘어 전개되었습니다.
기원전 53년, 파르티아와 벌인 카르하이 전투에서 크라수스가 전사하면서 삼두정치는 카이사르와 원로원파로 돌아선 폼페이우스로 나뉘어 전개됩니다.
[카이사르의 내전 발발]
갈리아 정복 후 원로원과 대립하던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너 폼페이우스가 이끄는 원로원파 군대와 내전을 일으켰습니다.
기원전 58년부터 7년에 걸쳐 갈리아를 정복한 후 원로원과 대립하던 카이사르는 기원전 49년 루비콘강을 건너 폼페이우스가 이끄는 원로원파 군대와 내전을 일으킵니다.
[카이사르의 파르살루스 전투 압승]
카이사르가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고, 이후 탑수스 전투와 문다 전투에서 잔당을 격파하며 내전에서 승리했습니다.
기원전 48년, 카이사르는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고, 탑수스 전투와 문다 전투에서 그 잔당을 격파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카이사르가 독재 의혹을 받다가 공화제 헌정을 복원하려는 정적(브루투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등)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는 독재 의혹을 받다가 공화제 헌정을 복원하려는 정적(브루투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등)에 암살당합니다.
[악티움 해전 승리 및 옥타비아누스 지배]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한 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격퇴하고 로마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수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의 제2차 삼두정치를 이루며 권력을 잡았으나, 이 정치적 동맹은 권력 투쟁으로 기울었습니다. 레피두스는 추방되고,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하며,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격퇴하여 로마의 유일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칭호 및 원수정(제정) 시작]
내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고 원수정 체제를 수립하여 사실상 로마 제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내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받고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잡았지만, 공화정을 가장했습니다. 이때의 통치체제를 원수정(Principatus)이라 하며,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을 프린켑스(제1의 시민)라 칭했습니다. 이렇게 아우구스투스가 독재관을 거부하는 등 조심스럽게 행동한 것은 양아버지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 때문이기도 합니다.
14
[티베리우스 즉위,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시작]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인 티베리우스가 권좌에 올라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 티베리우스는 심각한 반대 없이 권좌에 올라 아우구스투스에 이어 본격적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를 이루었고, 이 왕조는 티베리우스 사후 칼리굴라와 클라우디우스의 치세를 거쳐 기원후 68년 네로가 자살할 때까지 이어집니다.
64
[최초의 기독교 박해]
네로 시대 로마 대화재의 주범으로 그리스도 교도를 지목하며 잔인한 고문과 태형을 가하는 최초의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최초의 기독교 박해는 기원후 64년 네로 시대에 로마 대화재의 주범으로 그리스도 교도를 수색하면서 잔인한 고문과 태형을 가한 것이었습니다.
68
[네로 자살 및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종식]
네로 황제가 자살하면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종식되고, 로마는 1년간 내전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는 기원후 68년 네로가 자살할 때까지 이어집니다. 이후 1년간 로마는 내전상태에 돌입하면서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가 즉위합니다.
69
시리아 주둔군 사령관이었던 베스파시아누스가 자기 군단의 지지를 받아 로마에 입성하여 비텔리우스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면서 플라비우스 왕조의 시대를 개창합니다. 플라비우스 왕조는 기원후 69년에서 96년까지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통치했습니다.
98
[로마 제국 최대 판도 달성]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 다키아 정복과 파르티아와의 전쟁을 통해 로마 제국은 북으로는 스코틀랜드에서 남으로는 아프리카 수단까지, 서로는 포르투갈에서 동으로는 카프카스 지방까지 역사상 최대 판도를 이룩했습니다.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98년~117년)에 로마 제국은 북으로는 스코틀랜드에서 남으로는 아프리카 수단까지, 서로는 포르투갈의 대서양 연안에서 동으로는 카프카스 지방까지 최대 판도를 이룩했습니다. 오늘날 면적으로 환산하면 현재 미국 면적의 2/3에 달하고 인구도 현 미국의 절반에 약간 안되는 정도로 추산됩니다. 트라야누스 재위시에는 다키아(오늘날의 루마니아)의 정복과, 파르티아와의 전쟁을 통하여 제국의 영토는 최대가 되며, 그 지배 지역이 650만km²에 이르렀습니다.
117
[하드리아누스 즉위, 정복 전쟁 중단]
트라야누스 황제 사후 하드리아누스가 즉위하여 정복 전쟁을 중단하고 제국 순찰 및 국경 수비 강화에 힘썼습니다.
트라야누스 사후 즉위한 하드리아누스는 정복전쟁을 중단하고 제국을 순찰하면서 국경 수비를 강화하는데 힘씁니다.
193
[세베루스 왕조 치세 혼란기 시작]
세베루스 왕조 치세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혼란기를 수습했으나, 카라칼라나 엘라가발루스 같은 황제들의 포악하거나 무능한 통치로 제국이 혼란을 겪었습니다.
193년에서 235년 사이는 세베루스 왕조의 치세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붕괴 이후 혼란기를 수습하기는 하였지만 카라칼라나 엘라가발루스 같은 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가 나타나기도 했고, 프라이펙투스 프라이토리오(근위대장) 마크리누스 같은 찬탈자도 나타났습니다.
212
[카라칼라 칙령, 모든 자유 시민 로마 시민권 부여]
카라칼라 황제의 칙령으로 로마 제국 내의 모든 자유 시민에게 로마 시민권이 부여되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기원후 212년 카라칼라의 칙령으로 제국내의 모든 자유 시민에게 로마 시민권이 부여되었습니다.
235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암살, 3세기의 위기 시작]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가 암살당하며 로마 제국은 군인 황제 시대라는 '3세기의 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235년에는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가 암살 되었고, 막시미누스 트락스부터 카리누스까지 근위대와 군대가 제위 계승에 영향력을 더욱 행사하였습니다. 거기다 외부에서는 게르만족과 사산조 페르시아가 침입해오며, 260년에는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사산조 페르시아 군대에 포로로 잡히고, 비슷한 시기 갈리아, 히스파니아, 브리타니아 지역에서는 포스투무스가 갈리아 제국을 세웠으며, 또 동방 시리아, 이집트에서는 제노비아가 팔미라 제국을 세워 황제를 칭하며 제국이 3개로 분열되는 로마 제국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이 하였습니다.
260
260년에는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샤한샤 샤푸르 1세가 이끄는 사산조 페르시아 군대에 포로로 잡혔습니다.
284
[디오클레티아누스의 3세기의 위기 종식 및 전제정 수립]
유능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3세기의 위기'를 일단락 짓고, '도미누스'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기존의 원수정 대신 전제정 체제를 수립했습니다.
이 위기는 284년 유능했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일단락지었습니다. 또한 기존 아우구스투스가 사용해오던 '제1 시민'이라는 뜻을 가진 프린켑스 대신 라틴어로 주인을 뜻하는 '도미누스'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원수정 체제(Principatus)의 종말을 알리게 되었고, 전제정(Dominatus)을 수립하였습니다.
286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 체제 도입]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제국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고 정제와 부제를 임명하는 사두 체제를 도입하여 제국 지배 구조를 혁신했습니다.
286년에 제국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자신의 친구인 막시미아누스를 서방의 정제(Augustus)로 임명하였고, 자신들의 사위를 각각 부제(Caesar)로 임명하여 제국을 지배하는 사두 체제(Tetrarchia)를 도입했습니다.
305
305년 두 정제가 공동 퇴위한 이후 여러 공동 황제는 50년 이상 서로 대립하며 권력 투쟁을 벌였습니다.
330
[콘스탄티노폴리스 새 수도 지정]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비잔티온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명명하고 로마 제국의 새 수도로 선포하며 제국의 중심을 동방으로 옮겼습니다.
330년 5월 11일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비잔티온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명명(현 이스탄불)하고 로마 제국의 새 수도로 삼았습니다.
391
[테오도시우스 1세의 기독교 외 종교 숭배 금지 칙령]
테오도시우스 1세의 칙령으로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 외의 모든 종교 숭배가 금지되었으며, 기독교가 사실상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기원후 391년 테오도시우스 1세의 칙령으로 제국 내에서 기독교 외의 모든 종교 숭배가 금지되었습니다.
395
[로마 제국의 동서 분할]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 로마 제국이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영구히 분할되어 두 개의 독립된 제국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제국은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인 395년에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영구히 갈라졌습니다.
410
[서고트족의 로마 시 약탈]
서유럽 지역이 이민족의 침략에 시달리던 시기에, 알라리크 1세가 이끄는 서고트족이 로마 시를 약탈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4세기가 넘도록 서부 지역은 끊임없이 이민족의 침략에 시달리면서 점차 쇠퇴 일로로 치달았습니다. 410년 즈음에는 알라리크 1세가 이끄는 서고트족은 로마 시를 약탈했습니다.
455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이 로마 속주인 갈리아, 히스파니아, 북아프리카를 침략하고 455년에 로마를 약탈했습니다.
476
[서로마 제국 멸망]
게르만 장군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키면서 1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서로마 제국이 공식적으로 멸망했습니다.
455년 이후에는 게르만 출신 장군 리키메르에 의해 황제가 지속적으로 폐위되는 상황이 일어났고, 476년 9월 4일 게르만 장군 오도아케르은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켰습니다. 1200여 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로마의 서부 지역 지배는 막을 내렸습니다.
549
[키르쿠스 막시무스 폐쇄]
로마의 인기 있는 오락 장소였던 대경기장(키르쿠스 막시무스)에서 마지막 경마 경기가 치러진 후 문을 닫았습니다.
대경기장은 기원전 600년에 생겼으며, 천년이 넘도록 이어지다 기원후 549년에 마지막 경마 경기가 치러진 후 문을 닫았습니다.
1000
기원후 1000년에 동로마 제국은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마케도니아 왕조가 들어선 이후 바실리오스 2세는 불가리아와 아르메니아를 재정복했으며, 문화와 교역이 번영했습니다.
1071
[만지케르트 전투 패배 및 동로마 쇠퇴 시작]
셀주크 튀르크와의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패배하고 황제 로마노스 4세가 포로로 잡히면서 동로마 제국의 팽창에 제동이 걸리고 쇠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정복 이후 제국은 1071년 셀주크 튀르크와의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패하면서 로마노스 4세가 포로로 잡혔고, 팽창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제국의 쇠퇴로 이어집니다.
1095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 서방에 도움 요청]
수백 년간 내분과 터키의 침략에 시달리던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 황제가 서방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수백년간 내분과 터키의 침략으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는 1095년 서방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유럽에서는 로마 가톨릭의 교황인 우르바노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를 소집하여 십자군을 조직하여 동로마 제국에 파견합니다.
1453
[동로마 제국 멸망]
오스만 투르크의 메메드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면서 1000년 넘게 이어져 온 동로마 제국이 멸망했습니다.
동로마 제국은 1453년 5월 29일 오스만투르크의 메메드 2세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당하면서 멸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