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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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국지도발, 군사 사건, 간첩 침투, 남북 관계 + 카테고리

1996년 9월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강릉 해안에 침투 49일간 대규모 소탕 작전이 벌어졌습니다. 대통령 암살을 목표로 한 특수부대원 26명이 침투했고 이 작전에는 연인원 150만 명 이상의 병력이 투입되었습니다. 교전 중 군인 경찰 민간인 등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으며 생포된 유일한 공비는 대한민국으로 전향했습니다. 이는 남북 간 첫 시신 송환 기록을 남긴 중대한 안보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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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96

[북한 잠수함 출항]

1996년 9월 13일 승조원 및 전투원 28명을 태운 북한 잠수함이 원산항을 출발하였습니다. 이들은 강릉 상륙 후 춘천 전국체전 개막식에서 대통령을 저격할 계획이었습니다. 이후 전투요원들이 항해요원들을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공비 3명 강릉 상륙]

1996년 9월 15일 새벽 2시, 잠수함에 탑승했던 북한 특수부대원 3명이 강릉 해안 부근에 먼저 상륙했습니다.이들은 이후 작전을 위한 사전 정찰 임무를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군 동해안 기동훈련]

1996년 9월 16일부터 18일까지 대한민국 해군 함대가 동해안 일대에서 기동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이는 무장공비 침투의 원인 분석 중 하나로, 북한의 침투 시기와 겹쳐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침투 잠수함 좌초]

1996년 9월 17일 밤 10시, 북한 잠수함이 강릉 해안에서 복귀를 위해 접근하던 중 좌초되었습니다.생포된 공비는 기관 고장을 주장했으나, 군 당국은 무장간첩 침투 중 좌초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이 좌초는 대규모 소탕작전의 서막이었습니다.

인양 작업 중 잠수함 스크루에 해초가 단단히 감겨있고, 스크루 커버가 암초에 걸려 있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잠수함은 운항 불능 상태가 되었고, 승조원들은 퇴로를 잃게 됩니다.

[진돗개 하나 발령]

1996년 9월 18일 새벽, 좌초 잠수함 발견 후 군은 침투 흔적을 확인하고 오전 3시 40분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습니다.이어 오전 5시에는 전군 경계령이 내려졌고, 동해안 일대 통행이 금지되는 등 비상 태세에 돌입했습니다.

해안 초소에서 잠수함 확인 후, 2시 5분부터 모든 병력이 투입되었습니다. 7시 20분에는 부근 도로에서 권총, 구명조끼 등 유류품이 발견되어 무장공비 침투가 확실시되었습니다.

[국방부 공식 성명]

1996년 9월 18일, 대한민국 국방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 사건을 북한의 대남 도발이자 중대한 정전협정 위반 사항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이는 국제사회에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는 조치였습니다.

[좌초 잠수함 최초 발견]

1996년 9월 18일 새벽 1시 30분경, 강릉 해안 20m 해상에 좌초된 소형 잠수함을 택시기사가 발견해 파출소에 신고했습니다.이 신고는 대한민국 군의 대규모 작전 개시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택시기사는 해안경비 담당 초소에 잠수함 발견 사실을 알렸고, 군은 즉시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동료 처형 및 공비 생포]

1996년 9월 18일 오후 4시 30분경, 강동면 청학산 정상에서 무장간첩 11명의 시체가 수색대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조사 결과 이들은 동료 무장간첩들에 의해 처형당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습니다.처형된 이들 중에는 공화국 2중영웅 김동원 대좌 등 고위급 장교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이광수는 같은 날 오후 4시 45분경 강릉시 모전1리 동해고속도로 굴다리 밑에서 주민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생포되었습니다.

달아난 공비 13명은 이후 곳곳에서 수색대와 교전을 벌이며 49일간의 작전을 장기화시켰습니다. 생포된 이광수는 침투 목적이 김영삼 대통령 암살이라고 진술했습니다.

[공비 7명 사살]

1996년 9월 19일, 대규모 수색 작전 중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 단경골에서 은신 중이던 간첩 3명이 사살되었습니다.이후 칠성산 부근에서 3명, 괘일재에서 1명이 추가로 사살되는 등 하루 동안 총 7명의 무장공비가 검거되었습니다.

4만여 명의 군·경찰·예비군과 헬리콥터 5대가 합동 수색을 벌이며 잔당 추적을 이어갔습니다.

[민가 출몰 및 교전]

1996년 9월 20일 밤, 강동면 임곡1리 민가에 권총을 든 간첩 1명이 들어와 음식을 빼앗아 달아났습니다.이후 신석동 섬석교 부근에서 무장간첩 2명이 출현해 군과 교전했으며, 강릉비행장 부근에서도 총격전이 발생하는 등 공비들의 은밀한 활동이 이어졌습니다.

[특전사 중사 전사]

1996년 9월 21일 오전 9시 30분, 강동면 언별리 칠성산 망기봉 일대에서 도주 간첩 2명이 발견되어 교전이 벌어졌습니다.이 과정에서 특전사 소속 이병희 중사(25)가 간첩의 조준 사격으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습니다.

[좌초 잠수함 예인]

1996년 9월 22일, 강릉 해안에 좌초되었던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동해시로 예인되었습니다.이 잠수함은 북한이 1986년부터 자체 개발한 것으로, 비정규전이나 특수공작에 이용되는 최신 기종이었습니다.

잠수함 내부에서는 AK소총, 실탄, 체코제 기관총 등이 발견되어 무장 침투가 명백해졌습니다.

[양구 내무반 총기 난사]

강릉 무장공비 수색이 한창이던 1996년 9월 22일, 강원도 양구군의 한 부대에서 소속 병사가 내무반에 총기를 난사하고 민통선 북쪽으로 탈영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이 사고로 9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나, 다음날 탈영병이 자수하며 31시간 만에 사건이 종결되었습니다.

[공비 사살 및 군인 전사]

1996년 9월 22일 오전 6시 15분, 언별리 칠성산 계곡에서 무장간첩 2명이 발견되어 교전 끝에 사살되었습니다.그러나 교전 중 노도부대 소속 송관종 일병(21)과 화랑부대 소속 강정영 상병(21)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 사망하는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했습니다.

[칠성산 민간인 오인사격]

1996년 9월 23일 오전 6시 30분, 칠성산에서 진행된 군경 합동 수색 작전 중 민간인 1명이 오인 사격으로 사망하고 군인 2명이 중상을 입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긴박한 작전 상황 속에서 안타까운 희생이 이어졌습니다.

[북한, 잠수함 표류 주장]

1996년 9월 23일, 북한은 인민무력부 담화를 통해 원산항을 출발한 잠수함이 훈련 중 표류하여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이는 대한민국 군 당국의 '무장간첩 침투' 발표와 상반되는 입장이었습니다.

[잠수함 부함장 사살]

1996년 9월 28일 오전 6시 45분경, 성산면 어흘리 왕제산 정상 부근에서 북한 잠수함 부함장 류림 소좌가 국군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침투 핵심 인물 중 한 명의 사살로 수색 작전은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을지부대 병장 전사]

1996년 9월 29일 오후 8시경, 고성군 간성읍 진부리에서 야간 매복 근무 중이던 을지부대 소속 한대성 병장(21)이 근무지를 무단이탈한 후 오인 사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긴장된 상황 속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무장간첩 소위 사살]

1996년 9월 30일 오후 3시 18분, 왕산면 도마리 칠성산 서쪽에서 도주 중이던 무장간첩 리철진 소위가 발견되어 교전 끝에 사살되었습니다.공비들에 대한 수색망이 점점 좁혀지고 있었습니다.

[민간인 3명 피살 발견]

1996년 10월 9일 오후 2시 50분,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 활산목 인근에서 버섯을 채취하던 민간인 3명이 피살체로 발견되었습니다.군은 무장간첩 잔당에 의해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으며, 이는 민간인 피해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발견된 M16 탄피에는 일련번호가 없어 무장간첩 소행에 대한 강한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철벽부대 대위 전사]

1996년 10월 12일 오후 8시 40분경, 연곡면에서 매복 작전 중이던 철벽부대 중대장 홍동진 대위(26)가 오인 사격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장기화되는 작전 속에 군 장병들의 피로도와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997

[이광수 해군 입대]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서 유일하게 생포된 이광수(1965~)는 조사를 받은 뒤 대한민국으로 전향하여 1997년에 해군에 입대했습니다.이후 군무원으로 근무하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그는 대한민국 여성과 결혼해 2녀를 두었지만, 딸들이 '무장공비의 딸'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극도로 꺼려합니다.

이광수는 조사 중 '광어회와 쇠고기가 먹고 싶다'고 말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강릉 통일공원 조성]

1997년 7월, 국방부는 강릉 잠수함 침투 사고 현장에 공원을 조성하여 좌초된 잠수함을 영구적으로 전시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이 공원은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안보 의식을 고취하는 교육의 장이 되었습니다.

2011

[15주년 재현 훈련]

2011년 9월,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15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육군은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대규모 훈련을 실시했습니다.이는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고 철저한 안보 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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