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라 다로
연표
1848
1848년 1월 4일, 나가토국 아부군 하기정에서 조슈 번사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기요즈미입니다.
1860
1860년, 번 정부의 서양식 훈련에 참가하여 군인으로서의 기본기를 다졌습니다.
1868
1868년,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는 데 적극적으로 활약했으며, 보신 전쟁에 참전하여 적정 정찰, 정찰 임무, 연락책 등 후방 지원을 담당하며 메이지 유신의 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870
1870년부터 1873년까지 요코하마 어학학교를 마친 뒤 자비로 독일로 유학하여 선진 국방 과학을 수학하며 군사적 식견을 넓혔습니다.
1875
1875년부터 1878년, 그리고 1884년부터 1885년까지 독일의 일본 대사관 주재 무관으로 복무하며 국제적인 감각과 군사 외교 역량을 길렀습니다.
1886
귀국 후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지도를 받으며 일본 군제를 심도 있게 학습했고, 1886년 육군 차관에 임명되며 군 요직에 올랐습니다.
1894
청일 전쟁(1894년~1895년)에서 제3사단장으로 활약하며 황해 동북 연안으로부터 해성까지 진격했고, 특히 잉커우 시를 성공적으로 점령하며 뛰어난 지휘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1895
1895년, 청일 전쟁에서의 공로 등을 인정받아 자작 작위를 수여받고 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1896
1896년 6월 2일부터 10월까지 제2대 타이완 총독으로 재임하며 일본 제국의 식민 통치 초기 행정을 주도했습니다.
1898
1898년부터 1901년까지 이토 히로부미 내각, 오쿠마 시게노부 내각, 야마가타 내각 등 여러 내각에서 육군대신을 역임하며 일본군의 핵심 정책을 담당했습니다.
1901
1901년 6월 2일, 일본 제11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여 일본의 국정 운영을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1902
1902년, 자작에서 한 단계 높은 백작 작위를 수여받으며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했습니다.
1905
[가쓰라-태프트 밀약 체결]
미국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여 조선 지배권과 필리핀 지배권을 상호 인정했습니다.
1905년 7월 29일, 미국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가 만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밀약을 통해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상호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1906
1906년 1월 7일, 5년 가까이 이어진 제11대 내각총리대신직에서 물러났습니다.
1907
1907년, 백작에서 후작으로 작위가 승작되며 일본 귀족 사회 내에서 그의 위상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1908
1908년 7월 14일, 사이온지 긴모치와의 교대 속에서 일본 제13대 내각총리대신으로 다시 취임하여 일본의 중대한 국면을 이끌었습니다.
1910
제2차 내각 재임 기간 중인 1910년 8월 29일, '한일 합방'을 강제적으로 성사시켜 대한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편입시키는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주도했습니다.
1911
1911년, 후작에서 공작으로 승작하며 일본 귀족 작위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고, 이는 그의 불세출의 경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1911년 8월 30일, 두 번째로 맡았던 내각총리대신직에서 퇴임했습니다.
1912
[제15대 총리 취임 (3차 내각)]
세 번째로 일본 제15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며 3차 내각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1912년 12월 21일, 다시 사이온지 긴모치의 뒤를 이어 일본 제15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며 세 번째이자 마지막 총리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1913
[헌정 옹호 운동 격화]
그의 3차 내각에 대한 헌정 옹호 운동이 격화되어 민중들이 의회를 둘러싸고 경찰과 신문사를 습격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1913년 2월 10일, 가쓰라 3차 내각에 반대하는 헌정 옹호 운동이 거세지면서, 분노한 민중들이 의회를 둘러싸고 정부를 비호하는 신문사와 경찰을 습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내각 붕괴 및 총리 퇴임]
민중의 압력으로 인해 일본 역사상 최초로 내각이 붕괴하며 제15대 내각총리대신직에서 퇴임했습니다.
1913년 2월 20일, 헌정 옹호 운동의 여파로 인해 그의 내각은 민중의 힘으로 무너진 일본 역사상 최초의 사례를 남기며 제15대 내각총리대신직에서 물러났습니다.
1913년 10월 10일,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8개월 뒤 도쿄에서 사망했습니다. 사후 공작위는 장손 고타로가 습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