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라 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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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 다로
정치가, 군인, 총리 정치가 및 행정가 총리/내각 수반 군인 및 전략가

일본 제11, 13, 15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낸 군인이자 정치가입니다. 메이지 유신에 기여했으며, 청일 전쟁에서 활약했습니다. 총 2,886일 동안 총리직을 수행하며 가쓰라-태프트 밀약 체결, 한일 합방을 주도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내각은 민중 시위로 붕괴된 최초의 사례를 남겼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848

[가쓰라 다로 출생]

조슈 번사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

1848년 1월 4일, 나가토국 아부군 하기정에서 조슈 번사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기요즈미입니다.

1860

[번 정부 서양식 훈련 참가]

조슈 번 정부가 주도하는 서양식 군사 훈련에 참여하며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860년, 번 정부의 서양식 훈련에 참가하여 군인으로서의 기본기를 다졌습니다.

1868

[메이지 유신 공헌 및 보신 전쟁 참전]

도쿠가와 막부 타도에 활약하고 보신 전쟁에 참전하여 메이지 유신 성립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868년,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는 데 적극적으로 활약했으며, 보신 전쟁에 참전하여 적정 정찰, 정찰 임무, 연락책 등 후방 지원을 담당하며 메이지 유신의 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870

[독일 유학 및 국방 과학 수학]

요코하마 어학학교를 거쳐 독일로 유학을 떠나 국방 과학을 깊이 있게 공부했습니다.

1870년부터 1873년까지 요코하마 어학학교를 마친 뒤 자비로 독일로 유학하여 선진 국방 과학을 수학하며 군사적 식견을 넓혔습니다.

1875

[독일 주재 일본 대사관 무관 복무]

독일 주재 일본 대사관의 무관으로 두 차례 복무하며 외교 및 군사 관련 경험을 쌓았습니다.

1875년부터 1878년, 그리고 1884년부터 1885년까지 독일의 일본 대사관 주재 무관으로 복무하며 국제적인 감각과 군사 외교 역량을 길렀습니다.

1886

[육군 차관 임명]

귀국 후 야마가타 아리토모 휘하에서 군제를 배우고 육군 차관에 임명되었습니다.

귀국 후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지도를 받으며 일본 군제를 심도 있게 학습했고, 1886년 육군 차관에 임명되며 군 요직에 올랐습니다.

1894

[청일 전쟁 참전 및 전공]

청일 전쟁에 제3사단장으로 참전하여 황해 동북 연안과 해성, 잉커우를 점령하는 등 큰 전공을 세웠습니다.

청일 전쟁(1894년~1895년)에서 제3사단장으로 활약하며 황해 동북 연안으로부터 해성까지 진격했고, 특히 잉커우 시를 성공적으로 점령하며 뛰어난 지휘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1895

[자작 작위 수여]

자작 작위를 받으며 귀족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1895년, 청일 전쟁에서의 공로 등을 인정받아 자작 작위를 수여받고 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1896

[제2대 타이완 총독 부임]

제2대 타이완 총독으로 부임하여 식민 통치 행정을 경험했습니다.

1896년 6월 2일부터 10월까지 제2대 타이완 총독으로 재임하며 일본 제국의 식민 통치 초기 행정을 주도했습니다.

1898

[육군대신 역임]

이토 히로부미, 오쿠마 시게노부, 야마가타 내각에서 육군대신을 역임하며 일본 군정을 총괄했습니다.

1898년부터 1901년까지 이토 히로부미 내각, 오쿠마 시게노부 내각, 야마가타 내각 등 여러 내각에서 육군대신을 역임하며 일본군의 핵심 정책을 담당했습니다.

1901

[제11대 총리 취임]

일본 제11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여 첫 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1901년 6월 2일, 일본 제11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여 일본의 국정 운영을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1902

[백작 작위 수여]

백작 작위를 수여받아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높였습니다.

1902년, 자작에서 한 단계 높은 백작 작위를 수여받으며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했습니다.

1905

[가쓰라-태프트 밀약 체결]

미국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여 조선 지배권과 필리핀 지배권을 상호 인정했습니다.

1905년 7월 29일, 미국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가 만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밀약을 통해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상호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1906

[제11대 총리 퇴임]

제11대 내각총리대신직에서 물러났습니다.

1906년 1월 7일, 5년 가까이 이어진 제11대 내각총리대신직에서 물러났습니다.

1907

[후작 작위 수여]

후작 작위를 받으며 더욱 높은 귀족 지위에 올랐습니다.

1907년, 백작에서 후작으로 작위가 승작되며 일본 귀족 사회 내에서 그의 위상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1908

[제13대 총리 취임]

다시 한번 일본 제13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며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복귀했습니다.

1908년 7월 14일, 사이온지 긴모치와의 교대 속에서 일본 제13대 내각총리대신으로 다시 취임하여 일본의 중대한 국면을 이끌었습니다.

1910

[한일 합방 성사]

제2차 내각 재임 중 한일 합방을 성사시켜 조선을 일본 제국의 식민지로 편입시켰습니다.

제2차 내각 재임 기간 중인 1910년 8월 29일, '한일 합방'을 강제적으로 성사시켜 대한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편입시키는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주도했습니다.

1911

[공작 작위 수여]

공작 작위를 수여받아 일본 귀족 중 최고 지위에 올랐습니다.

1911년, 후작에서 공작으로 승작하며 일본 귀족 작위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고, 이는 그의 불세출의 경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제13대 총리 퇴임]

제13대 내각총리대신직에서 물러났습니다.

1911년 8월 30일, 두 번째로 맡았던 내각총리대신직에서 퇴임했습니다.

1912

[제15대 총리 취임 (3차 내각)]

세 번째로 일본 제15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며 3차 내각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1912년 12월 21일, 다시 사이온지 긴모치의 뒤를 이어 일본 제15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며 세 번째이자 마지막 총리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1913

[헌정 옹호 운동 격화]

그의 3차 내각에 대한 헌정 옹호 운동이 격화되어 민중들이 의회를 둘러싸고 경찰과 신문사를 습격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1913년 2월 10일, 가쓰라 3차 내각에 반대하는 헌정 옹호 운동이 거세지면서, 분노한 민중들이 의회를 둘러싸고 정부를 비호하는 신문사와 경찰을 습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내각 붕괴 및 총리 퇴임]

민중의 압력으로 인해 일본 역사상 최초로 내각이 붕괴하며 제15대 내각총리대신직에서 퇴임했습니다.

1913년 2월 20일, 헌정 옹호 운동의 여파로 인해 그의 내각은 민중의 힘으로 무너진 일본 역사상 최초의 사례를 남기며 제15대 내각총리대신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가쓰라 다로 사망]

총리직 퇴임 후 몇 달 뒤 도쿄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1913년 10월 10일,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8개월 뒤 도쿄에서 사망했습니다. 사후 공작위는 장손 고타로가 습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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