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는 왜 노벨상 시상식에 오지 말아달라는 굴욕을 겪어야 했나?



님들, '퀴리 부인'하면 뭐가 떠오름?
과학자? 방사능?
오늘은 드라마보다 더 버라이어티한 삶을 살았던 '인간 마리 퀴리' 썰 제대로 한 번 풀어봄.

#1. 폴란드 흙수저 유학생, 파리를 씹어먹다
때는 19세기 후반, 러시아 식민지 폴란드.
교육자 집안 막내로 태어남.
마리 퀴리의 본명은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였음.


어릴 때부터 떡잎이 남달랐는데, 문제는 당시 바르샤바 대학이 여자 입학을 안 받아줬다는 거.
여기서 마리의 '노빠꾸' 인생이 시작됨.

마리: "언니! 내가 먼저 돈 벌어서 파리 보내줄게!"
브로냐(언니): "오케이! 그다음엔 네 차례다!"

진짜로 몇 년간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언니 뒷바라지하고, 자기는 몰래 비밀 대학 '이동 대학'에 참여하며 공부함.

결국 24살에 꿈에 그리던 파리 소르본 대학 입학!
근데 파리에 도착했지만 ㄹㅇ 개털이었음.
돈이 없어서 빵이랑 버터, 차만 마시면서 버팀.
추운 다락방에서 덜덜 떨면서도 공부에만 미쳐 살았음.

파리 교수들: (웅성웅성) "아니, 저 폴란드 유학생 뭐냐? 미쳤는데?"

근데도 결국 물리학 수석, 수학 차석으로 졸업해버림.
그냥 천재가 아니라 독종 천재였던 거임.




#2. 운명의 짝을 만나 세상을 뒤집다
파리에서 연구하던 마리는 운명처럼 당대 최고의 과학자 '피에르 퀴리'를 만남.
과학에 미친 두 사람.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음.
그리고 결혼해서 세계 최강의 '연구 동맹'을 결성함.

당시 학계에서 비주류 취급받던 '방사능' 연구에 꽂힌 마리.
남편 피에르와 함께 허름한 창고 같은 실험실에서 연구를 시작함.

이 두 사람, 수 톤에 달하는 우라늄 폐광석을 맨손으로 분리하는 노가다를 함.
그리고 마침내 1898년.
두 개의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는데 성공함.

하나는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딴 '폴로늄'.
다른 하나는 '광선'이라는 뜻의 '라듐'이었음.
원소는 불변한다는 과학계 상식을 그냥 박살 내버린 ㄹㅇ 혁명적인 발견이었음.



#3. 최초의 여성 노벨상, 그리고 막장 스캔들의 시작
이 업적으로 1903년, 마리는 역사상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가 됨 (물리학상).
근데 이것도 그냥 받은 게 아님.

프랑스 과학계: "여자는 좀... 남자들만 후보로 올리죠."
피에르: "빡치네. 마리 없으면 나도 안 받습니다."

남편의 외조 덕에 겨우 공동 수상이 가능했음.


하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음.
1906년, 피에르가 마차 사고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남ㅠㅠ
마리는 슬픔을 딛고 남편의 뒤를 이어 소르본 대학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는 역사를 씀.




여기까지가 위인전 1부.
근데 진짜 드라마 2부는 지금부터 시작임.


남편 사후, 마리는 남편의 제자였던 천재 물리학자 폴 랑주뱅과 사랑에 빠짐.
문제는 랑주뱅이 '유부남'이었다는 거.

1911년, 두 번째 노벨상 수상을 앞둔 시점.
랑주뱅 아내가 둘의 연애편지를 언론에 터뜨려버림.

언론: "특종이다! 저 폴란드 X이 프랑스 가정을 파괴한다!"
군중: "돌을 던져라! (휙휙)"

이 스캔들 때문에 권총 결투까지 벌어지는 등 ㄹㅇ 개막장이었음.

(자세한 내용은 연혁에 적어둠)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스웨덴 노벨위원회조차 "님, 스캔들 터졌으니 시상식 오지 마셈" 하고 압박함.
이때 마리가 날린 답변이 레전드임.

"?? 장난함? 상은 내 과학적 업적에 대한 거지, 내 사생활이랑 뭔 상관임? 당연히 감."

그렇게 당당하게 스톡홀름으로 가서 노벨 화학상을 단독 수상함.
역사상 최초로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인물이 됨.



#4. '국민 쌍년'에서 '전쟁 영웅'으로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짐.
'불륜녀'로 낙인찍혔던 마리는 연구를 중단하고 X선 장비를 실은 차량 '작은 퀴리들'을 만들어 딸 이렌과 함께 직접 최전선을 누빔.
이 활약으로 100만 명이 넘는 부상병을 치료함.

프랑스 국민들?
당연히 감동함.

"와. 저 여자가 우리를 구했다! 우리가 오해했네ㅠㅠ"

그녀는 평생 방사능 연구에 몸을 바치다 1934년, 방사선 노출로 인한 재생불량성 빈혈로 사망함.




아직 안 끝남!

근데 진짜 소름 돋는 건 지금부터임.
퀴리 가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노벨상 깡패'라 불리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움.

1. 마리 퀴리 & 남편 피에르: 1903년 노벨 물리학상
2. 마리 퀴리 (단독): 1911년 노벨 화학상
3. 딸 이렌 & 사위 프레데리크: 1935년 노벨 화학상
4. 둘째 딸 이브의 남편 (유니세프 대표): 1965년 노벨 평화상

이게 말이 됨? 한 집안에서 노벨상이 5개? ㅋㅋㅋ
이건 그냥 깡패 가문임.

결국 한때 이방인이라며 돌팔매질 당했던 마리 퀴리는 사후 프랑스 최고의 영웅들만 묻히는 '팡테옹'에 안장됨.
순수 자신의 공로만으로 팡테옹에 묻힌 최초의 여성이었음.

마리 퀴리 유품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방사능을 뿜어서 납 상자에 보관되고 있는 거 암?
여기서 썰 못 푼 재미난 거도 많으니까 연혁에서 직접 보셈.


마리 퀴리 연혁 바로가기

목록으로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