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손님 집 구글맵으로 염탐한 소름 돋는 이유

오늘은 에르메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보통 에르메스 하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버킨백이나, 돈이 있어도 물건을 안 내어주는 콧대 높은 매장 직원들이 먼저 떠오르잖아?
그런데 이 브랜드의 역사를 쭉 파헤쳐 보면 생각보다 훨씬 더 집요하고 때로는 기이할 정도로 통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1837년 파리의 작은 마구간에서 시작해서 2026년 고객의 사생활을 감시한다는 논란에 휩싸이기까지.
도대체 에르메스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늘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에르메스의 비하인드 스토리 4가지를 아주 상세하게 들려줄게.
#1. 에르메스가 사실 지퍼의 조상님이라고?
지금 우리가 입는 점퍼나 가방에 달린 지퍼 알지?
놀랍게도 이걸 패션에 처음 도입한 게 바로 에르메스였어.
이야기는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에르메스는 티에리 에르메스가 창업한 이래로 유럽 왕실에 말 안장과 마구를 납품하면서 이미 탑클래스를 찍고 있었어.
그런데 3대 경영자였던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는 고민이 많았어.
거리에는 마차가 줄어들고 자동차가 늘어나고 있었거든.
"이제 말의 시대는 갔다. 우리는 뭘 먹고살지?"
그러다 에밀 모리스가 1차 대전 중에 미국으로 시찰을 가게 됐는데 거기서 자동차 후드(지붕)를 여닫는 데 쓰이던 신기한 물건을 발견해.
바로 지퍼였지.
당시만 해도 지퍼는 투박해서 옷에는 절대 못 쓴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에밀 모리스는 무릎을 탁 쳤어.

"이걸 가방이랑 옷에 달면 대박이겠는데?"
그는 바로 지퍼의 유럽 특허권을 사들이고 1918년에 세계 최초로 지퍼가 달린 가죽 골프 재킷을 만들어서 영국 왕세자(에드워드 8세)한테 입혔어.
이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한동안 프랑스 사람들은 지퍼를 에르메스 잠금장치라고 불렀을 정도였대.
결국 에르메스는 망해가던 마구 상점에서 여행과 자동차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혁신적인 패션 하우스로 변신에 성공한 거야.
지금의 에르메스를 만든 건 이런 빠른 태세 전환이었던 셈이지.

#2. 전설이 된 가방들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
에르메스 하면 켈리백과 버킨백을 빼놓을 수 없겠지?
이 가방들이 탄생한 비화도 참 재밌어.
원래 켈리백은 1935년에 나온 ‘싹 아 데페슈’라는 이름의 서류 가방 같은 거였어.
1956년에 할리우드 배우이자 모나코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한 배를 가리려고 이 가방을 들었어.
그때 사진이 라이프 매거진 표지에 실리면서 난리가 난 거야.
사람들이 하도 "그 켈리백 주세요" 하니까 에르메스가 아예 이름을 공식적으로 바꿔버렸지.
버킨백은 더 우연히 만들어졌어.
1984년 5대 회장 장 루이 뒤마가 비행기를 탔는데 옆자리에 가수 제인 버킨이 앉은 거야.
제인 버킨이 짐을 쑤셔 넣다가 가방이 쏟아지니까 투덜거렸대.
"아니 에르메스 같은 데서 주머니 좀 달린 쓸만한 가방 하나 안 만들고 뭐 해요?"
그 말을 들은 뒤마가 그 자리에서 "내가 만들어 줄게!" 하고 끄적끄적 그려서 만든 게 바로 버킨백이야.
(이 이후에 제인 버킨이 가방에서 "내 이름을 지워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거든. 이건 연혁에서 확인해 봐! 2015년 일이야.)
근데 에르메스가 진짜 무서운 건 이렇게 수요가 폭발해도 절대 생산량을 늘리지 않는다는 점이야.
가방 하나 만드는 데 장인 한 명이 18시간 이상 매달려야 하고 그 장인을 키우는 데만 최소 18개월 넘게 걸려.
심지어 최근 2023년에는 리옹에 엄청 큰 공방을 새로 지었는데도 이 한 땀 한 땀 원칙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
"사고 싶어? 그럼 기다려. 우리가 준비될 때까지."
이런 지독한 고집이 결국 에르메스를 돈 있어도 못 사는 가방으로 만든 핵심 전략이었던 거지.
#3. LVMH의 지분 공격을 막아냄
승승장구하던 에르메스에게도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었어.
바로 명품계의 포식자로 불리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에르메스를 집어삼키려 했던 사건이야.
2010년 어느 날 아르노 회장이 갑자기 "나 에르메스 주식 17.1% 갖고 있다?"라고 폭탄 선언을 해.
야금야금 몰래 주식을 사모아서 기습적으로 경영권을 위협한 거지.
에르메스 가문 입장에서는 날벼락이 떨어진 거야.
자칫하면 170년 넘게 지켜온 가업이 남의 손에 넘어갈 판이었으니까.
이때 에르메스 가문의 대응이 진짜 영화 같아.
뿔뿔이 흩어져 있던 50여 명의 가문 사람들이 긴급하게 모여서 H51이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해.
그리고 피의 맹세(?)를 하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우리 중 누구도 주식을 팔지 않는다. 배당금도 포기한다."
보통 재벌가면 돈 앞에서 싸우고 갈라지기 마련인데 에르메스 사람들은 돈보다 가업의 독립성을 택한 거야.
결국 4년간의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2014년 LVMH는 백기를 들고 물러나게 돼.
이 사건은 에르메스가 단순한 사치품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들의 철학을 목숨 걸고 지키는 장인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
#4. "당신 집 주소 구글맵으로 봤습니다" 선 넘은 감시
자 여기까지 들으면 "와 에르메스 진짜 멋있다" 싶지?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됐어.
그 철학을 지키겠다는 명분이 이제는 고객을 향한 섬뜩한 감시로 변질됐다는 폭로가 터졌거든.
2026년 1월 프랑스의 탐사보도 매체 글리츠가 에르메스의 내부 문건과 증언을 바탕으로 충격적인 보도를 내놨어.
에르메스가 매장에 오는 고객들을 체계적으로 사찰하고 있다는 거야.
내용을 보면 진짜 소름 돋아.
일단 고객이 매장에 오면 직원이 태블릿으로 그 사람의 거주지를 구글 지도로 검색해 본대.
그리고 로드뷰로 집 외관을 보면서 "이 사람 진짜 부자 맞나?" "이 동네 집값이 얼마지?" 이런 걸 확인한다는 거야.
심지어 유럽 매장들끼리 데이터를 공유해서 이 사람이 산 가방을 리셀(되팔기)한 이력이 있는지 SNS까지 샅샅이 뒤져본다고 해.
만약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
그럼 바로 전산망에 레드 플래그가 뜨고 그 사람은 전 세계 어느 에르메스 매장을 가도 "죄송합니다 재고가 없네요"라는 말만 듣게 되는 거지.
이미 2024년 미국에서는 "버킨백 사고 싶으면 그릇이랑 스카프부터 사라"는 식의 끼워팔기 때문에 집단 소송까지 당한 상태였잖아.
여기에 2025년에는 미국이랑 유럽 가격을 다르게 책정해서 고객들 간 보게 만들고 이제는 아예 손님 뒷조사까지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이 아주 싸늘하게 식고 있어.

에르메스의 역사를 쭉 보면 참 아이러니해.
가장 낮은 곳에서 말을 섬기던 겸손한 장인들이 이제는 가장 높은 곳에서 고객을 평가하고 감시하는 권력자가 되어버렸으니까 말이야.
과연 에르메스는 이 오만함의 꼬리표를 떼고 다시 존경받는 장인으로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진짜 고객 위에 군림하는 빅브라더가 되려는 걸까?
앞으로의 행보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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