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왕자는 신라를 삼키기로 했다 6화

소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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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리즈는 역사적 팩트를 웹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정사 기반)
📢 등장 인물: 김유신, 용화향도, 김춘추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렀다.
백석의 목이 떨어진 그날로부터 강산이 한 번 변했다.

서라벌의 관청 병부.
이제 청년의 태가 완연한 김유신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병부령의 직인이 찍힌 서신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불가]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유신은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입니까.”
“……미안하게 됐네, 김 대형.”

인사 담당 관리가 곤란하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자네 무재야 서라벌의 모두가 알지. 백석을 잡은 공도 있고 검술로는 화랑 중에 적수가 없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관리가 말끝을 흐리며 눈치를 보았다.

“위쪽 어르신들 생각이 완고하셔. 아무리 날고 기어도 가야계에게 정규군 지휘권을 맡길 수는 없다고 하시네.”

유신은 쓴웃음을 삼켰다.
10년이다.
지난 10년간 미친 듯이 칼을 갈았고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똑같았다.

‘가야의 근본 없는 잡종.’

진골 귀족들은 유신을 두려워하면서도 혐오했다.
자신들의 고귀한 성골과 진골 틈에 이물질이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유신이 서신을 집어 들었다.
바스락.
그의 악력에 종이가 구겨졌다.

“알겠습니다.”

유신은 짧게 답하고 몸을 돌렸다.
등 뒤에서 관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깝긴 해. 실력은 진짜배기인데.”
“실력이면 뭐 하나? 망국의 왕자가 장군이 되면 나라 꼴이 어떻겠어?”

유신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다만 그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라가 주지 않는다면 내가 만들면 돼.’

***




몇년 전, 서라벌 외곽 인적 드문 깊은 산중.
일반적인 화랑들이 수련하는 연무장이 아니었다.
습하고 어두운 숲.
수십 명의 사내들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귀족 화랑들과는 달랐다.
눈빛에는 독기가 서려 있고 옷차림은 남루했다.

대부분이 서라벌의 태양 아래 당당하게 서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망해버린 가야의 후손이라 멸시받는 자들.
능력은 출중하나 어미의 신분이 천해 벼슬길이 막힌 서자들.
한때는 귀족이었으나 지금은 몰락한 가문의 자식들.

신라의 견고한 골품제가 쓸모없다며 내다 버린 자들을 유신이 하나둘씩 주워 모은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라.”

바위 위에 선 유신의 목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낭도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눈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유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뒤섞여 있었다.

“세상은 너희를 신라의 고귀한 피를 더럽히는 잡종이라 손가락질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여기저기서 울분 섞인 대답이 터져 나왔다.
유신이 그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나 또한 그렇다.”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화랑도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김유신이 자신들과 같다니.

“나 역시 놈들에게는 썩은 핏줄일 뿐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넘을 수 없는 벽이 내 앞을 막고 있다.”

유신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허나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놈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부수고 들어갈 것이고,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놈들을 죽여서라도 그 자리에 앉을 것이다.”

유신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는 낭도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며 세뇌하듯 속삭였다.

“나를 따르면 너희는 더 이상 버려진 잡뼈가 아니다.”

김유신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있었다.

“대형을 따르겠습니다!”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낭도들이 열광하며 소리쳤다.
군대라기보다는 광신도 집단에 가까웠다.

유신은 이 사병 집단에 용화향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륵불이 내려와 중생을 구원한다는 뜻.
세상에 버림받은 이들에게 유신은 곧 미륵이자 구원자나 다름 없었으니까.

그렇게 1년, 2년.
유신의 지옥 훈련을 견뎌낸 그들은 어느새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듯한 정예 살수들로 변해 있었다.

***

며칠 뒤, 화랑 훈련장.
진골 귀족 자제들이 설렁설렁 목검을 휘두르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땀 흘리는 것을 천하게 여기는 그들의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멀리서 그 꼴을 지켜보던 유신이 피식 웃었다.

‘고귀하신 분들께선 칼 쥐는 법도 잊으셨군.’

유신의 곁에 선 부관이 나직이 물었다.

“대형, 저런 놈들이 장군이 되어 병사들을 이끈답니까?”
“놔둬라.”

유신이 싸늘하게 읊조렸다.

“혈통 자랑이나 하는 놈들이지 않느냐.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텅 비어있다.”

유신이 발치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밟아 으깨버렸다.
우드득.

하지만 자신감과 별개로 현실은 냉혹했다.
군대는 완성되었으나 그들을 이끌고 나갈 전쟁터가 없었다.
조정은 여전히 유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으니까.

‘내 힘만으로는 부족해.’

유신은 깨달았다.
이 견고한 골품제의 성벽을 뚫으려면 공성추가 필요했다.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줄 사람이.

터벅터벅.
유신이 연무장을 빠져나가려던 찰나였다.
구석진 곳에서 홀로 공을 차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화려한 옷을 입었으나 주변에 따르는 이가 하나도 없는 남자.

지나가던 화랑들이 그를 보고 수군거렸다.

“저기 춘추 공 아니야?”
“쉿 눈 마주치지 마. 재수 옴붙는다.”
“하긴 할아비가 쫓겨난 폐왕인데 섞여서 뭐 하겠어. 끈 떨어진 연이지.”

사내의 정체는 김춘추.
음탕하다는 이유로 폐위된 진지왕의 손자였다.

한때는 왕이 될 수도 있었던 성골의 핏줄.
허나 할아버지가 옥좌에서 끌려내려오면서 가문은 몰락하여 진골로 강등당했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귀족들에게 그는 가까이하면 부정 타는 존재일 뿐이었다.

‘나와 같군.’

유신의 눈이 번뜩였다.
망해버린 가야의 핏줄인 자신이나 쫓겨난 왕의 핏줄인 저 놈이나.

서라벌 바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유신의 눈에는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공을 차는 듯한 김춘추의 눈빛 깊은 곳.
그 속에 억눌려 있는 서늘한 독기를.

‘자신을 끌어내린 귀족들을 씹어먹고 싶겠지. 힘이 없어서 숨죽이고 있을 뿐.’

유신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자신에게 부족한 단 하나 명분을 채워줄 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찾았다.”

나의 동아줄. 나의 방패. 그리고 내 야망을 담아낼 완벽한 그릇.

유신이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천천히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사를 바꿀 두 아웃사이더의 만남이 치밀한 계산 아래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 팩트 체크1. 김유신의 친위대 용화향도
용화향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실제 김유신의 화랑도 이름입니다.
용화는 불교에서 미륵불이 내려와 중생을 구원한다는 용화수에서 따온 말입니다.
귀족인 화랑과 김유신을 따르는 수많은 낭도(화랑의 부하)로 구성되었습니다. 낭도들은 평민이나 하급 귀족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훗날 김유신이 군권을 장악하고 삼국을 통일하는 데 가장 강력한 핵심 세력이 됩니다.

🔍 팩트 체크2. 김춘추가 성골에서 진골로 강등된 이유
1. 삼국유사에 따르면 "나라를 다스린 지 4년 만에 정사가 어지럽고 음란하여 국인이 그를 폐위시켰다."고 적혀 있습니다.
해석: 역사서에 대놓고 진지왕이 음란해서 잘렸다고 기록된 케이스입니다. 여자를 너무 밝혀서 정치를 내팽개쳤다는 것이 폐위의 공식적인 명분이었습니다.
2. 삼국사기에 따르면 "재위 4년 왕이 훙(왕의 죽음)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해석: 김부식이 쓴 정사에서는 폐위라는 역사를 숨기고 그냥 죽었다고만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김용춘)과 손자(김춘추)가 왕위 계승권인 성골(계급)을 박탈당하고 진골로 강등된 것을 보면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라 정치적 숙청(폐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김유신의 일대기가 궁금하다면 여기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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