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뉴턴, 78세에 주식으로 80억 잃다.
과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아이작 뉴턴.
그러나 그런 사람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아픔이 있었으니
바로 주식의 실패입니다.
중력이 작용한 걸까요?
인류 최고 천재의 주식이 땅으로 뚝 떨어져버린 이유를 알아봅시다.

#1. 천재 과학자의 노후자금
뉴턴이 투자에 실패한 시점은 1720년, 그의 나이 78세 무렵이었습니다.
그가 손실을 본 종목은 무역업.
그 당시 영국에서 가장 화제였던 “남해회사” 주식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약 2만~3만 파운드를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50억~80억 수준이라 합니다.
아이고... 할배요...
그런데,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잘못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 남해회사의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을 때, 그는 실제로 수익을 약간 실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주가가 더욱 급등하는 모습을 보고 재진입을 했는데,
그 직후 버블이 붕괴되며 주가는 급락했고, 뉴턴은 큰 손실을 입게됩니다.
뭔가... 우리네 익숙한 일상 같지요? ㅜㅜ
수익을 보고 빠져나왔지만, ‘계속 더 오를 것 같아!!’라고 하는 주변의 분위기와 열기가
다시 시장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형국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 사실은 작전세력이 있었습니다.
#2. 범인은 경영진!!
1720년의 남해회사 버블사건은
내부자 거래, 정치권 로비, 그리고 대중의 집단적 탐욕이 결합된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버블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남해 회사는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영국 정부의 막대한 국채를 인수하는 대가로,
스페인령 남미와의 무역 독점권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는 국채 보유자들에게 국채를 남해 회사 주식으로 교환하도록 유도했지요.
핵심은
주가가 오를수록 회사가 더 적은 주식을 발행하고도
더 많은 국채를 상환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영진에게는 주가 부양이 곧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남해회사는 현대적 관점에서 봤을 때 명백히 불법으로 판정되는 작전을 시행합니다.
1) 순환출자 :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다시 자사 주식을 사게 해서 수요 조작
2) 정치권 매수 : 의회 의원들과 왕의 가족 친척들에게 주식을 뇌물로 제공, 회사에 유리한 법안 통과
이렇게 키운 버블은 얼마 가지 않아 터져버렸고
영국의 경제는 순식간에 파탄 나버립니다.
결국 같은 해 10월
영국 왕실이 ‘버블법’을 제정하며 국가적으로 개입하기에 이릅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는 미시시피 버블이 터졌고,
유럽 전반이 투기와 금융 실험, 그리고 붕괴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뉴턴 역시 이 거대한 흐름 속에 있던 또 한 명의 투자자, 또 한명의 피해자였을 뿐이었던 것이지요.
#3. 작전세력은 인류의 본성?
역사상 최초의 ‘공매도’는 그 역사가 훨씬 더 오래 되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주식회사, 최초의 주식거래소가 설립된 지
딱 7년 만에 일어난 사건이라 더욱 놀랍습니다.

▲ 1602년,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거래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에 설립된 최초의 증권거래소
1602년,
네덜란드에 세계 최초의 현대적 주식회사라 불리는 ‘동인도회사’가 탄생하고
같은 해 8월,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 거래소가 문을 연지
7년 후인 1609년
회사에서 내쫓긴 대주주 “아이작 르 메어”가
자신을 쫓아낸 경영진에게 복수하기 위해
회사가 망할 거라는 소문과 기사를 내고 시장을 공포와 불안감으로 잠식해가며
세계 최초의 조직적, 악의적 ‘공매도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바로 다음 해인 1610년, 네덜란드 정부는 공매도 금지령을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같은 양상은 미국에서도 보입니다.
1776년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지 16년 후인
1792년 3월,
미국 재무부 차관보 ‘윌리엄 듀어’가 내부정보를 이용한 투기를 자행하다 파산하며
뉴욕 금융시장을 붕괴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주식 중개인들이 신뢰 회복을 위해 결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2개월 후인 1792년 5월,
‘신뢰할 수 있는 거래’, ‘신용회복’을 목표로
월스트리트의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24인의 중개인이 모여 거래 협약을 맺습니다.
오늘날 가장 큰 거래소인 “뉴욕증권거래소”의 시작이지요.

#덧. 천재도 당하는데...
이 사건은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지성의 영역과 시장의 영역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기대와 두려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300년 전의 버블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현재는 현재의 버블이 도사리고 있고
인간의 초조함과 실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확인이 아닐까요?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장 흥분되는 그 순간에,
우리는 조금 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음을
‘주식의 역사’로 배울 수 있습니다.
78세의 아이작 뉴턴이 남긴 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천체의 움직임을 정확히 계산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식의 역사] 연혁 보러가기
인류 최초의 주식 개념의 발현부터
현대의 제도와 기술이 도입되기까지의
다사다난한 변곡점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